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둘째면서 내 맘을 몰라?

아들 2호와 엄마는 다른 듯 닮았다.

by 권혜주LUCKY JJU

아들 2호가 숨죽여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가랑비에 옷이 젖듯 베개가 눈물로 얼룩지도록 서럽게 운다.

무엇이 9살 아이를 저리 서럽게 울도록 만드나 싶어 속이 상하지만, 선뜻 토해내는 설움을 멈추게 할 방법이 생각나지 않는다. 서서히 감정이 추 스러지 기를 기다리면서 그냥 둔다. 어른인 나도 감정이 북받칠 때 곁에 누군가의 "괜찮아?" 한마디에 추스른 감정이 다시 올라와서 한참을 또 운 적도 있었다. 조금 냉정하고 너무한다 싶더라도 어차피 시작해서 쏟아내야 할 감정이라면 깨끗이 바닥을 비우는 것이 맞다고 믿는다.

훌쩍임이 없길래 울다 지쳐 잠든 건가 싶어 몸을 돌려 바로 눕혀주려는데 코 막힌 목소리로 아들 2호가 묻는다."엄마, 내가 형이면 좋겠어. 왜 둘째로 낳은 거야!" 닭똥 같은 눈물이 통통한 볼살 아래로 다시 흐른다. '이걸 어찌해야 하나... 아직 적절한 타이밍이 아니었나.' 순간 많은 생각이 지나간다. 육아서적으로 단련된 정답을 말해 주자니 엄마의 언어 답지 않아서 진정성을 못 느낄 것 같고, 엄마의 언어대로 하자니 상처 받은 마음에 소독약 바르듯 당장은 더 쓰라릴까 걱정이 된다.

"아~ 우리 2호 둘째로 태어나서 싫은 감정도 있구나. 그래 그럴 수 있어. 엄마는 우리 2호가 첫째로 태어났어도 엄청 씩씩하고 멋졌을 것 같고, 셋째 막내로 태어났어도 귀엽고 사랑스러운 애교쟁이였을 것 같아. 지금 둘째인 너의 모습 그대로 말이야. 엄마는 태어난 순서가 바뀐다고 우리 2호가 변한다고 생각지 않아. 이 세상에 2호는 단 한 사람 너밖에 없거든."

2호는 엄마의 추상화 같은 말에 말려들지 않는다.

" 아니~ 그게 아니고, 왜 형은 사촌 형이랑 할머니 집에 가서 게임하고, 놀고, 자고 그러냐고!! 나도 가고 싶었는데 형이 단호하게 안된다 하고 가버렸어." 가시처럼 목에 걸려있던 말을 뱉고는 긴 속눈썹이 눈물을 막아보지만 눈물샘이 터져 버린다. 그냥 그 마음이 어떤 건지 너무 잘 알 것 같아서, 훗날 마음에 응어리로 남아 있지 않길 바라며 꼭 안아주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30년도 더 된 지난 일이라 지금은 웃으며 이야기 하지만 나에게도 둘째라 서러웠던 일들이 셀 수도 없었을 거다. 뭐든지 새 거 좋은 거 먼저 하는 4살 위인 첫째 언니와 엄마 눈에 넣어도 안 아플 귀한 막둥이 2살 어린 남동생 사이에서 위아래로 치이고 밀리면서 일찍 철이 들고, 눈치껏 발 뻗어도 되는지 안 되는지 살피고, 언니랑 동생이 공부가 특기가 아닌걸 다행으로 공부 잘하는 모범생 캐릭터로 엄마의 틈새 사랑과 인정을 받으려 쉴 새 없이 노력한 둘째 아이. 바로 나다.

내가 중학생이었던 어느날, 별밤 라디오 공개방송이 대구에서 예정되어있었는데 언니가 응모하길래 나도 따라 응모했다가 둘 다 당첨이 되었다. 언니랑 가면 재밌겠다고 들떠서 나도 데려가 달라고 몇 번이나 부탁했는데 매번 건성으로 대답하던 언니는 결국 그날 언니 친구들과 가버렸다. 그칠 줄 모르던 눈물에 눈이 퉁퉁 부어 있는 내게 엄마는 바나나 하나 쥐어 주시면서 "나중에 언니처럼 스스로 할 수 있는 때가 오면 너도 친구들이랑 가는 게 더 재미있고 좋을 거야. 그때 너는 동생 챙겨 같이 가나 한번 보자." 엄마가 남동생이 좋아해서 아껴둔 비싼 바나나를 주신건 이제 그만 하라는 두 번 달래주지 않겠다는 뜻이 담겨있다. 뒤에 '니는 동생 같이 데려가나 두고 보자'란 직설화법은 그 이후 나 또한 동생과 함께 다니지 않은걸 미리 예견하신 게 분명하다.


언제가 텔레비전에서 관개학개론 강의를 본 적이 있다. 상대방과 관계 맺는 방식에 가장 지속적으로 영향을 주는 요인들 중 '출생순위'가 크게 작용한단다. 둘째 특성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강사님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먼저 사랑의 시선으로 바라봐 주라고 유도한다. 막내로 귀여움을 독차지하다가 동생이란 낯선 존재가 갑자기 등장하더니 계속 같이 가족으로 살게 되는 정체성의 혼란을 경험하고, '난 어떻게 사랑받을 수 있지? 우리 가족에게 난 어떤 존재일까?'라는 자기 존재나 위치에 대한 본능적인 고민을 하면서 위아래 경쟁구도에 자연스럽게 놓이게 된다고. 하지만 일반적으로 둘째는 언니 꺼 물려받고 동생에게 양보하는 선택지가 별로 없다는 이유로 독립성이 다소 결여되어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경쟁적이면서 결여된 독립성이 공존하는 환경에서 성장하게 되는 거다. 강의에서 특히 공감되었던 둘째의 특성은 불공평에 아주 민감하다는 거다. 예를 들어 내 차례를 양보하거나 차별을 느낄 때 예상보다 강한 버럭 거림이나 반대를 한다는 거다. 그럴 땐 '왜 저래? 저렇게 까지 할 일이야? 그만해!'라고 대응하지 말고 '뭐가 그렇게 불공평하다고 느껴졌니?'라고 둘째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공감해 주어야 한단다. 아이가 셋인 집에서는 아무리 부모라도 늘 합리적일 수는 없기 때문에 특별히 둘째에게 평소에도 특별한 존재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게 중요한데, 둘째랑 데이트도 자주 하고 '너만 짜장면에 탕수육까지 사주는 거야.' '너만 용돈 더 주는 거야.' 등의 특별함을 더해 주어야 둘째가 인정하는 '공평하다'가 되는 거란다.


오늘도 나와 다른 듯 닮은 아들 2호의 마음 읽기에 하루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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