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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아이였던 나를 위한 위로

자유에 대해 생각한다

by 즐거운가 Feb 16. 2025

계엄 선포 사건으로 온 나라가 들썩였을 때 

  역시 걱정  눈에 들어오지 않고 글도 쓸 수 없었다. 그렇게 한동안 다.


겨우 마음을 다잡을 즈음

자주 드나드는 단톡방에 링크 하나가 떴다.

https://app.m-nitpick.com/psytest/president


 나는 어떤 대통령(지도자)과 비슷한 유형일지 지금, 확인해 보세요.라는 이 시기에 딱 눈길을 끌기 좋은 대통령 테스트는 제목다.


별생각 없이 클릭.

과는 예상치 않게 박정희 대통이다.

처음에는 오잉? 했지만 읽어보니 정말 딱 나다.


알고 보니 나 

독재자 스타일?


은근히 재미있네? 싶어서

가족 톡방에 공유.

가족 네 명 이 다른 결과가 나다.


평소 아주 싫어하는 정치인과 일치 결과에 한 불쾌감표현하는 막내딸의 진지함 빵 터졌다. 그런데 불구하고 톡방에는 부분 결과에 공감다는 대화가 한동 오갔다.


사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대통령 스트는 제목으 눈길을 끌었을 뿐

알고 보면 성격 테스트?





내 인생을 점철한 단어. 노오력!

오랜만에 성격테스트 다가

혼자 피식 웃었다.


역시 사람 성격은 안 변해. ㅎㅎㅎ

은퇴해도 

여전하구나.


 에서 내 눈길을  사로잡은 단어 !

그렇다  인생을 점철한 단어는

단연코 노력다.


은퇴한 지금

무의미하게 하루를 보

무의식적 을 느낀다.

.

책을 읽

글을 쓰든

림을 그리든

하다못해 정원에 잡초라도 뽑아야

잠자리에 들 때 마음이 편하다.


오랜 세월 를 다잡 살다 보니 몸과 마음을 방목하듯 풀어놓는 것이 여전히 쉽지 않다.


테스트에서는 에둘러 좋은 말로 표현했지만

다르게 현하면 나라는 사람은


자기 확신이 강해서 고집이 세고

설렁설렁 대충 하는 사람을 주기 힘들어한다.

상대방이 하는 일이 성에 안 차고 믿음이 안 가서

차라리 제가 해버려야 마음이 편 문제가 많은  인간이다(엄마 닮았다).


나는 어쩌다 이런 사람이 되었을까?





아이의 탄생

주변보면 어린 나이에 너무 일찍 철이 들어버렸다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늦게 자신 어린다운 어린 시절내지 못했 사실에 마음 아파한다.


극심한 가정불화

부모의 이혼

방임

학대 

가난


아이는 자신의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 본능 발휘한다.


자신을 보호하고 있는 둑이

붕괴는 것을 막보려는

안타까운 몸부림다.


마음껏 유년기를 누려야 할 때 너무 일찍 자신을 위해 슬퍼하고, 울고,  끼는 법을 잊는다. 농담도 배우지 못하  지도 못한다.


오히려 자신이 의지해야 할 어른의 아픔을 들어주고 기댈 수 도록 작은 어깨를 내준다. 그들의 짐이 되지 않으려 애쓴다.




나 역시 어른아이였다.

나를 일찍 철들게 만든 것은 부모님의 불화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아빠와 함께 장사하시느라 늦게 오시는

엄마를 대신해 동생들게 밥을  다.

설거지하고

동생들을 챙기고

문단속을 했다.


누가 시키지 않았지만 렇게 해야 할 것 같았다. 아버지와 불화하면서도 너희 때문에 이혼 못 한다는 엄마렇게라도 위로하고 싶었다.


항상 언니의 옷을 물려 었지만 한 번도 새 옷을 사달라 르지 않았, 중학생이 되면부터는 명절 종일 엄마 송편을 빚고 제사상에 올릴 전을 부쳤다.


사는 형편은 조금씩 나아졌지만 '차라리 이혼했으면'하고 바랄 만큼 두 분은 하루가 멀다싸웠다.


 분이 우는 장면을 보는 건 지옥이었다. 깜깜한 동굴 같은 내 마음에는 얼음장 같은 칼바람이 불었다. 에서는 밝게 웃었지만, 집에 오면   닫았다.


