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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작세 Jan 20. 2021

모르면 용기가 필요하다 1

무대뽀 운전면허 취득기

1993년에 운전면허를 땄다.

당시에는 운전학원을 다니는 것이 필수가 아니었다.

필기시험을 합격하면 학원을 다니지 않았더라도 누구나 시험에 응시할 수 있었다.

필기시험을 합격하고 한 달 후로 실기시험 날짜가 잡혔다.

밖에 나오니 코스와 주행 시험 보는 요령의 책자를 1500원에 팔고 있었다.

샀다.

눈으로 보고 머리에 새겼다.

드디어 코스 시험 날. 

문제는 한 번도 운전대를 잡아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지금처럼 자동 변속기가 아니라, 

클러치를 밟고 수동으로 변속을 해야 하는 수동 변속기 차량이었다.

코스 통과 요령은 책으로 익혔고, 

클러치 밟고 변속하는 것은 운전하는 동료가 하는 것을 보고 배웠다.

도대체 무슨 용기로 운전대를 잡아보지도 않고 도전했는지 지금 생각하면 아찔하다.


S자. L자. 기가 막히게 통과했다.

드디어 T자. 

쭈욱 들어간 후 변속 레버를 R 쪽으로 하고 액셀을 밟았다.

차가 앞으로 간다.

다시 레버를 R 쪽으로 하고 액셀을 밟았으나 역시 앞으로 간다.

떨어졌다. 후진을 못해서. 한 달 후로 시험이 잡혔다.

경기도 덕정에 있는 부대에 장교로 근무하고 있었기에 면허 시험은 의정부로 가야 했다.

비둘기호 기차 타고 의정부역에 내려서 버스 타고. 

시험 보러 갈 때는 대대장님의 허락을 받아야 했으니 보통 일이 아니었다.

대대장님께 떨어졌다고 했다. 후진을 못했다고.

"이 사람아. 기어를  R로 할 때는 누르면서 해야지"

세상에 이것도 모르고 운전대를 잡았다. 

1500원이나 주고 산 책에도 이 말은 없었다. 당연하다. 

누구나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을 내가 몰랐던 것이다.


S자. L자. T자 후진까지 기가 막히게 했다.

이제 우회전해서 나가기만 하면 된다.

자신 있게 우회전. 아이고. 금 밟아서 떨어졌다.

공식대로 했는데... 또 한 달 후에 와야 한다.

대대장님께서는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며 

회전하다가 금을 밟을 것 같으면 한번 뒤로 뺐다가 핸들을 돌려서 가면 된단다.


드디어, 세 번째 만에 코스를 통과했다. 네 달이 걸렸다.

코스 통과한 사람은 바로 그날 운전면허 시험장 내에 있는 주행 코스에서 주행시험을 볼 수 있었다.

주행 코스는 운동장 400미터 달리기 코스처럼 생겨있다.

횡단보도, 언덕, 횡단보도 등을 거쳐 도착 지점쯤에 신호등이 적색으로 바뀌면 급정거하는 돌발 상황까지 여러 가지 과제를 완수하면 되었다.

각 과제마다 점수가 있었고 60점만 넘으면 합격이었다.

도로주행 시험은 없었던 때라 이것만 합격하면 운전면허증을 따게 되므로 아주 의기양양하게 시험장으로 갔다.

비록 주행을 해본 적은 없지만, 코스 시험을 통과했으니 주행은 훨씬 쉬울 것이라 여겼다.


대기실에 가니 사람이 많았다. 

거기에는 이름만 대면 알만한 남자 탤런트도 있었다.

음주운전으로 면허가 취소되어서 운전을 못하고 있다고 기간이 지나서 다시 따러 왔다고 했다.

나보다 몇 번째 앞에서 시험을 봤다.

원래 운전을 했던 사람이기에 주행시험이야 앉아서 떡먹기 었을 것이다.

안내방송이 나왔다.

"ㅇㅇㅇ씨 주행 시험 탈락하셨습니다."

이게 뭔 말인가. 어찌 이런 일이...

책을 보면 어려울 것도 없는데,  운전도 했던 사람이 떨어졌다.

난 겁이 덜컥 났다.

일단 언덕길에서는 멈추지 않고 그냥 가기로 했다. 

뒤로 밀리면 안 되니까.

수동이라 클러치를 떼자마자 액셀을 밟아야 하는데 그러다가 시동이 꺼지기라도 하면 탈락이었으니까.

다른 것만 잘 지키면 충분히 합격한다고 생각했다.

처음으로 주행을 해서인지 신났다. 

마치 오랫동안 운전을 한 사람처럼 잘 달렸다.

돌발이 가장 어렵다는데 이것도 잘했다.

도착선을 넘으면 합격 불합격 방송이 나온다.

"김장훈씨 주행 시험 탈락하셨습니다."

이런.  사무실에 가서 왜 탈락했는지 물어보았다.

과속이란다. 아이고 초보가 과속으로 떨어지다니. 

지켜야 할 규정 속도가 있는데 그것을 모르고 신나게 밟았다가 떨어졌다.


또 한 달 후.

이번에도 언덕은 그냥 통과하면서 최대한 천천히 운전을 했다.

돌발 신호등이 보인다.  저것만 잘하면 된다.

"김장훈씨 주행 시험 탈락하셨습니다."

아직 도착 선도 통과하지 않았는데 탈락이라니.

시간 초과란다. 이게 뭐여. 규정 시간 안에 통과해야 하는데 너무 늦었단다.

이를 어쩌면 좋나. 대대장님께는 또 뭐라 해야 하나. 

온갖 생각이 머리를 어지럽혔다.


운전면허 시험 도전 7달째.

봄에 시작했는데 초겨울이 되었다.

이번에는 만약을 위해서 언덕에서 서보기로 했다.

그동안 두 번이나 운전을 해봤으니 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언덕은 출발하고 두 번째 과정이었다.

언덕에 가서 섰다. 

그런데, 꼭대기 근처에서 서야 하는데 너무 아래에서 서버렸다. 

당연히 차는 밀리지 않았고 시동도 꺼지지 않았다.

자포자기. 어차피 떨어진 것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나머지 과제를 수행했다.

도착선을 통과하는데

"김장훈씨 주행시험 합격입니다."

불합격이라는 말보다 더 황당하게 들렸다.

도대체 왜 합격했는지를 알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내 생각에는 잘한 것이라고는 횡단보도 앞에서 일단 정지한 것 하고 돌발 대처뿐인데.

지금도 여전히 합격한 이유를 모른다.


어찌 되었건 코스 두 번, 주행 두 번 떨어지고 7개월 만에 드디어 운전면허를 땄다.

시험기간 동안 운전대 6번 잡아봤다.

말 그대로 무대뽀 정신으로 밀어붙여서 결국 해내고 말았다.

아무리 시험장에 타이어로 방어벽이 쳐있지만, 

무면허이고 운전도 안 해본 사람이 시험장에서 처음 차를 몰아볼 생각을 했다는 것이

너무 황당하다. 

아무리 젊다고 이런 만용에 가까운 용기를 내었다는 것이 나이 먹고 생각하니 아찔하다.

어찌 되었건 나는 운전면허를 땄다.

물론, 운전면허만 따고 차를 살 수 없었기에 그 이후로 3년 동안 운전을 하지 않았다.


3년 후 면허시험 딸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용기(이건 용기라기보다 사실 미친 짓이었다)로 운전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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