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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작세 Apr 14. 2021

스토킹 2

스토킹은 살인 행위이다.

근무하는 건물에 주차장이 없어서,

건너편 이면도로 주차 가능한 곳에 세워 놓는다.

그래서 매일 주차하는 곳이 바뀐다.

어느 날 퇴근하기 위해 차를 탔는데 갑자기 스토킹 여성이 나타났다.

이날은 아들이 와서 함께 퇴근하는 중이었기에 조수석에는 아들이 타고 있었다.

깜짝 놀라 문을 황급히 잠그고 출발하려는데, 

차 앞을 막고 못 가게 한다. 얘기 좀 하자고.

식은땀이 흘렀다. 

나는 남자이고 아들도 옆에 있는데도 무서워서 가슴이 벌렁거렸다.

절대 차에서 내릴 수 없었다. 

브레이크를 밟은 상태에서 액셀을 밟으며 그냥 가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했다.

잠깐의 실랑이 끝에 나는 무사히 집으로 올 수 있었다.

다행히 나는 차에 아파트 스티커를 붙여놓지 않았기 때문에 집은 노출이 되지 않았다.

만약 집이 노출되었다면 집까지 쫓아왔을 것이다.

집에 가서 아내에게 이 말을 했고, 아내는 나보다 더 놀랐다. 당연하다.

이날 이후로 퇴근할 때마다 초긴장을 해야 했다.

그렇다고 마땅히 다른 곳에 주차할 수도 없었기에 그저 제발 나타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며칠 동안 아무 일 없었다.

내가 강력한 의지를 표명했기 때문에 이제 포기했다고 생각했다.

이면도로에 차를 대고, 큰 길가로 나와 길을 건너려면 모텔과 옆 건물 사이의 작은 골목길(골목길이라 하지만 약 5-6미터 정도의 길이다)을 지나와야 한다.

주차 후에 골목길로 들어섰는데, 갑자기 모텔 문 쪽에 숨어있던 여자가 불쑥 내 앞을 가로막는 것이 아닌가.

마치 장난으로 놀라게 하기 위해 숨어있다가 나타난 것처럼.

차 앞에 나타났을 때보다 더 놀랐다. 하마터면 욕이 나올 뻔했다. 

이 정도면 결코 정상이 아니다 싶었다.

정신없이 도망쳤는데 신호등이 빨간 불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더 이상 따라오지는 않았다. 

사람들이 많은 곳은 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동안 여기저기 출몰하던 사람이 이 이후로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날마다 최소 하루에 한 번 문자가 왔다. 

차단하고 싶었으나 나중에 어떤 상황이 생길지 모르고, 여차하면 스토킹 신고를 해야 했기에 

모든 문자를 캡처해서 컴퓨터에 저장해 두었다. 

문자는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

이 여성은 전주가 집이라고 했었다. 물론 결혼도 했고 자녀도 있고.

어느 날 "남편과도 헤어지고 병원 근처 원룸을 얻어서 이사 왔으니 언제든지 오세요"라는 문자가 왔다.

주소도 적혀있었다.

이 문자를 누군가가 보면 마치 나와 무슨 관계나 있는 것으로 오해할만한 문자였다.

물론 나는 어떠한 답도 반응도 하지 않았음에도...

어디인지 알아야 피할 수 있겠기에 검색을 해보았더니

내가 자주 주차하는 곳에서 300여 미터 떨어진 곳이었다.

점심때 가끔 팥죽이나 칼국수를 먹으러 가는데 그 건너편이었다.

'이런, 이제 팥죽도 칼국수도 못 먹겠네.'


친구가 정신과 의사이기에 친구에게 자초지종을 얘기하고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친구 왈

"일단 철저히 무시해라. 네가 어떻게 한다고 해도 떨어져 나가질 않는다. 스토킹의 타깃이 옮겨져야만 벗어날 수 있다"라는 절망적인 말이 돌아왔다.

경찰서에 신고한다고 해도 아무런 위해를 가하지 않았기 때문에 당시에는 과태료 8만 원이 가장 강한 체벌이라 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떤 일을 당할지도 모르고 정신적으로 엄청난 고통을 받고 있는데 이런 것은 아무런 고려 사항이 아니었다.

몸에 해를 입은 후에야 처벌할 수 있다는 것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것'보다도 더 황당한 말임에도 불구하고 방법이 없었다.

나는 속수무책으로 이렇게 2년을 당해야만 했다.

날마다 마음 졸이고 출퇴근을 해야 했고,

뜬금없이 나타나서 별다른 말도 없이 사라지니 어디에선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두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문자가 오지 않았다.

보이지도 않았다.

얼마나 기쁘던지...

드디어 타깃이 새로 생긴 것인가? 그 타깃에겐 미안하지만 제발 그랬기를 바랐다.

계속 아무 일이 없었다.

드디어 해방된 것이다.

정신적인 고통 외에는 해를 입지도 않았었다.

그나마 얼마나 다행인가.


다행히 스토킹 처벌이 강화되었다.

아무리 처벌이 강화되었어도 스토킹은 계속될 것이다.

이것은 내가 고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친다.

스토킹은 살인 행위나 다를 바 없다.

정신적인 고통으로 죽어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니까.

그러다가 결국 실제로 죽음을 당하기도 하니까.

스토킹은 초반에 국가에서 바로 해결해주어야만 한다.

스토킹 당한 사람에게 증거를 대라고 해서도 안된다.

스토킹 신고를 받으면 즉시 보호에 나서야만 하고, 

처벌 증거도 경찰이 잡아야만 한다.


나는 귀신은 무서워하지 않는다.

귀신이 해를 끼치는 일은 없으니까.

사람이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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