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같은 인간의 연말정산 일기
2024년 내 신년 목표의 절대적인 목표는 '도전하기'였다.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생각이 너무 많고 한 걸음 떼는 것도 힘겨워하는 내 모습에 진절머리가 나 이번 년은 정말 도망치지 말고 뭐든지 도전해 보자였다. 쉽지 않았지만 이것저것 다 따져보는 걸 의식적으로 멈추려고 했다. 잘할 수 있을까, 내가 할 수 있을까 라는 두려움과 걱정을 가지면서도 발을 떼려고 했다.
2024년 1월 1일 새로운 포부를 가지고 아침부터 뛰러 나가 돌아오는 길에 보았던 하늘이 너무나 맑고 아름다웠다. 지금까지도 기억이 난다. 마치 이번 년은 좋은 일들이 가득할 거라는 기대를 갖게 했었다. 대학교 막학기를 남겨두고 시작하는 1월부터 쉽지 않았다. 졸업하면 무엇을 할지에 대한 고민과 방황을 엄청나게 했다. 졸업한 친구들이 다 떠나고 유학을 가거나 대학원에 진학하는 친구들 가운데 치열하게 고민한 끝은 역시나 나도 유학을 준비해야겠다는 진부한 결론이었다. 1년의 시간을 두고 한 번 해보자, 도전해 보자였다. 솔리스트로서의 역량은 많이 부족하지만 더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에 조급함과 빨리 목표를 정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하나 준비했다. 어학원에 등록하고 학교를 알아보고 입시곡들을 알아보고 차트를 다 뽑아서 선생님께 갔다. 하지만 나의 계획과는 다르게 상황이 흘러갔다. 유학을 가려는 근본적인 이유와 추구하고자 하는 모습이 없었다. 미래에 내가 하고자 하고, 되고자 하는 모습 없이 솔직히 남들 다 가니까, 그 환경에서 공부하는 모습이 부럽고 좋아 보여서 결정한 나를 선생님은 다 파악했다는 듯이 말하셨다. 그래서 1월 한 달 동안 고민한 결과는 시작도 못한 채 접어버리고 방향을 틀었다. 예전부터 내가 관심이 있고 해보고 싶었던 분야를 같이 공부해 보기로 했다.
많은 도전과 시도들이 있었다. 또 그 가운데에 작은 성공과 실패들도 같이 있었지만 한 걸음씩 내딛는, 새해의 신년 목표를 실천하고자 하는 내 모습에 의의를 두었다. 많은 교수님들을 전전하다가 정말 배우고 싶은 교수님에게 한 학기만이지만 배울 수 있게 되었다. 레슨비가 부담이 되었지만 위에서 말했듯이 해보고 싶은 분야의 공부도 시작했다. 고백하고 차여보기도 했다. 투피아노도 해보고 싶었는데 연주할 기회가 있어서 즐겁게 했다. 알바를 해야 했기에 교내 인턴쉽을 지원했지만 되지 않아서 절망했지만 국가 교외 근로를 23:1의 경쟁률을 뚫고 우체국에서 일해 보기도 했다. 마지막까지 불태워보자 하는 마음에 막학기 실기시험곡인 협주곡을 가지고 교내 협주 오디션을 나가기도 했다. 더불어 콩쿨도 나갔다. 두 개다 성적은 좋지 않았다. 오디션은 떨어지고 콩쿨도 성적이 좋지 않았다. 나도 오케스트라랑 협주 한 번 하게 해달라고, 마지막으로 교내에서 연주 한번 하게 해 달라고 빌었는데 속상하게 되지 않았다. 이때 살짝 위기였지만 그래도 잘 넘겼다.
