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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하당 Nov 24. 2021

주택취득자금 조달 및 입주계획서

"주택취득자금 조달 및 입주계획서", 명칭이 참 거창하다.


그러니까 찬찬히 읽어보자면, 돈을 어떻게 마련할지에 대한 계획과, 입주는 또 언제 할지에 대한 계획을 들려달라는 소리인데,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사생활 아닌가? 필요한 자금이야 그동안 나의 시간과 건강을 재료로 하여 만들어낸 월급으로, 그래도 모자란 건 나의 다가올 시간과 건강을 재료로 하여 만들어 낼 미래의 월급으로 충당할 것이고, 입주야 공사가 어떻게 흘려가느냐에 따라 달라질텐데. 너무 불확실한 미래이기에 별로 계획을 세우고 싶지 않음에도 자꾸만 계획을 내라고 하니 슬며시 기분이 상한다.


 여하튼 주택 매매 계약을 체결하고 한 달 이내 이걸 작성해서 내야 한다니 투덜대면서라도 작성하는 수밖에. 하지만 서류를 열어보니 역시나 뭐가 뭔지 모르겠는 말 투성이다.

제출인 성명-주민등록번호 셀 정렬이 맞지 않는다, 국토교통부

게다가 공동명의로 계약했더니만 시작부터 막막하다. 두 사람의 정보를 서식 안에 욱여넣어야 하나, 아니면 두 장으로 작성해야 하나. 더하여, 우리 부부에게는 '누구 돈'이 얼마라는 건 없고 '우리 돈'이 얼마라는 것만 있는데 얼마씩 나눠서 낸다고 써야 하나. 어딜 찾아봐도 공동 명의 시 어떻게 하라는 지침 같은 건 없었다. 그리고 대체 나라에서 만들어 배포하는 서류인데 셀 정렬은 왜 맞지 않는 걸까.


결국은, 

1. 매매 총액과 대출 예정액을 반 정도로 나누고,
2. 각자의 은행 잔고를 비슷하게 맞춘 뒤,
3. 대략적인 입주일을 적었다.


하지만 진짜는 지금부터. 정말 우리에게 돈이 있는지 증명하는 서류를 내야 한단다. 그리하여 찾아온 인증서와 보안프로그램의 시간. 잔액 증명서에 정기예금이나 적금에 들어가 있는 돈은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도 중간에 알게 되었다(그래서 정기예금과 적금을 해약하고 해당 서류를 다시 뽑았다).


필요한 서류는,
1. 잔액 증명서,
2. 부채 증명원(대출, 마이너스 통장 등),
3. 표준임대차계약서(현 전셋집의 전세금),

4. 주택담보대출 부채 증명원 등

그렇게 점심시간부터 시작된 길고 긴 인고의 시간, 장인(匠人)의 마음으로 뽑아낸 서류 일체를 스캔까지 해서 부동산에 보내고 나니 어느덧 저녁시간이다.


다행히 큰 하자가 없었는지 며칠 뒤 부동산 실거래가 공개 시스템에 계약 체결 내역이 등록되었고, 아직 중도금도 내지 않은 상황임에도 시스템에 등록된 (미래의) "우리 집" 거래내역을 보고 있자니 괜스레 기분이 뿌듯해지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아, 이런 걸 바로 김칫국이라고 하는 거구나. 시원하고 맛있네.


2021.05.21. 삼청동 한옥 매매 계약


삼청동 고양이(2021), Pentax MX/Yashica 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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