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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작세 Jan 22. 2021

모르면 용기가 필요하다 2

무대뽀 도로 주행

운전면허를 어렵게 따고 3년 여가 지난 1996년 12월 어느 날

운전할 생각이 전혀 없었던 나에게 아는 동생이 말했다.

"형, 차 있어요?"

"없지. 운전할 일이 없어서"

"그럼 저희 형이 차를 바꾼다고 하는데 형이 타던 차 줄까요?"

차에 대해 어떤 얘기도 한 적이 없는데 뜬금없이 차를 준단다.

망설여졌다.

운전면허도 대충 딴 데다가 출퇴근도 하지 않고 숙직실에서 사는지라 차가 필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1997년 2월 12일 나의 막내가 서울 아산병원에서 제왕절개로 태어나기로 했다는 것이 생각났다.

서울 강서구 등촌동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추운 겨울에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도 그렇고 해서,

내가 처음으로 모는 차에 태워서 데리고 오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형식적으로 50만 원에 산 것으로 하고 차를 받기로 했다

르망. 지금은 찾아보기도 힘든 꽤 오래된 차다.

그땐 이 차가 얼마나 많이 탄 것인지를 몰랐다.

차에 대해 전혀 모를 때였으니까.

여름에 에어컨이 안되어서 고생하다가 결국 차를 폐차할 때까지는 알 수가 없었다.

시동이 꺼지거나 안 굴러간 적은 없었으니까.

어찌 되었건, 나는 차를 가지게 되었다.

이제 운전을 하면 된다.

운전학원에 가서 도로주행 연수를 받아야 될 터인데 그러고 싶지도 않고 그럴만한 여유도 없었다.

그래서... 혼자 해보기로 했다.


다행히 당시에 국군 수도병원에 근무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 바퀴 돌면 3-4킬로 정도 되는 도로가 있었고 언덕도 여기저기 있었다.

차에 올라가기 전에 돌발 상황에 액셀에서 브레이크로 발이 재빨리 옮기는 연습을 하기로 했다.

왼발은 클러치를 담당하고, 오른발은 액셀과 브레이크를 담당한다.

가장 위험한 상황이 돌발 상황에 브레이크를 밟아야 하는데 액셀을 밟거나,

클러치와 브레이크를 동시에 밟아야 하는데 브레이크만 밟아서 시동이 꺼져버리는 것이었기에

의자에 앉아서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는 이미지 훈련을 했다.

운전면허도 책 보고 따고, 운전도 혼자 한다고 하면 모두 내가 겁이 없는 사람인 줄로 아는데,

고소 공포증이 있어서 집도 3층에 살고, 높은 곳에 올라가면 아래를 못 볼 정도로 겁이 많다.

그래서 며칠 동안 틈만 있으면 이미지 훈련을 했다.


며칠 후, 토요일.

모두 퇴근하고 가끔 걸어 다니는 사람만 있을 뿐 차가 다니는 곳은 한가할 때 드디어 차에 올랐다.

차가 튀어나가면 안 되니까 동료에게 운동장 옆 직선 차로까지 차를 가져다 달라했다.

차를 가져다주면서 당연히 한마디 한다.

"너 미쳤냐?"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는 모르니까 알아서 해라. 나는 겁나서 못 탄다." 하고 매정하게 가버렸다.

전방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클러치와 브레이크를 밟고 시동을 걸고, 기어를 1단으로 바꾸고, 

클러치를 떼면서 오른발을 액셀쪽으로 옮기는 순간 시동이 꺼져버렸다.

클러치를 풀면서 액셀을 밟아줘야 하는데, 이게 타이밍을 제대로 맞출 수가 없었다.

몇 번 시도 끝에 드디어 시동을 꺼뜨리지 않고 차가 출발한다.

기어는 바꿀 수가 없었다. 어차피 빨리 달릴 것도 아니니 바꿀 이유도 없었고.

그렇게 1단으로 직선주로를 통과하여 한 바퀴 돌기를 시작했다.

도로에 사람이 보이면 일단 경적을 한 번 빵. 

그들은 내가 운전을 처음 해본다는 것을 모르고 있을 터이니 경고를 해줘야 했다. 비키라고.

그렇게 몇 바퀴를 돌다가 드디어 클러치 밟고 2단으로 기어 변속. 성공.

이것은 굳이 타이밍을 맞추지 않아도 액셀에서 발 떼고 클러치만 밟아주면 기어 변속이 가능하기 때문에 시동이 꺼질 염려는 없었다. 

