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명절에 대한 보복

자유에 대해 생각한다

by 즐거운가

명절에 요리 안 하는 여자.

나는 명절 요리를 하지 않는 여자다.

이제 나에게 명절은 그저 365일 중 같은 무게를 지닌 하나의 날일 뿐이다.

아니 그렇게 여기고 싶다.


명절이지만 평소와 다름없이 구미가 당기는 음식으로 아침을 먹는다.

명절과 제사 파업을 선언한 처음 몇 년간 남편은 마누라의 이런 행태에 서운한 빛이 역력했다.

아무리 그래도 추석이면 송편, 설날이면 떡국쯤은 챙기고 간단하게, 전이나 나물 한두 가지라도 오를 것을 기대했을 것이다.


한 번은 명절에 대한 예의를 상실한 내 상차림에 "설(추석) 날인데 너무 한다"라고 화를 내기도 했다.



이해된다.

그는 습관처럼 삼십여 년 가까이 뚜벅이 아내가 퇴근길에 팔이 빠지게 며칠씩 시장을 본 먹거리로 종일 지지고 볶아서 차린 상을 자신의 가족들과 함께 받았었다.

그러니 결혼 생활 중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그 상황이 처음에는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더구나 지금은 마누라가 일을 그만두었다.

심지어 달랑 단둘이만 살고 있다.


그러나 이해해 달라.

나는 현재 게으름을 피울 자유를 한껏 누리는 중이니까.

아울러 지나간 명절날들에 보복하듯 호사스러운 교만을 떨고 있다.



요리하지 않을 자유를 잃다

나는 결혼 전 요리를 매우 즐기는 사람이었다.

한때는 TV에 나오는 요리사들이 부러웠다.

내가 해준 음식을 먹고 동생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더없이 기분이 좋았다.


'요리를 즐기는 사람이었다'라는 과거형 시제를 쓴 이유는 다들 짐작하시리라.


세상 풍파를 겪어보지 못한 말간 눈빛과 얼굴을 가진 아가씨였던 나는 명절에 요리할 자유와 안 할 자유 모두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결혼 후 요리하지 않을 자유를 잃었다.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내 건강 상태와 무관하게 명절이면 장보기부터 마무리까지 내 책임이 되자 어느 순간 요리는 즐거움이 아닌 불쾌한 중노동으로 변해버렸다.

오십을 넘기자 체력은 더 떨어졌고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대체 이 의무를 언제쯤 벗어날 수 있을까?' 상상하곤 했다.


도저히 몸을 움직일 수 없을 만큼 건강이 악화하거나, 죽기 전에는 안 할 자유가 허락되지 않으리라는 생각에 미치면 맥이 풀렸다.




요리 안 할 자유를 선언하다

남편이 갑자기 암에 걸렸다.

직장을 다니며 혹독한 항암과 수술 수발을 들다 보니 나까지 나가떨어졌다.


나는 추석을 며칠 앞둔 남편의 퇴원쯤에 스스로 명절과 제사 상차림의 의무를 벗어던졌다.


그리고 30여 년 만에 처음으로 "명절 연휴가 되면 지루하고 심심하다"는 사람의 기분을 경험할 수 있었다.

평화롭기 그지없는 달콤하고 사치스러운 지루함이었다.

다음 항암을 위해 체력을 회복시키려고 막 퇴원한 남편과, 그간 엄마의 집밥을 곯은 두 딸을 살뜰하게 돌보며 마음 아픈 와중에도 편안한 행복감을 느꼈다.




삶이 깃털처럼 가볍다

내가 의무를 벗어던지자, 나로 인해 여러 명이 서운해했다.

대신 내 깃털처럼 가벼워졌다.

나는 내 결혼 생활의 무게를 명절과 제사의 의무를 벗어나지 못했던 날들과, 의무에서 벗어난 이후로 구분된다고 느낀다.

세상에!

상차림

그깟 게 뭐라고!


의무의 무게가 그토록 인생을 짓누를 수 있다는 사실에 나 자신도 놀랍다.

그러니 주변에 나처럼 명절이나 제사의 무게로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제발 '그깟 며칠'이라는 표현은 삼가면 좋겠다.



삶은 산자를 위한 것

여전히 명절이면 방송에서 차례 상차림 비용이며 명절 음식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러나 나는 애써 한 귀로 흘린다.

시아버님은 참으로 좋으신 분이었다.

내가 호호백발이 될 때까지 제사를 챙겨드렸다면 더 좋았을 일이다.

그러나 나는 병원에서 100일 동안 보호자 침상에서 쭈그려 자면서 깨달았다.


항암제 독성으로 머리털이 다 빠지고 피부색이 새카맣게 변해버린, 백혈구 수치가 제로를 찍어 1인실에 격리된 남편을 보며 뼈저리게 느꼈다.

삶은 죽은 자가 아닌 지금 이 땅에 발을 붙이고 숨을 쉬는 살아있는 자를 위한 것임을.

죽은 자를 위한 뒤늦은 눈물이나 성대한 제사상 따위는 부질없음을.

산자인 나는 내 건강과 즐거움을 우선하며 살자고 결심했다.




