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해서 시작한 한옥 독서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부터는 어느 정도 관성이 생겨 재미 삼아 이것저것 읽고 있다. 마음에 드는 한옥을 찾을 수 있을지, 매매에 성공을 해도 공사를 잘 마무리 짓고 이사까지 잘 해낼 수 있을지 비록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이긴 하지만.
여러 글을 읽으면서 드는 의문 중 한 가지는, '과연 나는 지금 살고 있는 동네에 대해, 또는 건물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는가?'이다. 아무것도 모른다고 해도 사는데 지장이야 없겠지만,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지 않던가? 더 잘 알아야만 비로소 눈에 보이는 색다른 것들이 삶을 한층 즐겁게 만들어 주리라 믿는다.
1. 서울 삼청동 35번지 도시한옥주거지 필지구획에 관한 연구
https://www.auric.or.kr/User/Rdoc/DocRdoc.aspx?returnVal=RD_R&dn=155461
북촌한옥마을하면 으레 떠오르는 그 사진 속 풍경은 가회동 31번지이다. 북촌 전체에서도 멋진 한옥이 가장 많이 남아있는 동네인데, 이곳을 찾는 수많은 관광객들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 상시 거주 중인 주민은 주택의 수에 비해 좀 적은 느낌이다.
그 가회동 바로 서쪽으로 붙은 동네가 삼청동 35번지인데, 삼청동 하면 멋진 음식점과 상점가가 위치한 삼청동길 주변을 떠올리겠지만 이 35번지는 언덕 위에 위치한 1 구역 및 2구역, 그러니까 주거지역이다. 삼청동 35번지에는 대지면적 30-50평인 가회동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은 크기의 필지가 많고, 실생활의 편의성을 위해 집이 다양한 방식으로 개조되어있는 경우도 많다. 얼핏 보면 말끔하게 정비되지 않았다는 인상을 받을지도 모르겠으나, 오히려 그래서인지 내 눈에는 이곳이 좀 더 사람 사는 동네처럼 보인다- 물론 전선 지중화 및 도로정비는 그래도 좀 하면 좋겠지만.
이 논문은 바로 그 삼청동 35번지의 필지가 나뉘어 가는 과정부터 시작하여, 동네의 지형이나 그에 따른 주택 진입로의 분석, 내부 공간의 배치에 대한 내용 등을 상세하게 다룬다. 염두에 두고 있는 필지가 있다면, 그 필지가 언제 만들어진 건지, 대규모 주택지를 건설하기에는 불리한 언덕 지형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찾아보는 재미가 있다.
2. 북촌 튼 ㅁ자형 한옥의 유형연구
https://scienceon.kisti.re.kr/srch/selectPORSrchArticle.do?cn=JAKO200429734174826&dbt=NART
서울도시한옥하면 내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형태는 ㄷ자 구조이다. 실제로 위성사진을 봐도 그 구조가 가장 많이 눈에 띄는데, 이 논문은 연구 당시 북촌에 남아있었던 900여 채의 한옥 중 단 59채(약 7%)에 해당하는 튼ㅁ자형 한옥을 주제로 다룬다.
작은 크기지만 안마당에 더해 사랑채에서 쓸 수 있는 바깥마당이 있고, 동서(東西)보다는 남북(南北)으로 긴,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필지에 주로 지어진 튼ㅁ자형 한옥. 삼청동에서 유명한 찻집 중 하나인 "차 마시는 뜰"이 바로 이 형태의 한옥인데, 논문을 읽은 뒤 차를 마시러 가보면 또 집이 새롭게 보인다.
3. 물길의 변화로 본 북촌의 장소성
https://kiss.kstudy.com/thesis/thesis-view.asp?key=3517379
다시 살려낸 청계천은 여러 효용에도 불구하고 인공하천이니 혈세천이니 하는 비판을 받는다. 그러한 비판에 대체로 동의하는 편이다. 하지만 청계천의 지천을 모조리 복원하지 않는 이상 다른 방법이 있었나 싶고, 모든 물리적인 난관을 뚫고 복원했다고 해도 물이 콸콸 흐르지 않는 청계천을 시민들이 지금처럼 반겼을지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하천의 복원보다 선행돼야 하는 건, 가물면 마르고 비가 내리면 차는 하천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받아들일 수 있는 우리들의 마음 아닐지.
이 논문은 여러 자료를 검토하는데 그치지 않고 '북촌 토박이'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동네에 흘렀던, 또한 지금도 도로 밑 어딘가에서 흐르고 있는 물길을 찾는다. 실려있는 사진도 꽤나 볼만한데, 글을 읽고 사진을 보다 보면 전부는 불가능할지라도 물길이 일부라도 복원되면 참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삼청동 꼭대기에 가면 복개되지 않은 지천이 집들 사이로 흐르는데, 이방인이 보기에는 세상 운치 있다.
삼청동천(중학천)의 경우 서촌을 흐르던 백운동천 및 옥류동천과 함께 복원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었는데, 아무래도 교통이나 상권 문제 때문인지 요즘은 영 말이 없다. 엉뚱하지만 소박한 꿈이 하나 있다면, 너무 나이가 많이 들지 않았을 때 삼청공원에서부터 걷기 시작하여 삼청동천, 청계천을 지나 지금은 사라져 버린 중랑천 합수부의 저자도(楮子島)까지 가 보는 것. 지천도 복원해야지, 섬도 복원해야지 갈 길이 멀지만 그래도 기대는 해 보련다.
4. 최욱의 한옥 리노베이션에 나타난 전통과 현대 사이의 연속성 논의
https://www.auric.or.kr/User/Rdoc/DocRdoc.aspx?returnVal=RD_R&dn=322227
"나 한옥으로 이사 가려고"하면 빠지지 않고 나오는 질문이 몇 가지 있다. 그중 가장 인상적인 질문은 "그럼 서울에서 아궁이 때고 사는 거야?". 단독 주택도 발전하고, 빌라도 발전하고, 아파트도 발전하는데 대체 왜 한옥은 발전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걸까? 따지고 들자면 아파트에도 아궁이와 장독대가 있었는데!
이 논문에 소개된 주택 중 한 곳에 대한 매매를 고려했었다. 내부 공간과 안마당의 경계를 더 흐리게 만들고자 하는 건축가의 의도가 재미있는데, 이런 식으로 한옥을 수선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좋은 예가 아닐까 싶다- 내 취향에는 맞지 않는다.
5. 알기쉬운 한옥 수선 길잡이
https://news.seoul.go.kr/citybuild/archives/37175
한옥의 신축이나 대수선 등을 염두에 두는 경우 반드시 읽어볼 만한 자료이다. 문제가 있다면 비전공자가 읽고 어느 정도 소화하기에는 대단히 양이 많다는 것. 이 내용을 모두 읽고 완벽하게 이해해서 어느 정도 실무(공사)에도 적용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게 맞다. 그래도 읽어두면 건축가와의 미팅에서 반드시 큰 도움이 되리라.
아무것도 읽지 않아도 북촌 한옥을 매매하고, 집을 고치고 사는 데에는 지장이 없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삶에 있어서의 다른 부분도 죄다 그렇지 않을까? 돈이면 안 되는 게 없는 세상이라고는 하지만 지식이나 식견 같은 것만큼은 자신의 노력이 아니면 얻을 방법이 없다. 아름다운 것을 보아낼 눈도, 좋은 음악을 들어낼 귀도, 그 어떤 것도 없다면 부유할지라도 그건 얼마나 재미없는 삶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