귀촌은 내 운명
자연인을 비롯한 TV 프로그램에, 깊은 산골로 숨어든 이유 중 하나가 암처럼 생사를 넘나드는 질병이다. 하도 많이 들어서 식상할 지경이지만, 겪어보니 위력이 대단했다.
암은 인생을 보는 시선을 완전히 바꾸는 마법을 부린다.
나 역시 암을 빌미로 참고 참았던 귀촌을 저질렀다.
암이 아니었더라면 그토록 과감하게 결단을 내리고 은퇴를 앞당길 수 있었을까?
전문직인 남편 친구는 귀촌한 우리 부부를 세상에서 가장 부러워 한다. 그러나 과거의 나처럼 수 많은 이유로 귀촌하지 못하고 있다. 아마 앞으로도 어려울 것 같다.
가던 길을 멈추고 새로운 길로 들어선다는 것은 그토록 어려운 일이다.
그날은 참 기분 좋은 날이었다.
동대문 종합 시장에서 추석빔으로 남편에게 딱 어울리는 맑은 하늘빛 생활 한복 저고리를 발견하고 신나서 흥정하던 찰나, 남편의 전화를 받았다.
나. 암이래.
불행은 이전에도 그랬듯이 참 아무렇지도 않게 평범한 일상에 폭탄처럼 떨어진다.
그가 어느 날부터 극심한 피로와 간헐적 복통, 조금만 운동해도 다리에 맥이 풀리며 쓰러질 것 같다는 증상을 계속 호소했다.
급기야 멱살을 잡아끌어도 건강검진 따위는 안 한다는 그가 제 발로 인근 병원을 찾아가 정밀 검사를 하기에 이르렀다.
뱃속에 아기 머리 크기의 종양이 발견되었다.
종양에 눌려 신장 하나는 이미 거의 기능을 상실한 상태.
림프암으로 추정됐던 암은 조직 검사 결과 엉뚱하게도 고환암이었다. 고환에서 복강으로 전이되어 이미 3기! 부랴부랴 수술에 앞서 종양 크기를 줄이기 위한 항암이 시작됐다.
으로 고환암은 생존율이 높은 암이다.
문제는 항암 강도가 극악무도하다는 것.
주치의는 '20대 환자가 항암하다가 차라리 죽겠다며 도망간 적도 있다"는 말로 각오를 단단히 시켰다.
과연!
그는 첫 항암에 제대로 나가떨어졌다.
머리 털을 잃고, 피부색은 항암제 독성에 눈으로 보고도 믿기 어려울 만큼 검게 변했다. 평소 엄청난 식욕을 자랑하던 그가 2주 이상 곡기를 끊었다.딱, 죽지 않을 만큼 약을 치는 것 같았다. 그래도 사람 목숨이 붙어 있다는 게 신기했다.
혈액 속에서 면역 담당자 백혈구가 싹 사라지면 보험이 적용되지 않을 경우 하룻밤에 50만 원을 호가하는, 멀리 남산 타워가 보이는 기막힌 경치의 1인실로 초대 당했다. 백혈구 활동 재개 신호가 올라올 때까지 10여 일을 격리당한 후 일반 병실로 돌아오는 과정이 반복됐다. 어느 날은 열이났고, 어느 날은 멈추지 않는 장츨혈로 계속 수혈을 받았다.
그 100일 동안 남편 옆을 지키며 병원에서 쪽잠을 잤다.
이십여 일의 입원 후에는 4주의 휴가가 주어졌다
다음 항암을 위해 집에서 몸을 잘 만들어 다시 약 치러 오라는 의미다.
세 번째 항암을 앞두고, 남편은 포기하고 싶을 만큼 병원 가는 게 무섭다고 했다.
아직 육십도 안됐는데, 원하는 인생을 살아보지도 못하고 그럴 수는 없어.
이거 잘 끝내고 우리 귀촌하자!
남편에게 약속했다.
건장했던 그는 기진맥진, 허리조차 제대로 펴지 못했다. 구부정한 자세로 어깨를 앞으로 숙이고 허깨비처럼 걸었다. 멀리서 보면 영락없는 유인원이다.
어느 날 그가 말했다.
'휴양림 가고 싶다.'
국립 자연 휴양림은 우리가 참새 방앗간처럼 드나들던 사랑해 마지않는 여행지였다.
그쯤이야!
문제는 내가 운전을 못하는 뚜벅이라는 거다.
그가 말했다
차가 가지 내가 가니?
그냥 액셀만 밟고 있으면 돼.
얼마나 숲이 그리우면, 그 몸으로 운전하겠다는 걸까?
며칠 집에서 겨우 몸을 추스린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가평 휴양림을 찾았다.
그날 나는 자연이 부리는 마법을 보았다.
집에서 허리 한 번 펴지 못하고 유인원처럼 걷던 그가 차에서 내리자 마자 배낭을 메더니 허리를 쭉 펴고 걸었다.
갑자기 시계가 거꾸로 돌기시작했다.
그새 10년은 족히 넘게 폭삭 늙어버린 얼굴에 생기가 돌며, 예전의 건강했던 모습이 겹쳤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날의 마법은 배낭 무게가 뒤에서 잡아당기는 바람에 허리가 펴진 물리적 현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날 난 다시 한번 결심을 굳혔다.
암을 계기로 '아직 준비가 덜 됐어'에서 '이만하면 됐어'로 마음을 바꿨다.
계속 준비만하며 기다리기보다, 부족하고 엉성해도 '당장 시작하고 싶다'라는 마음의 소리를 따르기로 했다. 너무 나이 들면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없게 된다. 그때는 이미 늦다.
우리가 그토록 좋아하는 숲과 별과 바람을 가질 수 있었는데, 끝내 손을 뻗어보지 못하고 꿈만 꾸다가 생을 마감하고 싶지는 않았다.
다행히 우리 부부는 소박하고 알뜰하다. 일 년에 몇 번씩 해외로 나가거나, 돈 드는 취미 생활을 즐기는 은퇴를 애초에 꿈꾸지 않았다.죽을 때까지 남에게 손 벌리지 않고 끼니를 해결하고, 최소한의 인간의 품위를 유지하는 게 목표다.
암 때문에 참으로 지치고 힘들었지만, 돌이켜보면 암 덕분에 모든 걸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는 항암 하느라 죽다 살아났지만 다시 백수가 되서 기뻐했다. 나 역시 은퇴 불안을 단박에 뛰어넘는 무적의 논리를 만난 김에 이른 은퇴를 감행할 수 있었다.
우리를 벼랑으로 몰아세웠던 남편의 암에 감사한다.
덕분에 좀 더 젊은 나이에 하고 싶은 걸 맘껏 해보고 죽는 행운을 누리고 산다.
지나고 보니 암은 인생의 선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