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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작세 Jan 04. 2021

담배는 나의 적

그랬을 것이다

정자가 난자를 찾아와 난자의 허락을 얻어낸 후 한 달 동안은 

느닷없이 들이닥친 약(태아 지우는)과 싸우느라 정신이 없어서 모르고 있었지만,

겨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겨내야 할 것이 또 있었다.

약이 더 이상 들어오지 않았기에 당연히 편안하고 아늑해야 할 텐데 뭔가 불편하였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

나를 이토록 괴롭히는 것의 정체는 뭐라는 말인가.

엄마의 뱃속에서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고,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충분히 견딜 만큼의 고통이었다.


눈을 뜰 수 있게 되자마자 원흉을 찾으려 했으나 실패했다.

며칠 후,  곤히 자고 있는데 익숙한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눈을 번쩍 뜨고 둘러보니 엄마 입에서, 손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는 것 아닌가.

담배였다.

그토록 나를 괴롭히던 것이, 엄마가 좋아하는 담배였을 줄이야.

방 밖에서도 연기가 나고 있었다. 아버지도 담배를 좋아하고 있었다.


간접흡연에 대한 위험도 알지 못한 시대였고, 

태아에 대해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그 누구도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던 터라.

부모도 일찍 여의고 남편도 멀리 떠나 있어서 세상에 의지할 사람 하나 없었던 엄마는

혼자 엄청난 시집살이를 해야 했으니 담배를 입에 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엄마 말씀에 의하면 할아버지(엄마에게는 시아버지)로부터 담배를 배웠다고 했다.) 

나를 임신했을 대는 남의 씨를 받아서 임신을 했다고 누명을 쓰며 온갖 수난을 당해야 했으니,

어찌 줄담배를 피우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인가.


그런데, 정작 큰 피해를 본 사람은 바로 나였다.

뱃속에서부터 담배를 피웠으니...

젖을 빨 때도 담배를 피워야 했고, 잠을 잘 때도 담배를 피워야 했다.

단칸방에 살았기 때문에 밖에 나오지 않는 이상은 담배 연기 속에 갇혀있을 수밖에 없었으니

얼마나 걷기를 갈망했겠는가.

“걸을 수만 있으면 이놈의 방을 뛰쳐나가야지”

다짐에 다짐을 했다.

그러나, 걸을 수 있을 때도 잠은 집에서 자야 한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결국 포기할 수밖에... 


자라는 동안 끊임없이 간접흡연을 했다. 

아버지도 하루에 두 세 갑을 피웠다고 하니...

어쩌면 어릴 때 평생 필 담배연기를 다 마셔버려서 지금은 담배를 피우지 않는지 모르겠다.

담배도 피우지 않고 술도 마시지 않는데 왜 이리 몸속의 기관들은 부실한 지.

알레르기야 워낙 흔한 질환이 되었으니 그러려니 하지만,

중학생 때부터 국민체조를 할 때면 어김없이 관절에서 소리가 나서

체육선생으로부터 야단까지 맞아야 했고,

젓가락으로 라면을 후루룩 먹다가는 여지없이 기관지가 자극되어 기침과 함께 다 내뿜을 수밖에 없으니

숟가락에 라면을 얹어서 세상 맛없게 먹어야 하는 처지이고,

과민 대장 증후군은 또 얼마나 심한지 밖에 나가기가 두려울 정도이다.

엄마께서는 천식이 심하셔서 결국 이것 때문에 갑자기 돌아가셨었는데,

나는 아직까지 천식은 없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 뒤집어 보기 

담배를 피우는 부모와 함께 단칸방에 살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담배연기가 싫었고, 담배를 멀리하게 되었다.

간접흡연의 폐해는 있었지만, 

담배를 싫어하게 되어 담배를 피우지 않고 몸 관리를 열심히 하게 되었으니

결코 손해라고 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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