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플레이스, 놀이터.

딸 3호의 사교장, 놀이터

by 권혜주LUCKY JJU

조이풀

기린

햇살

비밀 숲

거미

숲 오두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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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내에 있는 족히 10곳 넘는 놀이터 이름이다.

나의 업데이트 안된 두발 내비게이션은 몇 동 앞에 있는 놀이터로 위치를 찾는 게 익숙한데, 그 사정을 알리 없는 딸 3호는 "엄마! 햇살로 와!" 하며 빨간 킥보드에 몸을 싣고 쏜살같이 가버린다. 어린이집 가방, 독서 책 보조가방, 얼음물 담은 간식 가방을 나누어 양팔에 끼고 한 손에 핸드폰까지 챙기려니 양반집 아씨 모시는 향단이가 따로 없다. 사실관계를 굳이 따지자면 나는 아씨를 낳은 지체 높은 안방마님인데 말이다.


얕은 한숨을 쉬는 사이 딸 3호를 전담 마크했던 시아버님을 기억하는 친구들 엄마나 할머니가 햇살은 113동 놀이터라고 알려 주며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아무렇지 않은 듯 친구들 무리가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긴다.

지금 이 순간 향단이냐 , 마님이냐는 중요하지 않다.

하원 후 펼쳐지는 딸 3호의 멤버스 클럽 같은 놀이터 사교계에 나는 뉴페이스 매니저인 것이다.

매일 박카스 조공이라도 해서 베테랑 매니저들과 함께 해야 한다는 생존 본능이 나를 휘감는다.

지난 16년 동안 CS로 단련된 은행원이었던 내게 VIP 손님 응대하듯 매니저들과 친화력을 뽐내기란 놀이터 이름 매칭 하기보단 쉬운 일이라, 그나마 참... 다행이다.

나무 그늘 아래 의자에 아이들 가방을 내려놓고 앉아본다. 여러 매니저들의 중복된 시야에서 아이들이 관찰되는 동안은 잠시 쉬면서 아이들의 특성, 요즘 관심사, 그들의 육아스타일을 엿본다.

나는 이미 미취학 과정을 두 번이나 겪은 유경험자이면서 극과 극 성격과 공부 성향을 가진(선행 학습 학원과 규칙을 중요시하는 초6학년 아들 1호, 한글도 예체능도 스스로 단계를 정하고 공부방 센터를 고집하는 초2학년 아들 2호.) 아들이 두 명이나 있으니 매니저들의 이런저런 궁금증들에 누구보다 현실적인 경험에 기반한 가볍지만 진정성 있는 5분 상담소 같은 육아 썰을 풀어, 그들의 빈틈을 비집고 기어이 발을 들인다.


하원 시간이 15시 30분일 때와 16시 일 때 놀이 그룹이 확연한 차이가 있다. 앞선 시간에는 남자 친구들이 다수이므로 로봇 장난감으로 놀거나, 아파트 곳곳 비밀요새라 공유한 곳들을 쉴 새 없이 다닌다.

뒷 시간에는 여자 친구들 비중이 큰 관계로, 특히나 딸 3호의 베프가 같이 노는 시간이라 놀이터에서 역할놀이 그네 타기 등 그냥 같이만 있어도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즐거운 시간인 듯 보인다.

아침마다 오늘은 일찍 오라는 둥, 늦게 오라는 둥 딸 3호의 요구 사항들이 많더니 이유가 나름 분명했던 거다.

어느 날부턴가 무조건 이른 타임으로 오라는 딸 3호.

일찍 하원 해서 첨부터 놀이터 찜하고 놀다 보면, 모든 친구들과 원하는 만큼 놀면 된다는 걸 알아버린 거다.

일찍 하원 해서 놀이터 마지막 친구까지 다들 집으로 가는 걸 챙겨야 딸 3호의 발걸음도 집으로 향한다.


집으로 온 3호는 씻고는 소파에 앉아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본다. 서둘러 삼 남매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엄마의 움직임이 동영상 2배 빨리 돌려보기 수준이다.

딸 3호가 오늘의 저녁 메뉴를 햄야채 볶음밥으로 해달래서 더운 날 불 앞에서 상태 안 좋은 손목 통증 참아가며 웍을 돌리고 돌렸건만... 그 잠깐 사이 딸 3호가 소파에서 잠들었다.

'이런...' 속은 상하지만 방법이 없다.

침대로 옮겨 눕히는 사이, 아들 1호가 볶음밥 더 달라며 3호의 몫까지 먹어치운다.


늘 엄마 밥이 최고라며 잘 먹어주는 1호가 괜히 오늘따라 밉상이다.




놀아도 놀아도 더 놀고 싶은 딸 3호의 마음은,

채워도 채워도 더 채우고 싶은 통장잔고를 대하는 엄마 마음과 감히 견줄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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