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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작세 Apr 27. 2021

사부곡

장인상을 치르고

4월 23일 아침.

장인께서 돌아가셨다.


1985년.

대학교 1학년 때 여자 친구를 사귀었다.

마땅히 부모님께 말씀드려야 한다고 여겼었기에 내 집에도 데리고 갔고

나도 두 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인사를 드리러 갔었다.

처음에 갔을 때는 어머님만 뵐 수 있었고, 아버님은 못 뵙고 왔다.

일하시느라 늦게 들어오시는데 나도 버스 타고 다시 집으로 와야 했기 때문이다.

겨울 방학 때 두 번째 갔을 때 뵈었다.


난 술을 전혀 못한다. 알코올 알레르기가 있기 때문이다.

아버님은 술이 거의 유일한 취미이다.

딸의 남자 친구가 나타났다.

집안 누구도 술을 마시는 사람이 없었기에 술을 함께 해줄 사람이 나타났는데 알코올 알레르기.

이런 알레르기는 들어본 적도 없고, 술 못 마시는 사람도 마시다 보면 는다는 것이 확실한 이치인데 뭔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당연히 술 한잔이 건네어졌고 거부할 수 없는 술이기에 들이키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온몸이 벌겋게 달아올랐으니 누군들 놀라지 않겠는가.

그 이후로 아버님은 나에게 먼저 술을 권하는 일은 없었다.


술이 들어가야만 그나마 말을 조금이라도 하시는 아버님.

술이 들어가면 온 몸이 가렵고 잠이 쏟아지고 속이 울렁거려 말을 할 수 없는 나.

무려 35년 동안 아버님과 둘이 나눈 대화의 시간을 총 합하면 기껏해야 24시간이 되지 않는다.

(기억의 한계로 인하여 정확한 계산은 불가함. 그만큼 대화가 적었다)


서로 대화가 너무너무 부족한 사이.

대장을 2/3 잘라내고도 15년 여를 버티시고 간이 90퍼센트 이상이 경화가 오고 온몸에 암이 산재해 있다는 말을 듣고도 항암 치료를 거부하시고 좋아하시는 술을 드시며 사셨던 분.

입으로 아래로 엄청난 피를 토해내시면서도 아프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버티셨던 분.

말 그대로 언제 돌아가신다고 해도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될 만큼 몸이 좋지 않으셨던 분이셨기에

돌아가시면 슬프기는 해도 눈물이 그리 흐를 것 같지는 않았었는데...


입관식 때 드러난 아버님의 발을 본 순간.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냥 막 마음이 아프고, 아버님이 불쌍하게 생각되고, 억지로라도 자주 술을 함께 마셔드리지 못한 것이 너무 큰 죄를 지은 것 같고, 아버님과 함께 했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면서 참고 있던 눈물이 폭풍처럼 쏟아지고 말았다.

나는 내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던 사람인데...


아버님께서 살아오신 인생을 알기에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그 발을 가지고 얼마나 고생을 하셨을까"라는 생각이 들며 줄줄 흘러내렸다.

아버님께 내가 해드린 것은 정말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다.

치매가 진행되었음에도 전화 너머로 내 안부를 물으시고, 내 이름을 절대로 잊지 않으신 아버님이신데

나는 정작 아버님께서 좋아하시는 것을 별로 함께 해드리지 못했다.

이런 나임에도 불구하고

"너희들은 매형, 형부 말을 무조건 잘 들어야 한다."라고 자식들에게 말씀하셨던 그 아버님은

지금

당신이 준비해놓으신 자리에 누워 계신다.


       사부곡


맨손으로 시작하여

가족들 부족함 없이

부양하시느라

당신의 얼굴엔

굵은 주름이 패였고

당신의 손마디는

울퉁불퉁 해졌고

당신의 발은

휘어지고 튀어나왔네요.

비록 사위라 할지라도

어찌

마음 아프지 않겠습니까.


검게 그을린 얼굴

하얗게 변해버린 머리카락

그마저도 듬성듬성

늘어질 대로 늘어진 눈꺼풀

자랄 대로 자란 군날개

다른 사람 시선 의식 않으시고

제대로 멋을 내본 적

없으시지만

당신은

진정한 멋쟁이셨습니다.


못 배워 한이 되어

자식들은 배워야 한다며

자신을 내던지시고

말은 별로 없으셨어도

자식들을 무척이나

사랑하시고

불쌍한 사람

그냥 지나치지 않으셨던

당신은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한

진정한 그리스도인이셨습니다.


술 못한 사위지만

항상 따뜻하게 대해 주시고

너무나 소중한 딸을 빼앗아간

도둑놈임에도

한없이 믿어 주시고

딸에게 잘해주라는 말

한 번도 하지 않으셨던

당신은

나의 진정한

아버지셨습니다.


"먹어라"라고

말해주실

아버님

사위가 부르는

"카루소" 노래에

박장대소하실

아버님

술 드시며

세상 모든 시름

잊으시던

아버님은

이제

제 곁에 계시지 않지만

저의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 계실 것입니다.


힘든 인생을

견디어 내었던

마지막으로 보았던

아버님의

구부러진 발이

눈물이 되어

앞을 가립니다.

아버님

이제

편히 쉬소서.


생전에

서로 쑥스러워

들어보지도 못했고

해보지도 못한 말을

아버님께 바칩니다.

"아버님!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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