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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a..] 업무시간 아니면 나홀로 있을란다

나만의 시간과 공간을 찾아서...

얼마 전 중간감사를 나갔던 회사 이야기


지방 공단에 있는 회사다. 전반적인 경기가 좋지 않은 탓에 올해 실적이 전년에 비해 좋진 않지만 그래도 견실한 회사인지라 손익은 상당히 선방한 것이었다. 전년대비 매출액이나 손익측면에서 매우 악화된 회사들이 수두룩한 요즘의 상황에서 이 정도라면, 회계감사를 하는 입장에서 보면 상당히 맘 편한 출발점이 된다.


오전이 지나 점심시간이 되어 회사 관계자들과 함께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구내식당의 특성상 본사 건물 내 위치할 뿐 아니라 메뉴도 정해져 있는지라 20분도 안되어 식사가 끝났다. 직원들로 붐비기 전에 약간 일찍 내려간 탓에 식사가 끝나고 다시 중간감사를 진행하던 회의실로 돌아오니 12시가 약간 넘어 있었다.


회의실은 유리로 된 벽이 되어 있는 상태라 같은 층 내 여러 부서가 훤히 보이는 상태였는데, 모든 직원들은 식사를 갔고, 여느 회사와 같이 층 전체의 불은 꺼져있다. (어떤 회사는 외부에서 걸려오는 전화를 받기위해 한두명이 당번(?)을 서기도 하는데, 여기는 업종 특성상 급하게 올 연락이 흔치 않아서인지 모두 식사를 가도록 한 듯 했다.)


그런데, 1시가 다 되어 점심시간이 끝난 때까지 아무도 자리에 돌아오지 않는다. 어? 참고로 이 회사는 공단 중간에 있고 주변에 식당이나 카페가 있는 위치가 아니다. 즉, 모든 직원들은 구내식당을 이용할 수 밖에 없다. 구내식당을 이용한다면 20분도 안되서 식사가 끝날 텐데?? 식사 후엔 어디로 가는 거지? 게다가 공장들이 이어져 있어 주변을 산책을 할 만한 여건도 아닌지라 자연스레 이들의 행방이 궁금해졌다. 


그래서, 오후 일과가 시작되자 마자, 자리로 돌아온 직원들에게 물었다. 


“점심식사 후 어디 다녀오셨어요?”


“아...제 차에...”


“네? 차에 뭘 가지러 가셨다구요?”


“아, 그게 아니라, 그냥 차에 가서 좀 쉬다 왔습니다.”


“엥? 그냥 차 안에 앉아 있었다구요? 뭘 하면서요? 춥진 않구요?”


“시동 걸고 좀 앉아 있으면 그렇게 춥지 않아요. 오히려 여름이 더 불편하죠. 그냥 앉아서 핸드폰도 보고, 피곤하면 낮잠도 자고, 그러죠.”


“그건 사무실 자리에 앉아서도 할 수 있잖아요?”


“뭐 그냥..”


‘혼자 있고 싶어서요’란 말이 생략되었을 것이다.


“둘 셋 씩 모여서 커피를 마시러 밖으로 나가기도 해요. 하지만, 카페가 멀기도 하고, 매일 그러기도 그렇고 해서, 그냥 차에서 쉬죠.”


“아, 네.”


그냥 자기 자리에 앉아서 쉬는 것은 여전히 일을 하고 있는 느낌이기 때문일까? 재밌는 것은 이 대화의 상대는 요즘 모든 문제의 근원(?)인 듯 언급되는 MZ세대가 아니라는 점이다. 


요즘은 뭔가 튀거나 이해되지 않는 행동과 사고를 접하게 되면 버릇처럼 ‘역시 MZ야!’, ‘에이 역시 MZ는 달라!’ 하며 치부하는 게, 스스로 MZ세대가 아니라고 믿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일반적 반응이지만,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MZ세대가 아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 또한 오히려 강한 흥미와 동참하고 싶은 욕구를 느꼈다. 


난 상상했다. 커다란 SUV를 산다. 차박이 가능한 크기의 SUV 말이다. 점심시간이 되면, 잽싸게 구내식당에 내려가 밥을 대략 먹고, 내 차로 향한다. 좌석을 끝까지 눕히면 마치 침대처럼 차 안이 평평하다. 차 안에는 커피포트가 있다. 집에서 가져온 커피 원두를 간 후, 물을 부어 커피를 내린다. 오늘은 약간 신맛이 나는 이디오피아 예가체프다. 차분한 음악을 튼다. 파노라마 썬루프를 통해 맑은 하늘이 보인다. 커피를 마셨지만, 이내 졸음이 온다. 10여분의 살짝쿵 낮잠은 오후 일과의 큰 활력소다. 아, 좋다!!


나 혼자서 이러고 있다면, 내가 이상해 보이겠지만, 내 옆의 동료들 모두 이러고 있다면? 우리 모두 나만의 시간과 공간을 찾아보자. 우린 나홀로 있을 권리가 있다! 업무시간이 아니라면..


편안한 점심시간 그리고 행복한 직장생활 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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