출발할 때와, 브레이크를 밟아야 하는 상황만 오지 않는다면 시동을 꺼트릴 염려는 없었던 것이다.

핸들을 움직여서 방향을 잡는 것은 쉬웠다. ^^


2단 이상 변속은 할 수 없었다. 직선 주로가 길지 않으니까.

2단으로 한 바퀴 돈 후에 다시 직선 주로로 갔다.

브레이크를 밟을 때와 출발할 때 시동 꺼트리지 않는 연습을 했다.

단번에 성공. 아싸. 몇 번을 시도해도 안 꺼졌다. 미션 클리어.

다음 미션은 언덕에 섰다가 출발할 때, 시동도 꺼트리지 않고 차가 뒤로 밀리지 않는 연습이었다.

수동 변속기는 자칫 출발 시 클러치와 브레이크와 액셀의 타이밍을 맞추지 못하면,

브레이크를 떼는 순간 차가 뒤로 밀리고, 만약 시동이 꺼지기라도 하면 큰일이 난다.

주행이야 어찌하더라도 이것을 완벽하게 하지 않으면 결코 도로에 나갈 수가 없는 것이다.

약 40도 정도 되는 경사로가 있었다. 

여기에서만 아무 일이 없다면 된다고 생각했다. 

강서구 등촌동에서 서울 아산 병원까지 가는 도로에 그 정도의 경사도는 없기 때문이다.

내 목적은 오직 아내와 딸을 내 차에 태워 안전하게 귀가하는 것이었으니까.


아이고, 밀린다.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편한 상태에서 했는데도 밀린다.

다행히 시동은 안 꺼졌다. 얼른 브레이크를 밟고 다시 시도. 

밀린다.

결국 조금씩 밀려서 언덕 10여 미터를 후진으로 내려와 버렸다.

결국, 경사가 낮은 곳으로 이동했다. 안 밀린다.

다시 40도 경사로로 가서 시도했다. 뒤로 조금 움찔하더니 앞으로 간다. 

"바로 이 느낌이구나"

한 바퀴 돌아와서(후진으로 아래로 내려갈 용기가 나지 않았고, 어차피 연습해야 하니까) 또 시도.

여전히 조금 뒤로 움찔한다. 몇 번을 해도 똑같다. 

뒤차가 아무리 바짝 붙어 있더라도 1미터는 떨어져 있을 터이니 10센티 정도 밀리는 것은 괜찮지 않겠나 싶었다.

마음이 바빴던 것 같다. 2개월 안에 완벽하게 운전을 할 수 있어야 하니까.

해가 저물어가서 연습을 접어야 했다. 

주차장은 텅 비어 있었기 때문에 주차는 아주 쉬웠다.

차를 대놓고, 동기와 저녁을 먹으면서 물어보니 경사로에서는 조금은 뒤로 움찔한단다. 오케이.


다음 날 일찍 일어나 아침을 먹는둥 마는둥하고 차로 갔다.

사실 상당히 흥분된 상태였던 것 같다. 

처음으로 운전을 한다는 것은 마치 첫눈에 반한 이성과 첫 데이트를 하는 것과 비교해도 될 만큼 떨리는 일이었다.

다시 어제의 연습을 반복했다. 

1단으로 한 바퀴 도는데 약 4 분 정도 걸렸다. 경사로에 가면 브레이크를 밟았다가 출발했다.

이렇게 한 시간 정도를 연습하고 나서 마지막 미션에 들어갔다.

주차. 텅 빈 주차장인지라 쉬웠다.

문제는 양 옆에 차가 있는 상황에서 주차를 해야 하는 것이 문제였다.

그래서, 의자를 네 개 가져다가 양쪽에 차 앞바퀴 뒷바퀴 위치에 세웠다.

의자만 건들지 않고 넣으면 성공. 

이쪽 의자에 닿지 않으면 저쪽 의자가 걸린다.

후진할 때 경고음도 없는 차인지라 오직 사이드미러에 의존해야만 했다.

아무리 해도 쉽지 않았다. 동기를 불렀다. 

T자 코스가 주차 시험이라는 것을 이때에야 알았다.

T자 코스 후진해서 들어가는 것처럼 공식대로 했더니 된다. 아싸 가오리~~~

전면주차, 가로주차는 아예 할 생각이 없었기에 오직 후진 주차만 연습을 했다.

오전 내내 같은 연습을 반복했다.

점심 먹고, 드디어 도로로 나가기로 했다.

