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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a..] 고려아연 경영권분쟁에 대한 단상

기업지배구조와 밸류업을 위한 PEF의 강화된 역할을 바라보며

고려아연의 경영권분쟁이 정말 뜨겁다. 한국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쩐의 전쟁’에 미디어는 연일흥분하며 소식을 전하고 있고, 시시각각 양측의 주장과 반박, 공격과 대응에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고려아연은 세계 1위의 제련 기업이다. 한마디로 좋은 회사다. 필자는 수년 전에 1세대 장병희, 최기호 창업주의 동업과 2세대 최씨 일가의 세 아들 이야기를 들은 후부터 상당한 호감(?)으로 바라봤던 기업인지라 지난 몇 년 간 흘러나오다 결국 폭발하게 된 경영권 분쟁이야기가 조금은 아쉽게 다가왔다. 


영풍측 장씨 일가는 최씨 일가와 경영권 분쟁에서 밀리는 상황이 되자, MBK 파트너스라는 사모펀드를 끌어들여, 공개매수를 통해 충분한 지분을 확보하면 경영권을 넘기겠다는 계약까지 맺었다. 거래 규모 뿐 아니라 이러한 구조마저 한국에선 처음 있는 일 아닌가. 공개매수라는 전쟁을 선포하고, 상대방에 대한 비방에 가까운 폭로로 서로 공격하고 여론전을 펼치고 있는 양측을 보며, 이들의 주장을 좀 더 확인하고 싶어졌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고려아연의 최윤범 회장은 몇가지 실수를 저질렀다. 장씨 일가와 갈라서기로 했다면, 그들의 입장에서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지 예상했어야 했다. 경영권분쟁의 시작과 원인을 찾아 거슬러올라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런 저런 일들을 거치며, ‘이제 동업은 그만하자!’라고 양측은 선언했고, 그 전제하에 각자는 최선의 선택을 모색했다.


(주)영풍, 장씨 일가는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되, 그 경영권을 최씨가 아닌 MBK에게 넘기기로 했고, MBK는 공개매수를 통해 고려아연의 경영권 확보한 후 몇 년간의 기업가치제고를 거쳐, 매각을 도모할 것이다. 당연히 경영권 프리미엄을 포함한 매각일 것이므로 공개매수와 이후 장씨 일가의 지분 추가 취득에 소요될 수조원의 자금보다 훨씬 더 많은 금액을 회수하여 큰 수익을 올릴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최윤범 회장의 선택은 어떨까? 정치적인 이슈화는 차치하고, 사실 그리 선택의 폭이 넓지 않아 보인다. 한화, LG, 현대차 그룹이 우호지분으로 이미 고려아연의 상당한 지분을 확보하고는 있지만, 추가 지분 취득을 해서 최회장의 백기사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이 세 그룹이 최윤범 회장쪽의 우호지분은 맞을까? 이들이 자기주식 맞교환 등으로 취득했던 고려아연의 지분이 최회장과의 친분을 위한 선택이었을까? 그렇기 보다는 신재생 에너지와 수소, 2차 전지소재, 자원순환이라는 고려아연의 신사업 Troika Drive와 이해 관계가 맞았기 때문은 아닐까?


다른 한편, 최회장이 MBK의 공개매수가 보다 높은 가격으로 대항공개매수를 하는 방안은 어떤가? 4천억 기업어음 발행 등의 노력을 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보유한 자금이 부족하다.  괜히 ‘쩐의 전쟁’이라 불리는 것이 아니다. 외국계 펀드에도 접촉하고 있다는 기사가 나오지만, 그럼 MBK를 약탈적 기업사냥꾼이라 부르며 비난하던 자신을 부인하는 셈이 된다.


가장 큰 딜레마는 백기사를 동원해서 경영권을 지키려 하지만, 이를 위해선 경영권을 내놓아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의 사례를 보면 경영권 분쟁 이후엔 주가가 공개매수이전으로 내려갈 가능성이 높은데, 그렇다면 공개매수시의 가격과 이후 주가간 차이는 어떻게 만회할 수 있겠는가? 경영권 프리미엄을 포함한 매각시에나 가능하지 않을까? 장씨 일가는 최씨 쪽에 경영권을 빼앗겼기에 과감하게 MBK에게 이런 기회를 줄 수 있었고, MBK는 받아들였다. 하지만, 수성하고 있는 최회장은 이런 전략을 구사할 수가 없다. 


최윤범 회장의 두번째 실수는 한국 재벌그룹식 경영관행의 답습이 아닐까 싶다. 원아시아파트너스 관련 투자가 대표적이다. 고려아연이 표방하고 있는 트로이카드라이브 투자와는 별 관련도 없는 투자를 수천억씩 했다. 이러한 투자가 고려아연 핵심 기업가치 제고에 어떤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지 이해할 수 없다. 더군다나, 투자는 실패했고, 고려아연은 손실을 계상했다. 기업가치와 주주가치 훼손의 책임은 누가 지나? 


