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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작세 Dec 16. 2021

잠에 대한 목마름 끝에 얻은 오전이 있는 삶

"장훈아~~~~"

시장 한 복판에서 동이 트기 전에 들려오는 엄마의 다급하면서도 커다란 외침입니다.

아버지가 화나시기 전에 얼른 가서 잡곡 대야들을 밖으로 내어 진열해 놓아야만 합니다.


"아직 12시도 안되었는데 벌써 잠을 자냐"

하교 후 집안일을 돕고 나서 겨우 숙제를 다 해 놓고 잠을 자려고 할 때, 여지없이 들려오는 아버지의 호통 소리입니다.

"잘 것 다 자고 언제 공부를 한다냐"

공부를 못 할 것이 걱정된다면, 집안일을 시키지 않으시면 될 터인데...

지금이야 이런 생각을 하지만, 당시에는 늦게 일어나거나 일찍 자면 다 제가 잘못한 것인 줄 알았습니다.

12시 전에 잠이 들어서는 안되기에 책상에 발을 묶어 놓고 공부를 했습니다.

설령 잠이 들더라도 눕지 않으면 깊은 잠이 들지 않고 아버지가 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인지, 지금도 깊은 잠에 들지 못합니다.


이렇게 유년 시절과 청년 시절을 보내다 보니 실컷 자봤으면 좋겠다는 것이 저의 소망이 되었지요.

결혼하고, 분가를 한 후에는 먹고 사느라 바빠서 여전히 잠이 부족했습니다.

아침잠이 가장 문제였지요.

이미 습관이 되어버려서

밤에는 아무리 자려고 해도 잠이 들지 않고, 겨우 잠이 들어도 깊은 잠을 자지 못하고 많은 꿈에 시달리다 보니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오전에는 머리나 몸 상태가 그리 좋지 않아서 일의 능률도 오르지 않고 오전을 버티는 것이 넘어야 할 산이 되어버렸지요.

점심 때는 단 일이십 분이라도 잠을 자야 했습니다. 그래야 오후에 팔팔해지니까요.

만약 제가 본 모든 시험이 오후에 치러졌다면 훨씬 점수가 좋았을 것입니다.^^


50이 넘어가게 되면, 잠이 없어지고 아침에도 일찍 일어나게 될 줄 알았습니다.

다들 그렇게 말했으니까요.

저도 드디어 아침형 인간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기는 말이었지요.

그래서 나이 먹기를 학수고대했습니다. 어차피 먹어갈 수밖에 없는 나이지만... 기대가 컸지요.

웬걸. 여전히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아침형 인간은 아무나 될 수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휴일에는 아예 폰 벨소리를 꺼놓고 실컷 늦잠을 잤습니다. 허리가 아프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았지요.

그렇게라도 잠을 보충해야 했습니다.


막내가 대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자식들을 다 키운 것이지요.

저희 부부는 원래가 검소한 편이고 365일 중 350일 이상을 집에 박혀 지내는 것이 우리 부부인지라 들어갈 돈이 현저하게 줄었습니다.

돈을 적게 벌어도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드디어 벼르고 별렀던 일을 단행하였습니다.

작년 1월 1일부터 오전에 일을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오후 두 시부터 일곱 시까지만 하기로 했지요.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했고, 그러다가 운영이 안될 정도로 수입이 줄어들면 어쩔라고 그러느냐고 걱정해주기도 했지만,

저희 부부가 쓸 만큼만 순수익이 남는다면 상관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운영이 힘들어질 정도가 되면 눈물을 머금고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면 되는 것이었기에 겁 없이 전격적으로 시행을 했습니다.

직원도 둘 밖에 되지 않으므로, 어떻게든지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비록 일하는 시간은 많이 줄었지만, 직원들 월급은 그대로 줬습니다. 

제가 쉬고 싶어서 쉬는데, 직원들에게 피해를 끼치면 안 되니까요.


코로나가 몰아닥쳤습니다. 저를 아는 사람들은 제가 걱정이 되었나 봅니다. 괜찮으냐는 질문을 하더라고요.

다행히 괜찮았습니다.


보름 후면 오전 일을 접은 지 딱 2년이 되네요.

수입은 분명히 줄었습니다. 그런데 예상보다 훨씬 덜 줄었습니다. 운영은 할 수 있었습니다.

쓸 곳도 별로 없고 저축도 할 필요 없어서인지 생활비도 부족하지 않았습니다.

오전에 왔다가 다시 오후에 오시는 분들이 조금씩 늘었거든요. 저를 믿어 주시는 분들이 예상보다 많았습니다.

꼭 한 말씀씩 하십니다. "오전에 왜 안 하세요. 어디 강의 나가세요?"

푹 쉬고 있다는 말씀은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냥 하는 일이 있다고 말씀드리지요.

쉬는 것도 일이니까요.^^


삶의 질은 상상 이상으로 좋아졌습니다.

태어나서 55년이 지난 후에야 얻은 삶이었습니다.

모든 사람의 우려를 무릅쓰고 결혼을 빨리 하여 자식을 빨리 낳았기에 가능한 삶이었습니다.


그토록 배우고 싶었던 기타도 배우고, 은행 일이나 관공서 일이나 모든 일들을 제가 직접 볼 수가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좋았던 것은,

오전이 보장된 삶이었습니다.

출근 시간에 쫓겨 정신없이 서둘러야 했던 때와는 달리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서, 아침 식사 후에 그 자리 그대로 앉아서 눈을 감고 멍하니 있을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큰 즐거움입니다.

게다가 제가 과민성 장증후군이 있어 아침에는 화장실 시간 때문에 힘들고, 출근하면서도 노심초사하였는데

그러지 않아도 되니 

우리나라가 일제 치하에서 해방된 기분에 못지않은 해방감이 들었습니다.


기타 배우는 날을 제외하고는 특별히 하는 것도 없이 오전 시간은 금방 흘러가버립니다.

그래도 좋습니다. 사람을 만나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참 좋습니다.


지금은 쉴 수 있는 내 집도 있고, 차도 있고, 연금도 들어가 있고, 정 부족하면 지원해줄 자식들도 있어서

노후 보장이 어느 정도 되어 있으니,

마이너스로 시작한 인생이 플러스로 된 것만 해도 충분하다 여겨서 저질렀는데,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것들이 많이 생기고 있습니다.


잠에 대한 갈증도 해소되고, 상태 좋지 않은 오전에 쉴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좋습니다.

제가 일을 덜할 수 있도록 검소하게 생활하는 아내와, 자신들의 살 길을 잘 찾아가는 자식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합니다.


이 글은 글감 찾기의 달인이신 '공감의 기술'님의 잠에 대한 글에 댓글을 달았다가

'공감의 기술' 작가님께서 이런 내용의 글을 쓰면 어떻겠느냐는 지침(?)을 주셔서 쓰게 되었습니다.

글감을 주신 작가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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