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이 펑펑 쏟아진다. 나는 지금 목련 나무 길을 지나고 있다.
눈송이들이 목련꽃 같다는 생각을 잠시 한다. 지난봄 이 길을 걸을 때가 떠오른다. 그날은 참 희한한 날이었다. 어디선가 알 수 없는 꽃향기가 풍기고 목련 꽃들은 바람에 하늘거리고 눈앞으로 무슨 희맑은 아지랑이 같은 물체가 너울너울 날아왔다. 내 몸은 공중에 붕 떴다. 다시 보니 눈앞엔 아무것도 없고 나도 그냥 길을 걷고 있을 뿐이었다. 아지랑이 같고 흰 구름 같은 그것은 사실 물체가 아니라 내 마음의 행복감이었다. 나는 어떤 기분 좋은 마음이 희부옇게 아지랑이처럼 눈앞으로 내 몸속으로 날아오는 듯한 착각에 사로잡혔던 것이다.
그때 나는 스물아홉, 시골 고등학교의 선생님이었다.
도끼 빗 하나씩을 뒷주머니에 꽂고 다니는 꼴통들과 매일 전쟁을 치르듯 서툰 교사생활을 하고 있었다. 같은 학교 선생님의 소개로 얼굴이 뽀얗고, 웃으면 보조개가 패는 관내의 초등학교 여선생님을 만나고 있기도 했다.
남에게 싫은 소리를 하지 못하는 나와는 반대로 내가 하는 모든 말에 빈정대듯 시비를 걸듯 통통거리며 대거리를 하는 그녀가 왠지 너무 좋았다.
눈이 내린 밤이었다. 초저녁 무렵 도둑고양이처럼 그녀의 자취방에 스며든 나는 자정이 넘어서야 그 방을 나왔다. 그 집의 대문은 잠겨 있고... 나는 담을 넘기로 했다.
막 담 위에 올라서 뛰어내릴 자리를 살피는 순간,
“거 누구요?”
굵직한 남자의 목소리가 뒤통수를 때렸다.
부리나케 뛰어내린 뒤 뒤도 보지 않고 냅다 골목길을 돌아서 달렸다.
따라오는 기척은 없었다. 한참 뒤에야 내려다보니 달그림자가 두근거리는 내 마음과 함께 걷고 있었다.
끓는 혈기가 몸과 마음을 지배하던 시절이었다.
하루를 마감하며 잠자리에 누울 때도 우리의 삶은 수많은 걱정거리로 둘러싸여 있다. 그러나 내일은 오늘보다 나은 삶이 어쩌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돌이켜보면 우리의 신산한 삶 속에도 하나둘 눈을 반짝이는 행복했던 일들이 있었다. 잠자리에서는 우리를 행복한 수면으로 이끌고 들어갈 그런 일들을 떠올려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