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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작세 Apr 09. 2021

죽음

수긍하기

짐승들이나 식물들에게 물어보지 않아서 정확하지는 않지만,

죽음에 다다르기 전에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존재는 사람이 유일한 것 같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결국 죽는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지만,

죽음만큼 두려운 미지의 세계는 없다.

마땅히 받아들여야 하는 줄 알면서도 고개를 강하게 흔들며 거부하게 되는 것이 죽음이다.


사람에 따라, 건강 여부에 따라 다르겠지만,

80살에서 90살 사이 정도 되면, 산에 있는 사람이 부러워진다고 한다.

자연스러운 죽음은 그나마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사고로 인한 죽음은 모두가 피하고 싶은 것이지만,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일이고 죽음을 수긍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자연사든, 사고사든,

죽는 당사자는 어느 정도의 시간 혹은 기간만 고통을 당한다.

하지만,

남아있는 사람의 슬픔은 기간이 정해져 있지 않다.

비록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 죽었지만,

지금도 세월호를 생각하면 마음이 먹먹해지고 답답하고 안타깝다.

가족들은 자신이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벗어나지 못할 고통이다.

비록 이루어질 수 없는 소원일지라도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자연사만 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오늘은 엄마 제사 날이다.

11년 전 4월 10일. 

엄마는 간다는 말도 없이 이날 밤 갑작스럽게 쇼크로 인한 죽음을 당하셨다.

오랫동안 천식이 있으셨기에 건강하신 편은 아니었으나 

죽음의 그림자는커녕 어떠한 징조도 없이 

돌아가시기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아무렇지도 않게 대화를 하셨었는데...

엄마 곁에는 아버지밖에 없었고, 

나는 모임에서 한창 즐겁게 놀고 있었던 시각에

엄마는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느끼지도 못하고 돌아가시고 말았다.


나는 엄마의 죽음을 수긍할 수 없었다.

응급실에서 사망 선고를 받고 엄마는 장례차에 실려 장례식장으로 가시고 나는 내 차로 갔다.

장례식장에 도착하니 엄마가 보이질 않았다.

물어보니, 냉동고에 넣었다고 한다.

아직 체온도 식지 않았는데 내 엄마를 냉동고에 넣었다는 사실에 나는 분개했다.

어떻게 내 엄마를 지들 맘대로 차디찬 냉동고에 넣어버린단 말인가.

당장 꺼내서 상주 방에 모셔다 달라고 했다.

안된다고 한다.

그러면, 집에 모시고 갔다가 내일 아침에 다시 모시고 올 테니 꺼내 달라고 했다.

장례식장 측에서는 그렇게 되면 하루치 비용이 손해가 난다는 생각을 했는지

"손님들이 오늘은 안 올 것이니까 내일 아침까지는 그렇게 해드리지만, 냉동고 안치비는 지불하셔야 합니다"

나는 엄마를 냉동고에서 꺼내드려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기에, 비용은 다 지불할 테니 당장 옮겨달라고 악을 썼다.

그리고, 하루 밤을 엄마 곁에서 엄마와 함께 지냈다.

울다 울다 또 울다 지쳐서 잠시 잠이 들었는데, 엄마의 맥박이 느껴졌다.

분명 엄마는 평온한 얼굴로 꼼짝 않고 누워계시는데 맥박이 뛰었다.

놀란 가슴을 진정하고 엄마의 맥을 여기저기 짚어보았는데 뛰는 것 같았다가 멈춘 것 같기도 했다.

내 맥박이었다.

도저히 엄마의 죽음을 수긍할 수 없었나 보다.

슬픔이 치밀어 올라 큰 소리로 엉엉 울고 말았다.

그렇게 날이 밝았고 그때까지도 엄마의 살은 보드랍고 말랑거렸다.

할 수 없이 엄마를 영안실에 모셨고 나는 슬픔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 이후로 나는 엄마가 살아계신 꿈을 자주 꾸었다. 최근까지도.

엄마는 돌아가셨는데, 어떻게 엄마와 똑같은 사람이 내 곁에 엄마라고 하면서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는

생생한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결론을 내린다. 

'엄마와 완전히 닮은 사람이지 엄마는 아니다. 하지만, 엄마로 생각하고 잘해드리자.'


엄마의 죽음을 수긍하는데 10년이 걸렸다.

세수하다가도 울고, 자다가도 울고, 운전하다가도 울고, 노래 부르다가도 울고, 엄마 얘기만 나오면 울고...

그래도 최근에는 태진아의 '사모곡'을 불러도 울컥하지 않고 부를 정도가 되었었다.

그런데, 오늘 가족 톡방에 엄마의 생전 모습 동영상을 올리고, 

'사모곡'을 올리기 위해 녹음하다가 결국 울어버리고 말았다.

나는 아직도 엄마가 그립다.

사람들은 나보고 효자라고 말을 하지만

나는 엄마에게 못 해 드린 것이 너무 많기에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자꾸 너무 죄송한 마음이 든다.


내 죽음은 쉽게 수긍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거의 없다.(아예 없다는 것은 거짓말이고, 받아들일 자세는 확실히 갖추어져 있다는 뜻이다.)

한 가지 소원이 있다면, 

죽기 직전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작별인사는 하고 싶다.

만약 80살이 넘을 때까지 내가 살아있다면,

나는 정신이 말짱할 때 모두와 웃으며 작별 인사를 하고 안락사를 선택하려 한다.

그때쯤이면 우리나라도 개인의 죽을 자유를 보장해주겠지.


"잘 놀다 간다." 

이 말을 유언으로 남기고 싶다.

모두가 내 죽음을 수긍할 수 있도록...


엄마!

엄마가 제 말을 들을 수 있을 때 자주 말해 드리지 못해서 너무 죄송합니다.

엄마! 

예쁘고 불쌍한 내 엄마!

장훈이가 엄마를 너무너무 사랑합니다.

부디 천국에서 평안하소서.

사랑해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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