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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하당 Nov 19. 2021

불안과의 싸움

한 채씩은 많이들 가지고 살길래 집 사는 게 쉬운 일일 줄 알았지.


식권을 가지고 오지 않은 날은 회사 식당에서 외상을 한다. 어쩌다 보면 그런 날이 하루, 이틀을 넘어 일주일이 되는 경우도 있는데, 상황이 그렇게까지 되어버리면 고작 한 장에 천 원짜리임에도 식권 받는 분 얼굴을 보기가 굉장히 민망해진다. 관대한 우리 회사는 외상 횟수를 세어놓지 않기 때문에 갚을 때는 알아서 갚아야 하는데, 며칠간 무전취식하게 해 준 것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라거나, 아니면 마음속 이자 같은 개념으로 일곱 장만 갚으면 되는 때에도 슬쩍 한 장씩 더 끼워 내곤 한다.


그런데 집을 사고자 하니 그런 여유는 어림도 없다. 뭔가를 더 얹어서 갚는 건 고사하고 단 한 푼이라도 더 빌려야 하는 상황이니. 게다가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밥을 먹게 해주는 우리 회사와는 달리, 돈 빌리는데 따지는 것도 참 많다- 경제적 문맹을 넘어 경제적 백치 상태인 내게, LTV니 DSR이니 하는 얘기는 아예 다른 세상 이야기다(지금도 여전히 모른다). 특정 규제가 발표되기 전 부리나케 마이너스 통장도 만들어 놓았지만 예전에도 그랬도 지금도 그렇고, 마이너스 통장은 "인출할 수 있는 액수"가 뻥튀기된 걸 보면서 흐뭇해하는 용도이지 실제로 빼 쓰는 용도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보통은 없으면 안 쓰면 그만이니까. 너구리 마냥 돈을 통장에 넣어둘 줄만 알았지 바보 같이 살아온 내가 문제인 것이지만 여하튼 이래저래 마음이 참 어렵다.


집을 무사히 사게 되어 공사가 시작되도 문제다. 그 기간 동안 나는 어디 가서 살아야 한단 말인가? 집 근처 오피스텔을 알아봤더니 보증금 이천만 원에 월세가 백오십만 원이란다. 미쳤어? 무엇보다 스무 평짜리 아파트에 이고 살던 짐을 열 평 남짓한 오피스텔에 모조리 넣어낼 자신도 없다. 이럴 때 대학원생을 시키면 가능해진다고들 하더라만. 요즘은 그런 이유로 사택을 알아보고 있다. 내규상 사택을 빌릴 수 있는 사정이 아니라 어찌 될지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회사 사람들이 잔뜩 사는 구역에 들어가 함께 사는 게 좋은 일일지도.  


이래저래 불안하기만 한 요즘이지만 그래도 모든 일을 최대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자 노력 중이다. 미래의 내가 행복하기 위해 오늘의 내가 불행한 삶은 이제는 싫으니.  


사택(2021), Pentax MX/Fuji C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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