부모에게 짐이 되기 싫었다. 자청해서 여상을 가겠다고 우겼(배움에 한 맺힌 엄마의 반대로 인문계를 갔다). 간호학과를  이유도 순전히  서기 위함이다.


철이 들면서는 '결혼으로 인생이 꼬였다'는 엄마의 한탄을 들어주는 대나무 숲이 되었다. 엄마 편에 서서 함께 아빠를 미워해 줬다.


동생들은 때때로 엄마의 속을 썩이며 제 하고 싶은 대로 살았다. 부러웠다. 하지만 나까지 그럴 수는 없었다. 


게다가 당시 언니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결혼한 지 몇 달 만에 친정에 쫓겨와 있었다(금은 세 아들의 엄마다). 강철같이 강해보이던 엄마는 매일 울었다.


'나라도 잘해야'라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았다. 엄마의 웃는 얼굴이 보고 싶어서 장학금을 타려고 리가 터지 공부했다. 내가 엄마를 위한 공부였다.


그 시절 그런 나를 보며 위로를 받았다.

나는 엄마의 비타민이었다.




어른아이가 자라 어른이 되면

그 결 '너 같은 자식이라면 마든지 있어도 좋겠다"는 말을 다. 


나를 늙은이로 어른들은  효녀 불렀다.


그러다 혼을 하고 매서운 시월드체험을 하느라 잠시 친정을 잊고 산다.




드디어 친정 식구들이 가세했다.

시집에서 분가 기다렸다는  정 식구들이 앞다퉈 울며불며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부부

형제간의 불화

금전 고민 등 온 하소연이

 노래처럼 이어졌다.




당신을 해결사로 임명합니다

기쁨은 나누면 두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는데, 참 이상도 하지.


 주변에는 기쁨을 두 배로 나누자며 달려드는 사람 대신 내 슬픔과 아픔을 함께 나눠 달라며 죽자 살자 달려드는 사람들로 넘쳤다.


그간 어른아이로 사느라 애썼지?

고마웠다.

이젠 그만해도 돼는 말 같은 것은 없었다.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 사이에 나는 상담가이자 해결사가 되어있었다.




달콤함은 네 몫이 아니야

믿는 자식으로 자란 어른아이는 부모들이 평생 옆에  살고 싶은 자식이다(시부모가 그랬듯 엄마 역시 우리 부부를 옆에 두고 싶어 하신다).


하지만 어른이 된 어른아이에게는 이상한 일이 계속 벌어진다. 


래도록 해결사 노릇을 정작 달콤한 열매를  순간이 오면  밀린다.


이유는 단순하다.

"너는 어떤 일이 닥쳐도 살아낼 것이니 걱정이  된다"는  그  이유다. 가 챙기는 우선순위는 걱정거리 자식, 다음은 큰 소리자기주장을  자식이다.


많은 어른아이가 어른이  만나는 예상치 못한 슬픈 최후다.





점점 지친다.

어느 날부터 움 청하는 말들에 점점 짜증과 화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남에게 도움을 주려 애쓰지만 정작 내가 힘들 때 여간해서 도움을 청하지 다. 도와달라고 내민 손을 선뜻 잡아 줄 것이라는 믿음이 어린 시절에 자랄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른 아이였어도 괜찮아.

어른아이의 궤변

얼마 전 우리 집에 동생에게 몇십 년 만에  뜻밖의 말을 들었다.


누나!

누나 덕분에 인생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어

그렇게 망인 위기에서

누나가 열심히 노력해서

대학 학하는 모습을

나도 할 는 희망이 생기라?


그랬구나!


내가 집 근처 대학 입학할 당시

동생 막 고등학교에 입학었다.


동생 그즈음 부에 손을 놓고 방황있었다.(난 속에서도 부모님은 우리를 세상 풍파로부터 지켜주셨지만 정작 마음 건강지켜주지 못했다. 우리는 부모의 불비롯된 마음의 상처를 크게 입었고, 훗날 나를  형제들의 마음크게 아프게 된다. 우리는 저마다 비슷하고 다그 시절을 기억하며 아파한다.)


전혀 몰랐었다.

동생이 나를 보며

마음을 다잡 힘을 다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워.

 내 동생.