선생님의 소개로 부트캠프라는, 붙게 되면 좋은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도 알게 되어 지원했다. 포트폴리오를 보고 1차 합격을 하고 덜덜 떨면서 온라인 면접을 보고 운이 좋게 합격했다. 거의 5개월 동안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듣고 내 생각이 변해가고 넓어져가는 경험을 했다. 타이트한 일정 가운데 나만이 할 수 있는 공연도 처음으로 기획해 보고 연주하기도 했다. 정말 어렵고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지만 고통 가운데 성장하는 걸 느낄 수 있었고 건반을 누르는 순간 하길 잘했다는 생각도 들더라. 무용수, 작곡가와의 협업과 주제를 잡고 기획하고 낯선 문서들을 작성하는 것들도 다 도전의 연속이었다. 그 와중에 졸업도 했다. 리사이틀이 끝나고 올해 공부하기 시작한 분야의 대학원을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클래식과는 다른 쪽의 세계가 재미있었고 음악의 폭이 넓어지고 다양한 음악을 연주하고 작곡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나중에 솔리스트의 길을 다시 가고 싶어 하면 어쩌지 라는 고민들이 있었지만 현재의 '나'들은 이걸 하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이게 내 길인 것 같았고 학교에 들어가서 공부하면 길이 더 명확해지고 내 꿈을 펼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과정은 쉽지 않았다. 딱딱하고 엄격한 틀에서 벗어나야 했고 정해진 틀없이 자유롭게 연주해야 했다. 쉽지 않았지만 다양한 방법으로 연습했고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기록했고 포트폴리오와 자기소개서도 열심히 준비하고 수정했다. 즐기려고 했고 확신을 가지려고 했다. 그렇게 약간의 자신감을 가지고 입학시험을 치렀다.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항상 어떤 목표가 세워지면 달려가는 건 자신 있었기에 정말 열심히 했다.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나 자신 자체가, 내 성격과 내 연주는 이쪽과는 맞지 않는다고 부정당하는 느낌이었다. 어떤 게 부족했는가, 뭐가 맘에 들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속상했다. 지금까지도 속상하다.
12월까지 달려오면서 많은 도전들 중에 작은 성공과 실패가 있었지만 결과보다는 내 모습에 성취감을 느꼈다. 그래서 이번 년의 마지막 도전, 가장 간절했던 것이 성공한다면 이번 년은 정말 완벽할 거라고 생각했다. 졸업하고 그렇게 긴 텀 없이 바로 내년에 학교에 들어가 설렘과 기대를 가지고 공부하는, 꿈을 펼치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 준비하는 과정 중에도, 결과를 기다리면서도 빌었고 기도했다. 꿈을 주시고 합격해서 그곳에서 내 꿈을 펼치게 해달라고. 뭐든지 마지막이 가장 기억에 남고 마무리가 좋아야 기분 좋은 법이다. 첫 단추를 잘못 꿰어도 마지막만 잘하면 된다. 하지만 내 마지막 도전은 내 계획과 예상과는 많이 빗나갔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주변 친구들은 곧바로 자기의 길을 찾아서 멈춤 없이 바로 나아가는 것 같은데 난 항상 느렸다. 뭐든지 한 번에 되는 법이 없었다. 그래서 나도 멈추지 않고 나아가기 위해 '도전하기'라는 목표를 세운 것도 있다.
이젠 뭘 해야 하지? 난 무엇을 해야 하지? 갑자기 아무것도 없는 사막 속에 떨어진 기분이었다. 해야 할 일이 없어진 채 아침에 늦게 일어나는 내 모습도 싫었고 길을 잃은 채 집에 공허하게 앉아있다. 이해가 되지 않는 시간들이 내게 주어졌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런 시간들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다. 재수했던 때와 돈이 없어서 빈궁하게 보냈던 시간들 등 모든 시간들이 이해가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 시간들이 헛되지 않고 이유와 의미가 반드시 있을 거라고 믿는다. 지금도 그렇다. 이해가 되지 않는 시간이지만 내게 주어진 이 멈춤이, 잠깐 멈추는 이 시간이 이유가 있을 거라고 믿는다. 그렇게 생각함으로써 나는 다시 차분하게 생각해보려고 한다. 내 꿈과 목표는 진짜로 무엇인지, 내가 하고 싶고, 되고자 하는 모습은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들. 그리고 그것을 위한 수단과 통로였던 대학원 입학이 불가능하게 되었을 때 내가 이다음에 할 수 있는 것들은 무엇인지.
한국인의 빨리빨리에는 장점이 많지만 인생은 빨리 간다고 해서 다 능사는 아니라고 어머니가 말씀하시기에 이번에는 조급함을 내려놓고 힘 좀 빼고 가봐야겠다. 아마 다가오는 2025년은 2024년과는 다른 모양을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