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랑받고 존중받길 원한다. 그 사랑과 존중에는, 내가 중요시하는 핵심 가치를 인정받고 내가 힘들 때 위로받고, 내가 살아있다는 그 팔딱팔딱한 느낌을 상대와 공유하고자 하는 진한 욕구가 자리 잡고 있다.
해준과 서래가 서로에게서 발견한 것은 살아있다는 생생함이었다. 불면증에 시달리던 해준을 잠들게 한 서래가 있었고, 다른 남자들과는 다르게 품격 있게 다가와준 해준이 있었다. 남에게는 (심지어 배우자에게도) 사소함이지만 나에게는 귀중한 마음을 어루만져준 서로를, 둘은 쉽게 떨쳐낼 수 없었다. 그/녀를 만나기 전의 내가 절반만 살고 있었다면, 그/녀를 만난 후의 나는 온 생을 살아내게 되었으니.
그렇게 해준은 스스로 소중히 여기는 직업정신을 붕괴시키면서도 사랑의 마음으로 수사를 종료하였고, 서래는 그를 다시 살아가게 하기 위해 그에게 다가왔다. 그러나 붕괴되기 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라고 폰을 전한 서래의 사랑은 진심이었지만, 미종결 사건으로 본인을 영원히 기억하기를 바라는 서래의 마음의 밑바닥에는 자신의 욕구에 뿌리내린 이기적인 사랑이 있었다.
그렇게 나는 서래의 사랑에 눈물이 울컥하다가도 그녀의 이기심에 마음이 차가워졌다. 현실에서 헤어질 결심을 서래처럼 옮길 수 없는 이유는, 상대를 위한 궁극적인 배려와 사랑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각자의 일차적인 욕구에도 불구하고, 상대와 그 욕구를 끊임없이 조율해 나가며 생을 살아나가는 위대한 존재이기에.
지난밤 나는, 세월의 익숙함 속으로 밀어 넣었던 그와 나란히 앉아 새롭게 만난 사람처럼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가 언제부터 이렇게 싸웠지?" 우리의 싸움이 익숙함이 되지 않고, 우리의 사랑도 진부함이 되지 않기를. 그렇게 자유롭게 모험을 떠났던 우리가 그 수년의 시간이 흐른 후에도 서로에게 생동감이 넘치는 존재라는 것을 확인하면서, 나는 안도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