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유명한 프랭크 시나트라의 말이다- “You only live once, and the way I live, once is enough”, 우리는 모두 딱 한 번 사는데 자신처럼 살면 그 한 번으로도 족하다는 말. 내가 하면 비웃음 거리가 될 뿐일 말도 시나트라가 하니 그럴싸하다. 여하튼 나는 한 번 사는 걸로는 영 성에 차지를 않아서 그 아쉬움을 채우고자 책을 읽는다. 그런 관계로 순수 문학이 아닌 지식 습득을 목적으로 하는 책 읽기는 거의 하지 않는 편.
그랬던 나의 독서 취향에 북촌 한옥으로 이사를 결심한 이후부터 변화가 생겼다. 한옥에 대한 비문학 서적을 읽기 시작한 것. 주택 매매와 수리 전반에 대한 불확실성과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목적이었다. 막연하게 시작한 독서였지만 책을 잔뜩 읽고 나니 집을 보아도 다르게 보이고, 건축가와의 대화도 편하게 흐른다. 여전히 마음은 불안하지만 그래도 책을 읽으며 인적이 드문 길을 걸어갈 수 있는 용기를 미량 얻었다.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1. 나무에게 배운다(니시오카 츠네카즈)
세대를 거듭하며 이어질 건물,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시간만큼을 이미 살아낸 나무를, 자신의 생을 온전히 바쳐 지켜나가는 호류지(法隆寺) 대목장(大木匠)의 이야기. 어쩌면 한옥에도 비슷한 면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파트야 사십여 년이 지나면 다시 짓지만, 한옥의 경우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지어진 집을 꾸준히 고쳐 사용하고 아마 다음 주인에게 또 넘겨주게 될 테니.
★2. 나의 집이 되어가는 중입니다(이현화)
낡은 한옥을 구해 고치는 많고 많은 이야기 사이에서도 이 책이 빛나는 이유는, 집을 사고파는 대상이라기보다는 지금까지 이어져 온 누군가의 시간과 기억, 어쩌면 삶 그 자체를 일부 이어받는 매개체로 보기 때문이다. 진정성이 있는 이야기에 내 집이 지어지는 것이 아님에도 덩달아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경험까지.
3. 마당의 기억(원가희)
마당이 있는 집에 실며 조용히 쌓여가는 한 가족의 행복한 기억.
★4. 북촌, 나의 서울(한정식)
평생을 서울에 살며 변해가는 도시 속에서 어떤 의미에서는 실향민이 되어버린 한 작가의 글과 사진. 그야말로 사람 사는 동네였던 북촌의 모습, 지금보다 분명 더 따듯했던 서울을 좋은 글과 사진으로 만나게 된다.
5. 사라져 가는 풍경들(이용한)
오래되었고, 심지어 어떤 경우 한 번도 본 적 없는 것이지만 향수가 불려 일으켜지는 풍경.
★6. 아파트 공화국(발레리 줄레조)
‘한국에서는 이런저런 이유로 아파트만이 정답이다’라는 결정론적인 태도에 경종(警鐘)을 울리는 명저(名著).
★7. 옛 그림으로 본 서울(최열)
옛 그림을 통해 만나는 산과 물의 도시 서울. 단순히 그림을 소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안에 녹아있는 역사와 삶을 폭넓게 그려낸다. 서울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필독.
8.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한옥(신영훈)
한옥에 대한 기반 지식을 쌓기에 굉장히 좋다. 책을 읽다 보면 한옥뿐만이 아니라 내 주변에 존재하는 수많은 건축물에 대해 자연스럽게 생각해보게 된다.
9. 작은 한옥 한 채를 짓다(황인범)
서촌의 작은 한옥 한 채가 완성되어 가는 과정을 목수의 이야기로 들을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 한옥 건축을 다루는 대부분의 책이 서울도시한옥과는 괴리가 있는 큰 집을 다루는 반면, 이 책에 등장하는 집은 전형적인 살림집이라 나와 같은 건축주 입장에서 특별히 유용하다.
10. 정원 가꾸기의 즐거움(헤르만 헤세)
정원에서 배우는 삶과 행복의 본질.
11. 정원가의 열두 달(카렐 차페크)
끊임없이 반복되는 삶의 순환. 사람을 닮은 정원 이야기.
12. 집을, 순례하다(나카무라 요시후미)
유명 건축가들이 지은 크고 작은 집을 구경하며, 그들이 지은 집에 공통적으로 담겨있는 빛, 바람, 그리고 사람의 길을 찾아보는 재미.
★13. 집을 쫓는 모험(정성갑)
아파트라는 건물을 떠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아니면 꼭 집에 국한되지 않더라도 다수가 택하지 않은 길을 가려는 사람들에게 묘한 용기를 주는 책.
14. 한옥의 고향(신영훈)
세 권(한옥의 고향, 한옥의 향기, 한옥의 조형의식) 중 가장 편하고 재미있게 읽힌다. 한옥의 저변에 녹아있는 마음의 고향을 찾는 여행.
행복하기 위해서는 참 필요한 게 많다. 돈도 필요하고, 좋은 직업과 비싼 차, 훌륭한 위치의 화려한 부동산도 필요하다. 문득 이쯤에서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이 떠오른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가 있지만, 불행한 가정에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다던. 세상 행복한 가정이 저 모든 것을 충분한 만큼 갖췄을 리 만무하다.
나는 집의 근본적인 목적이 투자가치나 부(富)의 현시(顯示)에 있다고 믿지 않는다. 내가 읽은 책 속의 모든 집은 어떠한 수단이나 행복을 만들어 내기 위한 필요조건이라기보다는 살았던 이의 기억과 시간이 고스란히 쌓이는 공간이다. 다른 목적이 전혀 없다. 아마 행복한 가정에서 보이는 비슷한 모습 중 하나가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