그러고 보니

언젠가 막동생도 비슷한 말을 했었다.

당시 집안에서 대학생이 나온  기적 같았다고


부모가 불화하는 가정에서 어른아이로 자란다는 것은 아무리 좋게 포장도 마음 아픈 일이다.


그러나 그날 나는 동생의 말에 큰 위로를 받았다.


그래

그 시절 나가 나를 포기하지 않아서 다행이.

누나가 아이어서 참 다행이.


고맙게도 동생은 잘 풀렸다.

간혹 이런저런 일

티격태격 지만

우리는 이제

집안에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서로 머리를 맞고 고민한다.




그때  른아이의 선택은 옳았다.

어른아이 힘겨운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내가 택할 수밖에 없는 최선이었다.


나는 포기하지 않고 어진 상황 안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방법을 찾아 최선을 다해 .


덕분에 어려움이 닥쳐도

인생 포기하지 않는 법을 .


인생에서 만나는 크고 작은 어려움에 

휘둘리지 않는 단단한 사람이 다.


등에 진 무거운 짐의 무게 덕분에

인생이라는 건널 때

오히려 살에 휩쓸려 떠내려 가지 .


그때 그 어른아이의 선택은 옳았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하지만 나는 어느 순간

가족들의 든든한 상담가와

중재자 역할을 하는 삶이

심하게 버겁게 느껴졌다.


나까지 그만두면 이 둑이 무너질까 봐 그간 기를 쓰고 버텼다. 하지만 이제는 나도 무너질 것 같았다.


돌아보 그 순간은

양가 모두 내 역할을 너무나 당연한 듯 여길  찾아왔다.


너무 열심히 살았을까?

어느 날부터 극심한 이명이 찾아왔다.

이유 없는 불안이 엄습했 가슴이 두근거렸다. 두통과 불면증이 찾아왔다( 원치 않는 것을 더 이상 하지 않을 자유를 선물하고서야 그 증상들은 서서히 나를 떠나갔다).


나이가 들가면서 가는 것 중 하나는 나치게 겁다고 느껴질 때는 덜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더 이상 안 되겠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내려놓아야 하는 순간!

바로 그때다.


결국 모든 인간은 각자 자몫의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의 언덕을 올라야 한다. 해결사 노릇을 멈추고 더 이상 내가 어쩔 수 없는 부분을 과감하게 놓기로 했다.


때로는 과감히 내려놓아야 남은 시간을 더 오래오래 견딜 수 있다.

결국 서로에게 좋은 일이다


침 남편이 아팠

우리는 귀촌을 했다.

자연스럽게 양가 가족들로부터 심리적, 물리적으로 한 발 떨어질 수 있었다.




인생 스토리를 다시 쓰기에 늦 때는 없다.

아이로 자란 어른의 마음속에 '항상 최선을 다해 달려'라며 혹독하게 채찍을 휘두르 폭군이 산다.


그간 나  무너지는 걸 막기 위해 스스로 견고한 틀을 만 그걸 지켜내려 애썼다.그리고 한때 것들나를 든든하게 지켜주었다.

그러나 이제 나는 전하. 


나는 지금 들과 이별을 선언하고

통제의 지옥에서 벗어났다


'어른아이로 자라서 가슴 ' 수많은 어른들이제는 자신의 삶을 살아내면 좋겠다.


아팠던 과거도 내 인생에 대한 책임을  지금의 나라는 사람을 만들어준 소중한 생의 한 부분. 따뜻하게 품어주면 좋겠다.


인생 스토리를 다시 쓰기에 늦 때는 없다.

더구나 백세시대다. 아마 나에겐 앞으로 몇십 년시간이 기다리고 있 다.이만하면 충분한 시간이


내가 힘들 때는 누가 나를 위로해 주지?

그건 바로 나.

나 자신 



<당신의 경계는 안녕하십니까?>

인용: 나는 내가 먼저입니다 / 매일경제 신문사 / 네드라 글로버 타와브 지음


* 나는 주변 사람들을 돕고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듯한 기분이 든다.

1. 그렇지 않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문제에 대해 관여하지 않는다

2. 종종 그렇다.

3. 그렇지 않다.

나는 내 한를 잘 알고 있어서 되도록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을 제안한다.


1. 경직된 바운더리

2. 허술한 바운더리

3. 건강한 바운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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