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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nna Nov 06. 2022

팀장으로 불리지 않는 시간

토요일 오전이 즐거웠던 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바쁘게 팀장으로 뛰어다니던 날, 아무도 그렇게 찾지 않는단 거였다. 3학년이 되면 어떤 과목이 새로 들어오고 아이들은 요새 뭘 배우는지에 대해 엄마들의 세계에서 한참 뒤처져도 당당했던 건, 재능 많은 첫째 덕이기도 했다. 사교성이 좋아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고, 자기 존중감이 높은 아이의 엄마가 되는 건, 내게 당당해도 되는 자리를 선물했다. ○○ 친구인데 주말에 만날까요? ○○ 친구인데 생일파티 올 수 있어요? 그렇게 인기많은 ○○에게 기대어 또래 엄마들과 어울리며 팀장으로 불리지 않는 첫째의 엄마가 되는 시간은, 내게 새로운 공간과 시간을 선물해 주었다.


일요일 오전이 내게 소중한 건 좋아하는 책을 실컷 읽고 나만의 글을 쓰고, 역할의 스위치를 끌 수 있어서였다. 일 이야기를 해도 해도 끊임없는 스타트업의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의 시간이 지나가고, 아이들의 엄마가 되고 아이들의 성장을 따라가기에 급급한 토요일의 시간이 지나가고 나서, 내 이름으로 온전할 수 있는 나만의 시간이 일요일 오전에 주어졌다. 아니, 주어졌다기보다 그런 시간이 없다면 번아웃이 올 것 같아 그 소중한 시간을 내게 내어 주기 시작했다.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에서 민철 엄마는 희주라는 자신의 이름으로 독서 클럽을 진행하기 시작하면서 만나면 늘 남편 얘기, 자식 얘기만 하던 엄마들과 비로소 자기 자신의 삶을 투박하고도 진솔하게 꺼내놓기 시작한다. 그리고 희주는 그날 밤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 ○○ 팀장의 스위치를 끄고 다시 ○○ 엄마로의 스위치를 끄는 시간이 필요한 내게, 그 문장이 다가와 주었다.


일요일 오전에 자전거를 타면서도 사실 내 머릿속은 늘 맴돌고 있었다. "우리 이건 이렇게 해결해요" 그렇게 번뜩 slack에 써서 이슈를 해결하고,  teams를 통해 미팅을 소집할 어젠다를. 그렇게 머릿속에 가득 찬 일거리들을 지우고,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같은 책들에 푹 빠지는 시간이 나에게는 숨통 트이는 시간이다.


그렇게 숨통이 트이면 다시 자발적으로 일터의 세계로 돌아가도 허덕대지 않는다. 승우가 휴남동 서점까지 오면서 느꼈던 그 기분, 내게는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시간이 여행지에서 모르는 길을 걸을 때의 기분이었다. 골목골목을 기웃기웃하며 목적지를 향해 걸어가는 기분, 낯설어서, 모르겠어서 설레는 기분, 이런 기분을 느끼려고 사람들은 낯선 곳으로 여행을 간다면, 나는 그렇게 설레는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지내는 곳으로 스타트업을 선택했다.


스타트업에 겨울이 오면서 직원의 절반 이상을 구조조정한 어느 CEO의 글을 읽었다. 불확실성이라는 혹독함을 버텨나가고 있는 많은 CEO와 그와 함께 도전에 나선 동료들이, 각자 자기의 템포와 리듬에 맞춰 지치지 않는 시간을 만들어 나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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