일요일이라 차도 많지 않을 것이고, 내가 생각한 코스는 유턴도 할 필요 없고 그저 한 바퀴 돌아오면 되는 코스였으며 도로도 넓으니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옆에 아무도 타지 않았고, 오직 나 혼자. 

정말 지금 생각하면 아찔하다. 미치지 않고서야...

코스는 이렇다. 

국군 수도병원(지금은 등촌아이파크아파크로 바뀌었네요)에서 나와서 좌회전, 직진, 김포공항 쪽으로 좌회전.

그대로 쭈욱 가면 김포공항 주차장을 끼고 한 바퀴 돌아서 오면 되는 것이었다.

왕복 약 15킬로.(지도로 보니 이 정도 되네요)

서울에 사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그림의 3번에서 좌회전만 하면 도로가 4차선이고, 김포공항 근처에 가면 무려 8차선(6차선인가?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인 데다가 속도 감시카메라가 여러 군데 있어서 차들이 쌩쌩 못 달리는 곳인지라,

별 문제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느리게 가면 차들이 비켜갈 차로가 아주 많았으니까요.(당시에 저로 인해서 주행에 지장을 받으신 수많은 차주분들께 이제야 사과를 드립니다. 그땐 몰랐어요. 운전에 도가 튼 후에야 앞에 차가 느리게 가는 것이 얼마나 짜증 나는 일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더군다나 경사로도 없고요. 최적의 연수 코스라고 할 수 있지요.

김포공항 근처에 갔을 때,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차와 사람만 조심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찌 보면 이것이 가장 위험하고 어려운 것인데, 

당시에는 생각을 하지 못했었습니다.


드디어 출발. 초보 운전 스티커도 붙이지 않았습니다. 붙여야 한다는 것을 전혀 몰랐었습니다.

한 번도 붙인 사람을 못 봤었고 누가 말해주는 사람도 없었거든요.

겁은 났지만 정말 신났습니다.

무려 시속 40킬로까지 밟았습니다.

문제는 교차로에서 좌회전 하는 것이었습니다.

2차로에서 2차로로 도는데 옆 차들이 다 저에게 달려는 것입니다.

이것을 잘 피해서 돌아야 하는데 식은 땀이...

직선주로는 그나마 괜찮았습니다.

아예 앞만 보고 갔으니까요.

문제는 김포공항 근처에서 발생했습니다.

여기저기서 차만 튀어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도 튀어나오고,

버스도 많아서 버스가 옆에 오면 제가 가야할 차로가 너무 좁아보였습니다.

간이 콩알만해진체로 완전 서행.

다행히 거의 모든 차가 저와 비슷한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초 긴장 상태로 무사히 김포공항 앞 길을 통과했을 때는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무려 세 번을 왕복했습니다.

2차로를 이용하면서 차로 변경도 거의 하지 않았었습니다.

도착지에 다 와서야 차로 변경을 했는데,  이 지점에서는 뒤따라 오는 차들도 거의 없었기에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저의 첫 도로 주행은 아무 일 없이(뒤에서 빵 하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충분히 피해 갈 공간이 있었기 때문인지, 당시에는 사람들이 다 착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쳤습니다.

얼마나 뿌듯하든지.

이때는 격주 부부(2주에 한 번 만날까 말까 한)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저녁에 아내에게 전화해서 자랑했던 기억이 있네요.^^

제 자랑을 들은 아내는 잘했다고 칭찬했던 것 같습니다.

"위험하게 뭔 짓이여"라는 종류의 말은 아예 하지 않았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제가 뭘 해도 잘한다고 여기고 걱정을 하지 않거든요.(아이고, 오글거립니다. 자뻑이 좀 심한 것 같은데, 사실이라 기록을 안 할 수가 없네요. 제가 뭘 해도 잘하는 것이 사실인 것이 아니라, 아내가 저에 대해 그렇게 알고 믿고 있다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제, 아산 병원까지 갔다 오면 완벽하게 준비가 끝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에는 내비게이션도 없고, 촌놈이라 서울 지리도 모르고(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거의 칩거를 했기 때문에 등촌동 외에 다른 곳은 잘 몰랐습니다. 혹시 가끔 세미나를 가거나 어쩌다가 대학로를 가더라도 버스와 전철을 타고 다녔기 때문에 차로 가는 길은 아예 몰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김포공항 가는 길과는 너무 다르게 경사도도 많고, 도로도 몇 차로 인지도 모르고, 온갖 사거리를 다 지나야 하는 등 극복해야 할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이 얘기는 마지막 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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