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든 판 위의 사람들
사람을 관리하는 데에는 나름의 주제와, 나만의 스킬이 있다.
다양한 나이대와 서로 다른 직업,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집단에서는 의례 그렇듯
늘 즐겁고 평화롭기만 할 수는 없다.
길드장을 오래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운영진이라 불리는 친구들이 생긴다.
나는 장이고, 그 아래(라고 하긴 그렇지만 편의상) 각자 특화된 역할을
가진 친구들이 작지만 단단하게 뭉친다.
그들은 나와 함께 판을 짜는 사람들이다.
시간을 두고 천천히 살펴보면,
각자 '강한 구석'이 있는 사람들이 어느새 시스템 안에 들어와 있다.
내 스킬은 바로 '강한 친구를 알아보는 눈'이다.
자유롭게 풀어두고 관찰해보면 '강한 친구'들이 보인다.
내 친구들을 예로 들자면,
A는 채팅창에서 사람들과 가장 활발하게 소통한다.
“얘네 게임은 안 하고 말만 하나?” 싶을 정도로 채팅에 열심인데,
덕분에 인물관계도, 기류, 분위기 변화를 잘 파악한다.
길드원 간 누가 어디서 뭐라 했는지,
누가 요즘 안 보이는지도 알려준다.
B는 던전, 전쟁 같은 실전 콘텐츠에 특화된 친구다.
몇 시에 어디서 전쟁이 있었고, 누가 오지 않아서 어떻게 졌는지를 알려준다.
프리랜서라 내가 자는 동안 일어난 일들도 파악해서 알려준다.
C는 천성이 J다.
길드원들의 아이디, 나이, 투력, 직업(게임 내 역할)을
엑셀로 정리해서 주기적으로 배포한다.
D는 자상하고 세심한 성격으로
강화 실패나 현질 폭망 후 멘탈이 터진 사람들에게 1:1로 위로와 공감을 건네준다.
어느새 다들 그녀에게 찾아가 하소연하고 위로받는다.
그리고 나는?
나는 이 모든 걸 조합해서 공지하는 사람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역할인 것 같은가?
내가 직접 채팅을 많이 치거나, 엑셀을 만들거나,
컨텐츠를 뛰지 않아도 이 시스템을 만든 건 초반의 '나'다.
이렇게 단단한 운영진이 만들어지면
어떤 난관이 와도 지혜롭게 넘어갈 수 있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다섯 여섯 개의 머리가 모이면
혼자 하는 운영은 절대 이길 수 없다.
자기 잘났다고 혼자서 마음대로 하는 길드는
빨리 사라진다.
매장 운영도 마찬가지다.
1인 자영업자로 몸과 마음을 갈아넣는 데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배달 사고가 났을 때 재빠르게 상황 판단을 끝내고
재조리된 음식을 품에 안고 달려나가는 친구,
재료가 갑자기 떨어졌을 때,
어디서 구입 가능한지 파악하고 바로 사오겠다고 나서는 친구,
내가 자리를 비워도 알아서 빈 곳을 메꾸고
메니저처럼 움직여주는 친구.
한마디로, 내 가게처럼 움직여주는 강한 사람이 있으면 그 매장은 잘 굴러간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런 사람들을 찾는 건 게임보다 훨씬 어렵다.
게임에선 공통의 목표와 취향이 먼저고, 현실에선 '돈'이라는 이해관계가 우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실에서 '강한 사람'을 얻기 위해선
더 많은 시간과, 더 많은 공을 들여야 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을 만났다면, 절대 가볍게 흘려보내선 안 된다.
같이 가면 멀리 간다.
그 판을 짠 사람이 나라면
그걸 굴려주는 사람들을 더 단단히 안고 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