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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작세 Dec 23. 2020

울면 안 돼

크리스마스 캐럴의 폭력성

다른 모든 사슴들  놀려대며 웃었네

가엽은 저 루돌프 외톨이가 되었네
안개 낀 성탄절날 산타 말하길   

"루돌프 코가 밝으니 썰매를 끌어주렴"
그 후로 사슴들이 그를 매우 사랑했네


저는 지금까지 이 캐럴에 대해 어떠한 생각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냥 크리스마스가 되면 경쾌하게 부르기만 했었지요.

그런데, 요즘 기타 치며 캐럴을 녹음하다가

갑자기 "이게 도대체 뭔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좀 이상해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원곡의 주인공은 순록이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사슴으로 바뀌었다네요.

루돌프는 왕따를 당했었군요.

산타가 썰매를 끌어달라 해서 인생 역전을 하게 되었고,

그 이후로는 다른 사슴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고....


다행히 산타를 만나서 인생 역전을 해서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어쩔 뻔했습니까.


루돌프를 왕따 시켰다가 사랑하게 된 다른 사슴들은,

성공한 루돌프, 산타가 인정한 루돌프를 사랑한 것이라고 말하면

그들의 진심을 폄하한 것이 될까요?


결국 왕따에서 벗어나려면 성공해야 한다는 생각을

아이들에게 심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면 너무 많이 과장한 것일까요?


이 노래대로라면,

성공도 열심히 노력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상당한 능력자가 나타나서 외모적인 장점을 알아보고 캐스팅 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니,

외모를 열심히 가꾸어서 압구정이나 강남이나 홍대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연예 기획사 대표의 눈에 띄어 낙점을 받으면 되겠네요.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죠.


"산타를 만나지 못했어도, 루돌프가 유명해지지 않았어도 친구들이 사랑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나는 과연 어떠한 사람을 사랑하고 있는가?"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울면 안 돼
울면 안 돼
산타 할아버지는 우는 아이에게 선물을 안주신대
산타 할아버지는 알고 계신대 누가 착한 앤지 나쁜 앤지
오늘 밤에 다녀가신대
잠잘 때나 일어날 때 짜증 낼 때 장난할 때도
산타 할아버지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신대
울면 안 돼
울면 안 돼
산타 할아버지는 우는 아이에게 선물을 안주신대


저는 어릴 때 소리 내어 울어 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50여 명의 급우들이 있는 교실에서, 막대기를 든 선생님께서

"육성회비 아직 안 낸 사람 일어서"라고 말씀하실 때,

(예전에는 학교에 돈을 내야만 학교를 다닐 수가 있었습니다.)

힘없이 일어서는 사람은 저와 기억이 나지 않는 한 명, 이렇게 두 명뿐이었습니다.


친구인 줄 알았던 급우들은 깔깔거리며 웃고,

선생님은 "내일까지 가져와. 안 그러면 학교 못 다닌다"라고 말씀하셨었지요.


다음 날 아침에 육성회비를 달라고 부모님께 겨우 말했는데,

"시방 돈이 없응께 나중에 주께"

학교에 가야 하는데, 육성회비를 못 받아서 발이 떨어지지가 않고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는데

"아침부터 재수 없게 울믄 쓴다냐."라는 호통 소리를 들으며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야 했습니다.


작은 방 하나에서 다섯 명이 같이 잠을 잤기 때문에,

눈물이 쏟아져도 소리를 낼 수가 없었습니다.

살아오면서 힘들 때도 많았는데, 소리 내어 엉엉 울어 본 것은 몇 번 안된 것 같습니다.

지금은 울고 싶을 때는 엉엉 울겠다고 다짐하고 있지만...


"뚝"

어릴 때 많이 들었던 소리이며, 아이들 키우면서 많이 했던 말입니다.

우는 것을 나쁘게만 여겼던 때의 얘기이지요.

어찌 되었건 우는 소리는 분명 듣기 좋은 소리는 아니니까요.


그런데 말입니다.

겨우 한 글자밖에 안 되는 이 말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아시나요?


울고 싶은 데 '뚝'

우는 이유를 물어보지도 않고 '뚝'

울면 재수 없다고 '뚝'

공감도 안 해주고 '뚝'


울지 말라면서 협박까지 합니다.

"산타 할아버지는 니가 한 짓을 다 알고 있다"

한 번도 본 적도 없는 할아버지가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다 안다는 것입니다.

코딱지를 파서 엄마 몰래 벽에 발라 놓은 것도,

육성회비를 못 받은 것도 서러운데, 아침부터 재수 없게 울었다고 야단까지 맞아서 부모를 원망하며 학교에 간 것도,

선생님이 가정환경 조사하실 때, 엄마가 학교도 못 다녔다고 말했다가 

친구들이 "네 엄마는 학교도 못다녔어?" 라며 놀릴 때 친구들을 째려본 것도,

다 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물을 안준다네요.


저는 어릴 때, 어린이 날과 크리스마스가 가장 싫었습니다. 

힘들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맞을 것 같습니다.

비록 못살았지만 나름 당당하게 살았었는데, 이 날만 되면 기가 죽을 수밖에 없었거든요.

평소에는 다른 아이들과 별로 차이를 느끼지 못했는데, 이 날은 부러운 마음이 들었었습니다.

부럽기만 했으면 그나마 다행인데, 

부모님께 나도 사달라 했다가 야단만 실컷 맞았을 때는 서럽기까지 했습니다.

(못 사주시는 부모 마음은 더 아팠을 것인데, 제가 어려서 몰랐으니까요)

당연히 산타 할아버지로부터 단 한 번도 선물을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울고 싶어도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참았던 것 같기도 한데...(정확한 기억은 아닙니다.)


울만한 이유가 있어서 우는데,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받으려면 울지 말라고 합니다.

심지어, 우는 아이는 나쁜 아이라고 합니다.

부모들은 산타할아버지를 이용하여 정당한 아이의 울음마저 삼키게 만들고,

선물을 못 받는 한이 있더라도 너무 힘들고 슬퍼서 참기 힘들어 우는 아이에게

"너는 나쁜 아이라는 것을 산타할아버지는 다 알고 계신다"라고

협박을 합니다.


이런 마음을 가진 부모는 없겠지요.

그런데, 저도 아이들 어릴 때 몇 번은 써먹었던 것 같습니다.

저도 모르게 아이들에게 언어적 폭력과 협박을 했었네요.


아무렇지도 않게, 즐겁게 불러왔던 이 동요가 너무 억압적이고, 폭력적으로 느껴집니다.

나이를 먹다 보니 너무 감성이 메말라서 그럴까요?


왕따를 당하고 있는 루돌프를 최고 인기 스타로 만들어 놓은 산타 할아버지는

비록 우는 아이일지라도

이번 크리스마스 때는 선물을 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단지 루돌프 코가 밝아서 썰매를 끌게 한 것이 아니라

왕따를 당하면서도 꿋꿋하게 잘 버티며 살고 있는 루돌프가 대견해서 자신의 안전을 기꺼이 맡긴 산타할아버지는

아이가 왜 우는 지를 잘 아실테니까요.


그러하니,

울고 싶을 때는

마음껏 울어도 됩니다.

우는 사람은

결코 나쁜 사람이 아니잖아요.


나쁜 사람은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입니다.

비웃음은 있어도 비울음은 없잖아요.


소리 내어 엉엉 울 줄 아는 사람은

착한 사람입니다.

선물 받을 자격이 충분할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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