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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작세 May 21. 2021

미얀마를 바라보며

시대를 잘 타고나야 하는가 보다

광주 항쟁 때 나는 중학교 3학년이었다.

내가 다니는 중학교는 전문대학교, 고등학교, 중학교, 초등학교가 한 재단에 소속되어 있었고

운동장을 같이 쓰기도 할 정도로 붙어 있었다.

어느 날, 하교하기 전에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교문 앞에 군인들이 총을 들고 서 있으니 절대 쳐다보지도 말아라. 잘못하면 잡혀갈 수도 있으니"

정말로 군인 네 명이 총을 들고 서 있었고, 그 사이를 벌벌 떨면서 버스 정류장까지 갔었다.


우리 집은 양동시장 내에 있었다.

쌀가게를 했었는데 갑자기 쌀 배달이 많이 생겼다.

나는 중3이었지만 가게 일을 돕기 위해 쌀 배달을 했었다.

이상하게도 거리에는 차도 사람도 평소와 다르게 많지 않았고 여기저기 군인들이 보이는데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자전거에 쌀을 싣고 배달을 다녔다.

보유하고 있던 쌀은 금방 다 팔려버렸고, 부모님께서는 우리가 먹을 것은 남겨놓아야 한다고 하셨다.

저녁에는 잡곡 대야들을 방문 앞에 쌓아놓고 잤었다.

총알이 날라 들어올지 모른다고...


도청 앞에서 사람들이 모인다고 했다.

아버지와 나는 걸어서 도청으로 가던 중, 총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리어카에 시체가 실려서 내 앞을 지나갔다.

아버지와 나는 정신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모든 광주 시민들이 같은 것을 겪었다.

하지만, 모든 광주 시민들이 죽거나 다치거나 행방불명된 것은 아니었다.

적극적으로 민주화를 위해서 나섰던 사람들, 운 나쁜 사람들, 군인 눈에 잘못 띈 사람들 등이 죽었다.


내가 중학생이 아니라 대학생이거나 청년이었다면...

나도 죽었을 가능성이 높다.


당시에 광주를 제외한 대부분의 도시에서는 광주시민들을 폭도로 알고 있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아주 몰지각한 사람들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미얀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유엔도 미국도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할 수 없는데,

아무것도 아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사실 없다.

기껏해야 분노하고, 성금 보내고, 더 적극적으로 나서봐야 함께 피켓 들고 시위하는 정도이다.

그래 봐야 지금의 상황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지금 이 순간, 미얀마 사람들은 시대를 잘못 타고난 것이다.

현재의 대한민국 국민들의 대다수는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겪지 않은 사람들이다.

대한민국 청년들은 민주화 운동이 무엇인지도 모를 정도의 시대를 살고 있다.

시대를 잘 타고난 것이다.

비록 민주화 운동 때 데모도 하고, 휴학도 했었지만

그래도 나는 그나마 시대를 잘 타고 난 편에 속한다.


'행복'에 대한 글을 연재 중이었다.

네 개의 글 모두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의 행복 혹은 개인의 행복에 대한 것이었다.

'나는 시대를 잘 타고났고, 미얀마에 태어나지도 않았고, 그래서 군부의 총칼을 마주하지 않아도 되고, 먹고살만하니까 행복하고 좋다.'

라는 생각에 머물러 있다면 나는 인간임을 포기한 것이 아닐까 싶다.


개인의 행복도 중요하지만, 공동체의 행복, 모든 인간들의 행복도 개인의 행복 못지않게 중요하다.

지금 미얀마,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나는 그들에 비하면 너무나 평온한 상황에 있으면서도 힘들어할 때가 있다.

그들에게 미안하다.


나라를 잘 타고난 것은 분명 복이고 감사할 일이지만,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 고통당하는 것을 모른 척하는 것은 분명 옳지 않다.

내가 그들을 군부로부터 구해낼 수는 없다.

그렇다고 그들을 외면하고 내 행복만을 추구하면서 살 수는 없다.

그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해야만 한다.


직접 고통을 당해보지 않으면 아무리 글로 말로 영상으로 설명해도 모른다.

광주항쟁을 비록 어린 나이지만 겪은 사람으로서

지금 미얀마 국민들이 얼마나 공포에 떨고 있을 것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신들은 결코 이 상황을 해결할 의지가 없다.

나는 신들이 인간사에 절대 개입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신들이 해결해주기를 기대해서는 안된다.

신들은 우리가 해결하기를 바라고 있다.


우리가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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