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보글보글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작세 Jul 05. 2022

첫 경험. 그 긴장과 슬픔과 그리고 두려움 3

전편에 이어서.(경험담이므로 경어체를 쓰지 않음을 이해 바랍니다.)


버스를 떠나보내고 우린 걸어서 영화관으로 갔다.

무슨 영화를 봤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로지 영화만 봤는데.

당시에는 영화관에 있는 매점에서 파는 것을 사 먹을 수는 있었는데

영화 보고 나서 점심도 먹어야 하니 돈이 부족할 것 같아서 사지도 않았기에

오직 영화에만 집중했었는데...

처음 만난 낯선 사람들처럼.


영화관을 나와서 건너편에 있는 중국집에 갔다.

자장면을 시켰다. 둘 다.

처음으로 둘이 얘기를 나누었다.

다른 도시에서 유학을 온 것이었다. 큰 딸이라 했다.

또다시 나의 책임감이 발동을 했다.

여자가 혼자 객지에서 생활을 한다는 것은 너무 위험하다고 생각되었다.

학기 초라 책도 사야 하는데, 지리를 모를 것이었다.


"내가 오빠 해줄까?"

(이 당시에, '오빠'라 함은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그 '오빠'의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속해 있는 동아리가 'ㅇㅇ 가족'이었기에 당연히 동아리 여자 후배들 모두 남자 선배에게는 오빠라 불렀습니다. 더군다나 불문율이 있었습니다. '동아리 회원끼리는 사귀면 안 된다. 가족이니까'

이 불문율을 지키지 않으면 바로 단체 기합을 받아야 할 정도였습니다.

지금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규정이었고, 까짓것 탈퇴 후에 사귀면 그만이었을 무용지물인 규칙을

모두 열심히 지켰었습니다. 이런...)

또한, 당시에는 '형'이라는 호칭이 거의 없었으며 남자는 오빠, 여자는 누나라고 하는 것이 보편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의미의 오빠도 아니었습니다.

진짜 친오빠처럼 보호해 주고 챙겨 주겠다는 말이었습니다. 책임감이 발동한거죠.


"오빠가 없어서 오빠 있는 얘들이 부러웠는데 저는 좋아요"

그렇게 해서 난 여학생의 오빠가 되었고, 1학기 동안 약속대로 책도 사러 다니고 잘 챙겨주었다.(뭘 챙겨줬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으나 꽤 많은 것을 잘해줬습니다)

데이트가 아닌 것도 아니고, 데이트인 것도 아닌.

동생이기에 가족끼리 손 잡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으니까.

(만약 데이트의 정의가 진짜 가족이 아닌 남녀가 함께 여기저기 싸돌아 다니는 것이라고 한다면,

데이트 맞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나의 데이트 첫 경험이겠죠.

최소한 손은 잡고 하는 것이 데이트라면, 이 여학생과 여러 번 같이 돌아다녔음에도 데이트 경험은 아닙니다.)


그렇게 한 학기가 지났고, 여름 방학이 되어 여학생은 고향으로 내려갔다.

두 달 간의 방학 기간 동안, 그래도 오빠이니까 안부는 물어야겠기에 우편 엽서를 보냈다.

내가 지은 시를 적어서.(우편 엽서는 워낙 작아서 시 한 편과 간단한 안부인사만 썼다)

시 제목은 '동그라미'

이것이 문제가 되었다는 것을 방학 끝나고 한참 후에야 알았다.


여학생 고교 동창 아무개도 같은 동아리였고 나와 같은 학과였다.

2학기 개학 날, 아무개가 나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ㅇㅇ이가 오빠를 좋아하는 것 같아"


깜짝 놀랐다.

사귀면 안 되는 것이었고, 친동생처럼 여기고 잘해주었을 뿐 여자로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함부로 여자를 사귈 수 없었다.

아들 하나 믿고 살고 계시는 엄마를 모시고 살만한 여자를 만나야 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시대가 지금과 다르다지만, 그런 여자를 찾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나를 좋아한다는 이유로(이것도 ㅇㅇ이와 얘기하면서 그런 느낌을 받은 아무개의 말이기에 그대로 믿을 필요는 없었음에도 당시에는 사실로 믿을 수밖에 없었다.) 오빠 해주기로 한 약속을 취소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사귈 수도 없으니. 진퇴양난.


일주일 정도 고민하다가 ㅇㅇ이에게 만나자고 했다.

직접 물어봐야 했다.

다른 사람이 다 듣는 곳에서 물어볼 수는 없어서 야외에서 만났다.


"아무개로부터 말을 들었는데, 나는 우리 엄마를 모시고 살 수 있는 여자와 결혼해야 하고, 나랑 사귀면 결혼까지는 가야 하는데 너 자신 있냐?"

이성으로서의 여성에게 한 첫 말이었다.


의외의 반응이 되돌아왔다.

"예"(조금 더 길게 말했던 것 같은데... 어쨌든 대답의 의미는 이거였다)

순간 잠깐 당황했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그 여학생에게는 꽤 길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그럼 사귀자"

이건 뭐 사랑 고백을 해서 받아주는 것도 아니고, 둘 다 뭐하는 짓이었는지...


이 말을 들은 여학생은 앞으로 달려가면서 한 마디 했다.

"결혼할 때까지 아무 일도 없어야 해요" (당시에는 몰랐지만, 여학생의 부모님은 우리 부모님보다 훨씬 더 보수적이고 유교적이었습니다)

뜬금없이 던지는 말에 황당했다. 내가 뭘 어떻게 하려고 한 적도 없는데...

아마 여성으로서 정절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가득 차 있었기에,

사귀다 보면 자칫 어떻게 될지 몰라서 미리 벽을 친 것이다.

대답하기에는 이미 너무 멀리 가버려서 난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딴마음이 있어서 대답 안 한 것 아닙니다. 저도 그때는 정말 순진했어요. 이 글을 읽는 분들도 그러셨죠? 겨우 대학교 1학년인데)


이렇게 나의 첫 이성 교제의 경험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후로 여성과 할 수 있는 모든 첫 경험을 이 여학생과 했으니,

결국은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그 '오빠'가 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생각보다 첫 경험이 많고, 쓸 내용도 많아 글이 길어졌습니다.

쓰다 보면 책 한 권 분량은 쓰게 되겠다는 불안감이 엄습하여,

쓸많쓰않. 하겠습니다.

이후의 내용이 궁금하신 분이 계시다면, 꾸준히 풀어볼 용의는 있습니다.^^


https://brunch.co.kr/@psa0508/645



매거진의 이전글 첫 경험. 그 긴장과 슬픔과 그리고 두려움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