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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작세 Jul 05. 2022

첫 경험. 그 긴장과 슬픔과 그리고 두려움 2

전편에 이어서.(경험담이므로 경어체를 쓰지 않음을 이해 바랍니다.)


핸들이 요동치니, 온몸이 굳어져서 페달을 밟을 수도 없었다.

그저 '어어어 어어어' 소리를 지르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자전거는 나를 태운체 담벼락으로 향하고 있었다.

'쾅 퍽'

담벼락은 가운데가 튀어나온 사각형 돌들로 만들어져 있었다.

그 뾰족한 가운데를 나의 오른쪽 눈썹이 제대로 들이박았다.

살이 파이고, 피가 흘러내렸다.

큰 일이었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배달을 해야 할 자전거의 앞바퀴가 사정없이 휘어져버렸으니.

아버지에게 혼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일단 손바닥으로 다친 곳을 눌렀다. 피가 나오는 것을 막아야 했다.

한참을 누르고 있으니 피가 나오지 않았다. 이때 지혈의 방법을 터득했다.


'이 놈의 자식이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자전거를 몰고 나가서 이게 뭔 짓이여'

아버지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그래도 다행히 다친 것은 들키지 않았다.

이렇게 타는 것에 대한 나의 첫 경험은 몸과 마음에 아픔을 남겼다.

이 첫 경험이 있은 후 얼마 되지 않아 나는 재도전을 했고, 단박에 성공했다.

이제 짐을 싣고 달릴 차례다.

쌀 배달을 하려고 다짐했기 때문이다.

우리 집은 쌀가게를 했다, 다른 집 쌀가게는 다 잘 사는데 이상하게도 우리 집은 가난했다.

그 이유는 나중에 커서야 알았다.

가난한 쌀가게에서 배달꾼에게 배달을 시키면 80킬로 쌀 한 가마니 배달료가 500원이었다.

40킬로는 300원.

이 돈을 벌어야 했다. 그러려면 자전거에 짐을 싣고 탈 수 있어야 한다.

쌀을 싣고 연습하다가 넘어지면 쌀 포대가 찢어져 쌀을 버릴 염려가 있었기에,

물동이에 물을 담아서 자전거에 실었다.

자전거 타는 것은 이미 경지(?)에 이르렀으니 물동이 하나 실었다고 문제 될 건 없다고 생각했다.

이건 나의 오만이요, 착각이요, 근자감이었다.

타자마자 흔들리는 자전거에 속수무책으로 넘어지고 말았다.

물동이의 물이 출렁거리며 자전거를 심하게 흔들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아, 물은 흔들리니까 더 힘들구나' 

물의 힘이 얼마나 무서운 지를 이때 확실히 깨달았다.


우여곡절 끝에 시작한 쌀 배달은 나에게 경제적인 여유(?)를 주었다.

매년 부모님 생신 때 구두나 신발 등을 해드릴 수 있었고, 

깜빡 잊고 저녁에 말하지 못해서 아침에 학용품 살 돈을 달라 했다가

장사하는 집에서 아침부터 돈 달라 하면 재수 없다며 주시지 않는 부모님의 성화에 울고 있는 동생들의 울음을 달래줄 수 있었다.

어쩌다 가끔은, 학교 앞 노점에서 파는 단팥죽도 사 먹을 수 있었다.

비록 몸의 여기저기에는 상흔이 남았지만, 짐빠리는 나에게 둘도 없는 보물이 되었다.


ㅇ 기억나는 '첫 경험' 중의 '세 번째'

대학교 1학년 때 집으로부터 걸어서 15분 정도 거리에 있는 교회에 다녔었다.

그 교회에 학교 동아리 여자 후배가 자신과 같은 학과 남자의 소개로 왔다.

그 남자와 함께.

대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하고 있었던 여학생이었기에 교회에 오려면 버스를 타고 한참을 와야 하는데...

살던 곳에서 교회를 다녔는데, 다닐 교회를 찾다가 학과 대의원이었던 여학생이 총무인 남자에게 안내를 받아 온 것이었다.

학교에서만 봤었는데, 교회에서 만나서 반가웠다.

예배가 끝나고, 그 여학생과 남자는 내 집과는 반대 방향에 있는 버스 정류장 쪽으로 갔다.

나와 여학생은 단지 같은 동아리였을 뿐이고, 단체 모임에서 몇 번 얼굴을 본 정도였기에 그냥 아는 사람일 뿐이었다.

그런데, 항상 나를 가지고 노는 '책임감'이라는 놈이 발동을 시작했다.

'그래도 버스 정류장까지는 같이 가줘야지'

아니, 혼자 가는 것도 아니고 같이 가 줄 남자도 있는데 왜 내가 그런 생각을 했는지 지금도 이해가 안 된다.

단지, 같은 동아리 후배(같은 1학년인데 제가 선배인 이유는 나중에 언젠가...) 여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바래다줘야 한다는 생각이 내 몸을 움직였으니까.

그 남자는 나보다 키도 컸다. 파마한 것처럼 곱슬머리였다.

여학생의 외모는 남자들이 호감을 가질만한 정도가 아니었다.

그러므로, 책임감 외에는 내가 바래다준 이유를 설명하기 힘들다. 지금 생각해도 그렇다.


셋이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면서도 나는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

드디어 버스가 도착했다.

두 남녀가 버스에 올라탔다. 그 순간 도대체 뭔 생각이 들었는지(이건 책임감도 아니고 뭣도 아니고 정말 무슨 감정이었는지를 아직도 모르겠다.) 내 입이 움직였다.

'ㅇㅇ아, 내가 영화 보여줄게 내릴래?'

난, 영화를 좋아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여학생은 영화 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교회에서 걸어서 5분 정도 거리에 영화관이 있었다. 당시에는 두 편의 영화를 동시 상영했다.

그냥 툭 던져진 말이었다.

그런데,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래요' 하며 그 여학생은 바로 내려 버렸다. 같이 가던 그 남자는 아마 엄청 황당했을 것이다.

그 남자의 얼굴은 보지 못해서 모른다.


아윌 비 백.(진짜 길어지네요. 이럴 계획이 아니었는데 첫 경험이 이렇게 많을 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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