적합한 절차를 거쳐 투자가 집행되었다는 고려아연측의 설명도 미흡하다. 최고경영진을 견제하고 감시해야 할 이사회의 기능이 의문시되어 마땅하다. 이사회의 과반을 사외이사로 구성하고, ESG 의사결정체계를 구축해서 기업지배구조를 고도화했다는 고려아연의 주장이 무색하다. 그런 점에서 MBK측이 주장하는 지배구조의 개선과 경영투명성 확보가 더욱 설득력있게 다가온다.


그나저나, 2004년 우리나라에 사모펀드 제도가 도입되고, 벌써 20년이 지났다. 도약기와 성장기를 거쳐 2020년 이후엔 팬데믹 유동성이 사모펀드 시장의 폭발적 성장을 이끌었다.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2023년말 기관전용 사모집합투자기구는 총 1,126개로 전년말(1,098개) 대비 28개 증가했고, 약정액은 136.4조원, 이행액은 98.9조원(약정액 대비 72.5%)으로 전년말 대비 각각 11.1조원(8.9%↑), 1.8조원(1.9%↑) 증가했다고 한다. 조(兆) 단위 빅딜에 당연스레 PEF 운용사가 주요 플레이어로 등장하는 등 인수합병(M&A) 시장의 큰 손으로서 입지를 굳히고, 당당히 자본시장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되었다.


어느 기관의 분석결과에 따르면, 사모펀드들이 인수한 국내 기업들의 성장성이 전체 기업 평균을 웃돌고, 영업이익증가율 등 수익성도 크게 상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이는 사모펀드들이 보통 5년 안팎의 기간 중에 이익실현을 해야 하는 근본적인 특성에 기인한다. Buyout PEF(Private Equity Fund)의 존재 이유 자체가 기업을 인수하여 경영권을 장악하고, 자산 구조조정 또는 경영 개선을 통해 기업 가치를 상승시킨 후 되팔아 수익을 창출하는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수한 기업의 비효율적 요소를 제거하고, 경영 방식을 최적화하여 기업의 생산성과 수익성을 높이면, 이를 통해 기업의 경쟁력이 강화되고, 장기적으로 주주 가치 상승으로 이어진다. 혁신적인 기술이나 경영 기법을 도입해, 해당 기업이 속한 산업의 전반적인 혁신을 유도할 수도 있다. 


물론 단점도 있다. 보통 5~7년 정도의 단기적인 수익 극대화를 목표로 하기 때문에, 장기적인 경영 관점보다는 비용 절감과 자산 매각에 집중할 수 있고, 이는 기업의 장기 성장 가능성을 저해할 수 있으며, 지나치게 빠른 구조조정은 조직 안정성을 해칠 수도 있다. 인수자금을 위해 레버리지(차입금)를 과도하게 사용하여 해당 기업에 큰 부채 부담을 안길 수 있다. MBK의 고려아연 인수를 반대하는 논리가 바로 이것들이다.


하지만, 이미 M&A 시장을 비롯한 자본시장에서 PEF는 조연이 아닌 주연역할을 꿰찼다. 지난 날 재벌 기업들의 비핵심자산의 전략적 매각이나 구조조정 또는 유동성확보 필요성 차원에서 많은 거래에 조연으로 참여해왔다면, 이제는 경영권 분쟁의 주체로서 핵심역량에 대한 확보와 수익창출의 의지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어쨌거나, 이번 사례는 한국 기업(재벌기업)들의 지배구조가 제3자(PEF)를 통해 개선 당하는(?) 좋은 선례가 될 수 있으리라.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가장 주요한 원인으로 지목되어 왔던 게 후진적이고 불투명한 지배구조와 경영관행이었다. 충분한 지분도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 ‘회장’ 등으로 불리는 ‘오너’와 ‘오너일가’가 소수주주들의 이해에 부합하지 않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의사결정으로 회사를 운영해왔던 관행을 넘어서도록 하는 것이다.


MBK가 스스로를 ‘행동주의 펀드’라고 지칭하는 것만큼이나 ‘약탈적 기업사냥꾼’이라는 말이 어색한 이유다. 이 싸움의 승패뿐 아니라 이후의 전개가 기다려진다.


사족 한가지..


정치권인지 어느 지방자치단체에서 국민기업인 고려아연을 지키자며 고려아연 한주 갖기 운동을 한다는 기사를 봤다. 과거 사례를 보면, 경영권 분쟁이 끝나면 이전 주가수준으로 회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자, 생각해보자. 고려아연을 지키자며 주식을 현재 시가인 70만원에 샀다치자. 누구의 승리로 끝나든 경영권분쟁은 끝날 것이고, 주가는 다시 분쟁 이전 수준인 50만원으로 내려갈 가능성이 높다. 그럼, 평가손익 20만원은 누가 보전해줄까?


물론, 필자는 세계 1위 제련기업인 고려아연의 주가가 언젠가는 100만원도 넘어서리라 믿는다. 하지만, 국채보상운동이나 전국민 금 모으기 운동 같은 발상은 이제 그만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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