그렇다고 잊은 것은 아니다

나는 친정아버지께 못한 효도의 몇백몇 천배를 시아버지께 했다(그 사실을 떠올리면 친정아버지께 너무 죄송하다).

함께 살 때는 퇴근길에 매일 장을 봐서 좋아하시는 음식과 따뜻한 밥을 지어드렸고, 해마다 정성껏 생신상을 차렸고 병원에 계실 때는 틈나는 대로 반찬을 해서 날랐다.

지금도 나는 점잖고 인자하셨던 그분을 잊지 않았다.

다만 제사상을 차리지 않을 뿐이다.

명절과 제사쯤이면, 어느 날 불쑥 당신 혼자 반지하 단칸 셋방에 찾아오셔서 임신한 며느리에게 던지다시피 우족을 건네시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듯 사라지셨던 그분이 더욱 생각난다.

500원 하는 사과 한 알도 아까워 사 먹지 못할 만큼 허리띠를 졸라매고 살던 그 시절, 그 우족은 내게 황송한 호사였고 평생 먹어본 우족 중에 가장 맛났다.

하지만 내가 아니면 이어지지 못하는 명절이나 제사라면 더 이상 이어가고 싶지는 않다.

나는 아버님 살아생전 마음을 다했다.


제사를 중단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나는 전혀 그립지 않아

가끔 그 옛날 명절의 끈끈했던 가족애가 아쉽고 그립다는 말들이 들린다.


그러나 나는 '맏며느리는 하늘이 낸다'라는 칭찬인 듯 칭찬 아닌 말을 들으며, 내 돈과 몸과 마음을 갈아 며칠씩 치러야 했던 그날들이 전혀 그립지 않다.


가족애를 위해서라기에 그저 견뎠을 뿐이다.

그런 글을 만나면 솔직히 불쾌하다.

대개 그들은 누군가 수고한 대가로 끈끈한 가족애를 마음껏 누릴 수 있었던 사람들이다.

농경 사회의 몰락에도 불구하고 그 누군가의 수고로 명절은 오랜 세월 명맥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더 이상의 수고를 원하지 않는다.지금도 반란은 계속 진행형이다.

우리 사회에서 해도 될 자유와

안 해도 될 자유를 모두 소유한 자들이

'안 해도 될 자유만'을 선택적으로 마음껏 누린 결과이기도 하다.




함께하는 즐거움

귀촌을 하며 집을 지을 때 내가 가장 많이 신경을 쓴 부분은 부엌이다.

특히 조리대를 길게 빼려고 노력했다.

전에 살던 아파트는 넓은 부엌에 비해 동선이 비효율적이었다.

어른 둘 이상은 나란히 서서 일하기 불편했다.


부엌이 좁다는 이유로 반가운듯 뒷정리에서 도망치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집을 지을 때 그 불편함을 잊지 않고 개수대와 가열대 사이에 넉넉한 길이의 조리대를 두었다.

실평수 24평의 아담한 주택이지만 덩치 큰 어른 셋도 나란히 서서 씻고, 썰고, 볶을 수 있다.


이곳은 유아기 손녀들이 오면 나란히 의자를 놓고 내가 요리하는 것을 구경하거나 참여하는 신나는 놀이터가 된다. 커다란 부엌 창 너머로 꽃을 보며 함께 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유독 몸이 천근만근 무겁게 느껴지거나, 손님들이 몰려온다는 소식에 손이 바쁠 때면 나는 남편에게 씻고 다듬기를 부탁한다(그는 음식은 아주 잘 먹지만 요리 솜씨는 꽝이다. 일부러 그러는 것 같다 ㅎㅎ).

힘들 때 누군가 거들어준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그러고 보니 유명 요리사 옆에는 늘 보조자가 있다. 그래서 그들은 평생 연구하며 더 즐겁게 요리할 힘을 낼 수 있는 것 같다).

옆에서 조금만 거들어줘도 힘이 난다.

심지어 마지못해 시작한 요리가 어느 순간 즐거워진다.

그 순간 나는 더 잘 웃는 다정하고 좋은 성격을 가진 사람이 된다.




갈수록 요리가 즐거워지는 이유

이제 나도 명절이 즐겁다.

더 정확히 말하면 명절이 두렵지 않다.

아무리 아파도 명절과 제사를 의무 방어전처럼 치러야 했던 유쾌하지 못한 기억도 점점 흐릿해지고 있다.

어쩌면 몇 년 후 나는 지금보다 좀더 명절다운 아침상을 차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남편과 단둘이 살지만 귀촌 후 나는 다양한 요리를 시도하는 사람이 되었다.


요리를 안 할 사치를 누리다 보니 마음이 편해진 까닭이다.점점 요리할 자유를 더 크게 누리고 싶어진다.

어떤 자유를 선택할지 그 기준은 내 건강 상태와 기분이다.

그야말로 내 맘이다.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고

할 자유와 안 할 자유 모두를

편안한 마음으로 행사할 수 있을 때

인간은 비로소 진정한 자유를 누리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명절이나 제사뿐이랴?

매사가 다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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