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사막, 요르단에서 살아가기 위한 안내서
앞에서 밝힌 바와 같이 나는 한국국제봉사단원으로 소속되어 임지인 타필라 기술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타필라 기술 대학교 공과대 토목과에 소속되어 교재만을 이용하는 이론 분야와 현장에서 필요한 실습 분야인 측량 수업을 가르치고 있다. 한 주에 두 번, 총 6시간의 수업을 실시한다. 각 강의당 30명 남짓 되는 학생들이 수업 청강을 위해 강의실로 찾아온다.
처음에 학생들에게 놀란 것은 휴대폰을 들고 수업에 들어오지만, 필기도구와 같은 수업에 필요한 물품들을 수업 시간에 지참하지 않고 온다는 사실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시험 기간 중 문제를 풀기 위해 꼭 필요한 계산기를 지참하지 않는 학생들을 보면서 학생들의 행동에 대하여 이해하기 시작했다. 또한 분명히 명시된 교재가 있는데도 교재를 챙겨서 수업 시간에 가져오는 학생들의 수도 퍽 적은 편이다. 수업 교재를 구입한 사람 대부분은 제본을 해서 만든 교재를 가져온다. 펜을 가져오지 않아 빌리는 학생, 연습장 한 권에 모든 과목의 필기를 다 하는 학생, 배움에 의지가 존재하는지 궁금하게 만드는 학생 등, 활동 기간이 마무리되는 지금도 아직 존재하고 있다.
수업에 참여하기 전, 수업의 분위기를 익히기 위해 청강을 했던 기간 중 학생들과 친해졌더니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온전히 학생들 앞에 권위를 갖고 서기가 힘들었다.
사회에서 무엇을 했는지보다 학위에 굉장히 많은 관심이 있는 사회이다 보니, 학생들은 먼저 학위에 대하여 물어본다. 한국과 다른 이들의 평가 방식이 나를 당황하게 했다. 먼저 사람을 학위로 평가한다. 외국에서 학위를 받았는지 아닌지, 외국 학위 중에서는 영국과 같은 유럽 국가의 학위를 미국 대학교의 학위보다 더 인정해주는 분위기이다. 경력에 대한 부분보다는 박사와 석사 학위에 대하여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다. 지금 일하고 있는 대학교에서 나의 역할을 정할 때 가장 많이 작용한 부분은 사회 경력과 같은 사항이 아닌, 학위였다.
수업을 진행하기에는 언어적으로 부족했기에 학생들을 통솔해보려 애썼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학생들에게 적응을 했지만, 교수와 함께 수업에 들어가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는 특별히 힘든 점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혼자서 수업에 들어가면 학생들을 집중시키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교회 주일학교 과정에서 몇 년간 유치원 학생들을 가르친 적이 있다. 몇 명이 안 되지만 한 명을 집중시키면 다른 아이가 장난을 치고, 다시 그 아이를 집중시키면 다른 학생이 딴짓해 진땀을 뺀 적이 있다.
나이는 다르지만 그들과 별 다를 바 없는 행동을 하는 요르단 대학생들을 초반에 만났다. 수업 초반에는 신기한 동양인이 앞에 서 있는 것이 신기해서 집중하지만, 그 효과도 몇 분이 지나면 사라져버리고 만다. 자신들이 배운 방법과 다르면 먼저 자신의 입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학생들의 모습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쉽게 기죽거나 포기할 내가 아니다. 측량이라는 분야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배워온 과목이었기에 자신감과 실력으로 수업을 진행하였다.
측량 장비를 이용하여 문제를 푸는 과목이었기에 장비 운영에 대해 많은 시범을 보여주며 내가 지금까지 익힌 방법을 설명하였다. 새로운 기기 운영 방법에 대하여 강의를 할 때마다 작은 마찰이 생겼다.
자신들이 배운 방법과 내가 가르치는 부분이 다르기 때문에 내가 알려준 방법으로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전 시간에 열심히 가르쳐준 방법을 다음 시간에 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잘못 가르치는 것은 아닌지, 오히려 다시 한 번 점검해보기도 했다.
내가 가르치는 방법이 문제가 있는지, 아니면 도대체 왜 학생들이 저렇게 행동하는지에 대하여 요르단에서 오래 거주하신 교민 분에게 여쭈어 보게 되었다.
“요르단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변화를 두려워해.”
유목민의 성향이 강한 민족의 특성상 새롭게 변화를 하는 것보다 지금까지 해왔던 방법을 고수하는 고집이 강하다는 것이다.
변화무쌍한 사막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자신들의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해온 방법으로 대처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는 것을 이곳 사람들은 삶으로 배워온 것이다. 새로운 방법이 더 유용할 수도 있는데 말이다. 다른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 어쩌면 이들에게 죽음을 불러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고집이 굉장히 강한 학생들에게 아직도 기기를 다루는 여러 가지 운영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시범을 보여준다. 지금은 학생이니, 나중에 각자 직업을 찾아 현장에 가면 기기를 응용할 수 있도록 말이다. 수업 시간에는 중요한지 모르고 지나갔던 많은 부분들이, 시간이 지나 사회에 나가서 불현듯 생각나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으니 말이다. 하나하나 보여주다 보면 각자 마음에 드는 부분을 취하는 학생들이 나타나겠지 하는 실낱같은 기대를 가져본다.
대학교 수업인데도 수업 중 여자와 남자의 분류가 엄격히 이루어진다. 장비를 들고 흙밭에 들어가는 행위는 전적으로 남자가, 그리고 조금 소소한 부분들은 여자가 한다.
한국에서 수업을 할 때는 모두 동일하게 역할 분담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덥다고 그늘을 찾아서 누워버리는 학생들, 작은 측량 장비를 챙겨오지 않는 학생들, 가끔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하는 학생들에게 열변을 토하기도 하지만, 그들의 웃는 얼굴을 보며 그저 같이 웃어버리는 나를 발견한다.
학교를 통해 만나게 되어버린, 어쩌면 우연 같은 필연이 인연이 아닌가? 그래서 나는 좋은 게 좋은 것이라고 허허하며 웃게 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