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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움과 멈춤의 미학

by nessuno

'여보, 당신 옷이 너무 많아. 옷을 좋아해서 산다면 산 수만큼 2~3개는 버려야 균형을 맞출 수 있어. 안 그러면 옷을 쌓아두고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을뿐더러 계속 쌓이게만 돼' 화창한 어느 봄날 겨울이 막 지나는 참이라 집사람과 겨울옷 정리하며 내게 한 말이다.


그 순간 불현듯 무엇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어떤 것을 손에 넣으려고 그렇게 애를 썼던 걸까요? 나는 집에 무엇을 아등바등 채우려고 안절부절못했던 걸까요?


예전 슈퍼스타K에서 경연자의 노래가 끝나고 심사위원이 얘기를 합니다. 좋은 노래를 부르려면 목소리에 힘을 빼라고 합니다. 연륜이 많은 연기자가 토크쇼에서 나와서 좋은 연기를 하려면 감정에 힘을 빼라고 합니다.


그러면 마음에서 힘을 좀 뺀다면... 저 또한 마찬가지이지 않을까요?


여기서 무너지면 끝이라는 마음에... 내 생각과 감정의 표현도 뭔가를 채우고 늘이는 것만 생각했지 비우거나 뺀다는 생각은 하질 못했습니다. 내속에 내가 가진 물질적인 것,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것, 남들과 비교가 되어 우위에 점할 수 있는 것만이 가치 있는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때 TV에서는 god의 '길' 노래가 흘러나왔다.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날 데려가는지.. 그곳은 어딘지..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오늘도 난 걸어가고 있네

사람들은 길이 다 정해져 있는지 아니면 자기가 자신의 길을 만들어 가는지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이렇게 또 걸어가고 있네

나는 왜 이 길에 서 있나? 이게 정말 나의 길인가? 이 길의 끝에서 내 꿈은 이뤄질까?

무엇이 내게 정말 기쁨을 주는지? 돈인지? 명옌지? 아니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인지?

알고 싶지만 알고 싶지만 알고 싶지만 아직도 답을 내릴 수 없네

자신 있게 나의 길이라고 말하고 싶고 그렇게 믿고 돌아보지 않고 후회도 하지 않고

걷고 싶지만 걷고 싶지만 걷고 싶지만 아직도 나는 자신이 없네

나는 왜 이 길에 서 있나? 이게 정말 나의 길인가? 이 길의 끝에서 내 꿈은 이뤄질까?

나는 무엇을 꿈꾸는가? 그건 누굴 위한 꿈일까?

그 꿈을 이루면 난 웃을 수 있을까


오~ 지금 내가 어디로 어디로 가는 걸까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살아야만 하는가?

나는 왜 이 길에 서 있나? 이게 정말 나의 길인가?

이 길의 끝에서 내 꿈은 이뤄질까? 나는 무엇을 꿈꾸는가?

그건 누굴 위한 꿈일까? 그 꿈을 이루면 난 웃을 수 있을까 ?'

나에게 왜 그랬냐고 꼬치꼬치 따져 묻고 싶을 때, 화를 내면서 닦달하고 싶을 때, 한 대 쥐어박고 싶은 순간에... 내 안으로 향하는 화살에 눈을 돌려 더 넓은 푸르른 하늘을 바라봅니다. 마음이 한결 편안해집니다. 마음에서 힘을 빼는 것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에는 왜 그랬는지... 한걸음만 떨어져서 바라보면 별일도 아닌데... 하룻밤만 자고 나면 생각이 달라질 텐데.. 그때는 좌불안석, 안달복달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제는 내 마음속에 들어있던 꽁꽁 숨겨둔 상자를 풀어봐야겠습니다. 미련이 남아서, 차마 지워버릴 수 없었던 일이라서.. 미움, 서러움, 시기심 같은 것들을 차곡차곡 넣어 두었던 걸 이제는 꺼내어 멈추고 비우고 지난날을 돌이켜 봅니다. 그쯤 되면 덧없었던 마음을 죄다 내다 버릴 수 있을 테니까요..


문제는 채운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왜 아픈지, 무엇이 그렇게 슬픈지 때로는 멈추고 비우는 것이 하는 것이 나의 영혼을 위로하는 일입니다.


지금이 아니면 벗어던질 수 없습니다. 지금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끊어 낼 수 없습니다. 바로 지금이 나를 옭아매는 그 모든 것들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순간입니다.


'이런' 오늘은 내가 실수했지만 괜찮아.. 실수는 누구나 하는 거니깐.. '아뿔싸' 어제는 누군가 내게 상처를 주었지만 괜찮아.. 약을 바르면 나으니깐.. 오늘도 나 자신을 미워하고 실망하고 괴로워했지만... 괜찮아 내일 다시 또 새롭게 시작하면 되니깐.. 내 마음의 나쁜 생각을 비우고 조용히 나를 들여다봅니다.


드넓은 까만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은 반짝이지 않는다고 해도 모든 것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습니다. 그런 내 영혼을 반짝이게 만드는 게 바로 내가 해야 할 일입니다.

내 영혼을 거두고, 입히고, 먹이는 자는 나밖에 없습니다. 굶기지도 말고, 추위에 떨게 하지도 말고, 지치게도 만들지 않는 주인만이 그 영혼에게 그만한 대접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루 종일 바쁘게 돌아가는 시간 속에서도 나만의 공간에서 연필을 들어 글을 쓰면서 잃어버린 내 영혼을 찾아가는 시간은 또 다른 나를 발견하는 시간입니다.


내 마음이 좋아하는 일을 찾기 위해서, 내 눈이 보고 싶은 것을 보기 위해서, 내 발이 가고 싶은 곳으로 가기 위해서... 걱정으로 가득 찬 그 마음을 조금은 비워 두겠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매, 새처럼 저 높이 하늘 위로 훨훨 날아오르기 위해 무수한 생각들과 소유하려 했던 것을 내려놓고 멈추고 비우는 연습을 앞으로도 쭉 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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