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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하당 Dec 13. 2021

섬초 한 소쿠리에 이천 원

무서록

24절기 중 무려 스무 번째 절기, 소설(小雪). 그 근처의 어느 추운 날 지하철역 출구를 잘못 찾아 엉뚱한 곳으로 나와버렸다.  


청량리역 인근은 요즘 그야말로 상전벽해(桑田碧海)의 시간을 지나는 중이다. 아직 재개발이 끝난 것도 아님에도 옛 모습은 이미 찾아보기 어려운 와중, 끝을 모르고 높게 오르는 건물 옆 나즈막한 재래시장만이 여전하다.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 물건을 사고팔기 시작하면 주변으로 더 많은 사람이 모이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시장이 된다. 오늘날의 마트처럼 '여기서부터 여기까지가 시장이다'라고 정해놓은 것이 아니기에, 으레 주변에는 노점이 들어선다. 시장 안에 자리를 잡을 수 없던 사람들, 대체로 변두리에 위치한 사람들.


유달리 춥게 느껴지던 겨울의 초입, 잘못 나온 6번 출구에는 그런 노점상이 있었다. 시(市)에서 야심 차게 펼치던 정비 사업 덕분에 번듯한 틀 안에 들어앉게 된 작은 가게들.  소쿠리에 소담하게 쌓여있는 달래는 하나에 이천 원. 그리고 그 옆 섬초도 이천 원. "달래는 천 원어치, 섬초는 한 소쿠리 주세요" 하며 오천 원짜리 한 장을 건넨다.  


까만 비닐봉투에 잘 다듬어진 섬초가 자꾸만 더 들어간다. 분명 한 소쿠리 샀는데 두 소쿠리 같은 한 봉투가 되어간다. 그 와중에 냉이가 눈에 들어온다.  "아, 이거 냉이도 천 원어치 주세요". 가득 찬 마음으로 거스름돈을 받아 돌아섰다. 그런데 가만, 거스름돈이 이천 원이다. 사천 원어치 샀는데. 얼른 돌아서서 다시 천 원을 돌려드린다. 


누군가는 천만 원짜리 가방을 사기 위해 줄을 서고, 어떤 집은 하룻밤에 수억 원이 비싸질 때, 한편에서는 섬초를 한 뿌리씩 곱게 다듬어 이천 원에 파는, 그런 시대. 소설이라 그랬을까,  돌아오는 길 마음속에서는 시리도록 눈이 내렸다.   


겨울 숲(2017), Pentax MX/Fuji Venus 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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