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리어에서 좋은 프로젝트를 맡고 그 프로젝트를 바탕으로 성공의 가도를 타는 것은 그렇게 크게 어렵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바쁘게 뛰어다니며 필요한 정보를 맞는 사람들로부터 수집하고 그를 바탕으로 데이터를 분석하여 최선의 의사결정을 끌어내는 것은, 사회성과 충실함으로 상당 부분 커버가 되기 때문이다.
더 어려운 것은 잘 되지 않는 프로젝트를 턴어라운드 시키거나,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는 조직의 문제들을 다룰 때였다. 나의 범위를 넘어서는 이슈에 대해 문제 제기하고, 치열하게 풀려는 노력을 했던 시기가 있었다. 단추를 잘못 꿴 사람은 내가 아니었지만, 남들이 저지른 것들을 바로잡아 조직의 스트레스 레벨을 낮춰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문제는 나도 그 부정적인 환경에서 상당한 내상을 입었다는 것이다. 심각하게 겪고 보니, 이미 저질러 놓아 바로잡기가 힘들고 교착상태에서 진전이 없는 문제에 대해서는 멀리하거나 외면하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추진하거나 내 영향력으로 컨트롤이 가능한 영역으로 뛰어드는 경향이 생겼다. 그 편이 지치지 않고 동기부여와 추진력을 유지할 수 있는 길이었다.
그런데 그런 잘 풀리지 않는 프로젝트에 자원해 뛰어드는 리더십도 있다는 걸 알고, 나의 지난날이 소환되었다. 잘 풀리지 않는 프로젝트가 힘든 것은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 있거나 이미 첫 단추를 잘못 꿰어 한참 잘못된 방향으로 저질러 놨는데, 이제라도 방향을 제대로 잡아 해결하는 게 조직의 미래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다만 잘 풀리지 않는 과정에서 많은 이들의 리소스가 소요되었고 여전히 이해관계가 얽혀 있을 수 있기에 건드리기에 민감하게 된다. 그런 문제를 나의 영향력 밖으로 정의하고 외면하는 것은 자연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그럼 그건 누가 해결할 수 있을까.
나는 그럼 과거에 충분히 용감하지 않았던 건 아닐까. 그 당시에는 더 이상 그런 희생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더 확실한 희생을 하고 더 확실한 요구를 해 볼 수도 있지 않았을까. 어차피 어딜 가든 일 잘하는 사람이라 그 기간 동안 잃을 건 얼마 되지 않을 텐데, 그럼 끝까지 가면서 원하는 환경을 만들어내거나 조직에 요구하는 것도 내가 만들어낼 수 있는 영향력이 아닐까.
자극을 받으면 용기를 내게 된다. 그러면 새로운 경험을 하고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예를 들어 조직의 구성이나 조직문화 또는 어떤 민감한 아젠다에 목소리를 내는 것이 조직 내의 정치가 아닌 조직의 발전을 위한 시도로 이해받는다는 걸. 되든 안되든 밑져야 본전이라면, 원하는 것을 요구하고 제안할 수 있는 힘, 이것도 내게는 아직 연습이 필요한 부분이라는 것도. 내게 부족했던 새로운 리더십을 시도하는 것이 긴장되면서도, 알을 깨는 과정처럼 설레고 신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