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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래교육 Mar 21. 2021

모두가 같은 것을 배우는 게 평등 교육일까?


모두가 같은 것을 배우는 게 평등 교육일까?     

흔하게 잘못 해석하는 말 중 하나가 ‘모든 자녀들은 차별받지 않고 평등하고 똑같은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말이다. 뭔가 이상적이고 숭고한 명언처럼 들린다. 하지만 면밀하게 들여다보면 이 말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 먼저 ‘차별받지 않고’라는 부분을 보자. 우리의 교과 교육 과정에서 자녀들이 차별을 받는 부분이 있을까? 초, 중등을 넘어서서 고등교육까지 의무교육이 되었기 때문에 법적으로 모든 대한민국의 학생들은 고교 과정까지의 교육을 받아야 한다. 오히려 차별받기보다는 누구나 다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누리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교육 현실에서 별로 논의되지 않는 부분이다. 문제는 ‘평등하고 똑같은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부분이다. ‘평등하고 똑같은 교육’이라고 하면 누구나 지역, 능력에 상관없이 같은 교육을 받는 것처럼 들리지만 그건 학생들의 개성과 다양한 학습에 대한 니즈를 무조건 통일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지역과 능력에 상관없이 모두 같은 교육을 받는 것이 좋아 보이지만 잘 생각해보자. 지역 간 교육열 격차는 대한민국에 분명히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 교육격차를 줄이려고 각종 정책을 실행한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 교육은 다른 지역의 교육에 대한 관심을 높일 방법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모두 다 같은 교육을 받게 하려면 잘하는 곳의 노하우를 벤치마킹해서 다른 지역도 그만큼 할 수 있게끔 지원을 해주어야 하는데, 지금의 현실은 잘하는 곳을 비난하고 여러 이유를 붙여서 잘 못 하는 학교로 만드는 것이 교육의 목표인 것이다. 그래서 하향 평준화라는 말이 학부모들 사이에서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다. 


다른 지역의 교육열이 높아지면 또 다른 학군이 형성되고 집값이 상승하게 되어 또 다른 부촌을 만들어낼 것이라는 정치적인 계산 때문에, 오히려 높은 교육열을 엄마들의 과욕과 학원의 비정상적인 성장으로 매도하고 있다. 학생들의 성장은 전혀 고려되고 있지 않은 것이다. “평등하고 똑같은 교육”은 오히려 학생들의 다양성을 획일화시키는 말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정치적인 프레임을 씌워 활용하고 있다. 학생들도 상당히 많은 정보를 접하면서 자신의 성장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자기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하고, 직업과 관련된 활동 또는 잘할 수 있는 활동 등에 관심을 가지면서 자연스럽게 교육도 변화를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지금의 현실은 잘하는 곳을 비난하고 여러 이유를 붙여서 잘 못 하는 학교로 만드는 것이 교육의 목표인 것이다. 그래서 하향 평준화라는 말이 학부모들 사이에서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다.     


유튜버 전문가, 방송 댄서, 트로트 가수, 군인, 드론 전문가, 로봇 공학자, AI 전문가, 코딩 전문가 등 예전 국영수 시절과 달리 수많은 방향으로 학생들의 니즈가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 교육은 모두 같은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하면서 기본 학습의 힘을 빼고, 새로 나오는 직업에 대해 단순 체험 정도로만 학생들을 교육시키고 있다. 


당연히 모두 같은 것을 배워야 하는 학교 교과 과정도 있다. 교과 과정에서 학문의 모든 기본들을 배우는 것이 필요하다. 어떻게 보면 그런 것들 대부분이 교양인 것이다. 우아함을 과시하는 게 교양이 아니라, 사람으로서, 사회 구성원으로서, 나름의 지식인으로서, 기본적인 상식을 아는 것이 교양이다. 하지만 자녀들의 꿈은 어른들이 꿈꾸던 시절보다 엄청나게 빠르고 다양하게 변화하고 있다. 무조건 그 직업들을 다 체험하고 경험하고 깨닫게 할 필요는 없다. 자녀가 원한다고 모든 것을 경험시켜 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학생들의 개인 성향과 관심도도 다르고 미래 직업 선택도 다르다. 기본적인 소양을 함께 배우고, 다른 과정을 통해서 자신의 관심사를 배워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교육은 모두 같은 것을 배워야 하기 때문에 조금 더 배우기 위해서 학원에 다니기만 하면 항상 뭔가 앞뒤 맥락에 대한 고려 없이 사교육의 원흉으로 지목된다.


또한 가계 부채와 집값 상승의 원인, 인성이 부족한 자녀들이라는 프레임을 씌우기 바쁘다. 결국 학습은 하지 않고 체험만 해서 빨리 자기의 직업을 찾는 자녀들을 위한 교육만 활성화될 뿐이다. 이것은 결국 지적인 성장보다는 빨리 체험해서 자기의 길을 찾아가라는 의미이다. 자기의 길을 찾는 것은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것도 기본이 없으면 결국은 허망한 모래성을 쌓는 것과 같다. 많은 체험을 하면서 꿈을 키우는 것도 좋지만, 꿈을 실현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학습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 “평등하고 똑같은 교육”의 의미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다른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학생들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정치적 프레임으로만 교육을 바라보고 있다. 이런 시각들이 우리 교육을 병들게 하고 애꿎은 학생들의 성장만 더디게 하는 것이다. 진정한 평등은 모두 다 똑같은 옷을 입는 것이 아니다. 각자의 스타일에 맞게 자신에게 맞는 옷을 입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 평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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