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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작세 Jun 30. 2021

어느 날 우리 집 현관으로 고양이가 들어왔다

생전 처음 알레르기 테스트를 하다

제 부모님은 쌀장사를 하셨고

당시에는 쥐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고양이를 키웠었습니다.

고양이 이름은 가장 대표적인 '나비'였습니다.

아마 대부분의 고양이가 '나비'였을 것입니다.


지금의 고양이들과 달리 당시의 고양이는 쥐를 아주 아주 잘 잡았었습니다.

암 고양이었는데 매일 아침이면 잡아 놓은 쥐가 마치 전리품처럼 문 앞에 놓여 있었습니다.

'쥐 잡기 운동'이 있어서 학교에서 쥐꼬리 가져오면 상을 주던 때라

저는 고양이 덕분에 아주 편히 쥐꼬리를 가져갈 수 있었네요.


저희 집 나비는 엄마와 제 담당이었습니다.

지금처럼 고양이를 위한 식사나 숙소나 놀이기구는 전혀 제공되지 않았습니다.

먹다 남은 음식 중에 고양이가 좋아하는 생선 등을 밥에 섞어 주었고,

가게 전체가 고양이의 숙소요 놀이터였고,

고양이의 가장 좋은 놀이기구는 살아있는 쥐였습니다.


수컷 고양이를 만나게 해 준 적이 없는데, 배가 불러오더니 새끼들을 낳았습니다.

아시다시피 모든 동물의 새끼는 예쁘지요.

심지어 돼아지 마저도.

우리 가족은 가게에 딸린 방 한 칸에서 모두 살았었는데, 

낮에는 이 방도 고양이 놀이터였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3학년 때였는데 학교에 다녀오니 방에서 기겁할 상황이 벌어져 있었습니다.

쥐 한 마리가 잔뜩 겁에 질린 상태로 방 한 구석에 몰려 있었고,

나비는 그 쥐를 노려보고 있었고,

나비의 새끼들은 엄마 옆에서 구경을 하고 있었습니다.

도망가려는 쥐를 잡아서 다시 구석으로 던져 놓는 것을 계속 반복하고 있더라고요.

새끼들에게 쥐 잡는 것에 대해 산교육을 하고 있던 것이었지요.

참 신기했었고 나비가 대단하게 느껴졌었습니다.

한참을 그렇게 하더니 결국 나비는 쥐의 목을 물어서 죽이더라고요.

물론 그 쥐를 버리는 몫은 저였습니다.

도저히 손으로 잡을 수는 없었고 연탄집게가 쥐를 잡는 도구였지요.


고양이 목욕은 시켜본 적이 없습니다.

그럴 필요도 없었거니와 짐승의 목욕을 시킨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었거든요.

내 몸도 잘 씻지 않아서 조금 과장하면 명절 때나 목욕을 할까 말까 하는데...

그래도 고양이가 더럽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시장 한가운데가 우리 집이요 가게였고 나비는 하루 종일 사방을 돌아다녔고 

그 나비를 만지고 놀았어도 나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6월 초에 우리 집 현관으로 고양이가 들어왔습니다.

아내가 아는 사람이 유기 고양이가 사업장에 있어서 줬다고 했습니다.

저는 반려 동물 키우는 것을 반대해왔습니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사람 이외의 동물을 싫어해서는 아닙니다.

저는 어느 정도 크기의 동물 중에(모든 동물 통틀어 쥐와 바퀴벌레를 싫어하지만) 사람을 가장 싫어합니다.

사람이 동물 중에서 가장 악하고 교활하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어릴 때부터 고양이와 함께 살았었고 제가 키우다시피 했는데 싫어할 이유는 없지요.

그래도 저는 항상 반대를 했었고, 저희 가족들도 키우자고 하는 사람이 없었는데,

갑자기 고양이가 우리 집에 있게 된 것입니다.


2개월 조금 넘었다고 하는데, 누가 어떤 연유로 버렸는지, 어미가 길고양이인지, 어미 몰래 가출을 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집에서 키우려면 목욕을 시켜야만 했습니다.

고양이에 대해서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나이고, 고양이는 목욕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제가 자처하여 목욕을 시키고, 집 안을 돌아다니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기에 베란다에 고양이 아지트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랬는데,,,

제 몸 여기저기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알레르기는 조금 있었지만, 음식에 대한 알레르기도 없었고, 향수를 뿌린 사람이 지나가면 재채기를 한 두 번 하거나 아주 심한 향수에 대해서는 잠시 숨 쉬기가 힘들어진 적은 아주 드물게 있었고, 몸에는 아토피를 비롯하여 어떠한 문제도 일어나지 않았었고, 어릴 때 고양이도 키웠었기에 잠시 그러려니 했는데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더워지면서 접촉성 피부염이 생긴 것이라는 후배의 진단하에 약도 먹었지만 가려움증과 발적 현상은 더 심해지고 범위도 넓어져 갔습니다.


그래서 결국 지난주 목요일에 알레르기 테스트를 생전 처음으로 받았습니다.

혈액으로 108가지의 알레르기에 대한 검사였습니다.

알레르기 테스트 하기 하루 전부터 고양이에게 가지 않았는데,

만약 고양이에 대한 알레르기라면 같은 집에 있다는 것만으로 문제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월요일에 나온 결과 : 고양이 몸이나 털에 있는 진드기에 대한 알레르기.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다행스러운 이유가 있습니다.) 고양이에 대한 알레르기는 아니라는 것.

결국 항히스타민제를 장기간 복용해야 한다는 처방이 내려졌습니다.

고양이를 만지거나 같은 공간에 있지 말라는 당부와 함께.


고양이에게 가지 않고, 약을 먹고 있어서인지 증상은 더 이상 나빠지지 않고 조금 좋아지고 있습니다.

알레르기 테스트를 100퍼센트 신뢰해야 하지만,

제가 실험정신이 투철한지라,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라고 자칫 고양이에게 누명을 씌울 수도 있는 일이기에

몸이 다 좋아진 후에 다시 고양이를 만져볼 계획입니다.

그랬더니 다시 몸에 문제가 생긴다면 그때는 인정하고 깔끔하게 고양이로부터 제 몸을 지켜야겠지요.


대문 사진 : 어느 날 우리 집 현관으로 들어온 백또리(하얀 수컷 고양이. 가족 토론 끝에 지은 이름입니다. 백똘이를 소리 나는 대로...)

아래 동영상 : 제가 설치해 놓은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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