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능 엔터테이너.
처음엔 참 듣기 좋은 달콤한 말이었다.
그저 그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내가 쓸모 있는 사람이구나,
능력을 인정받았구나. 하는 생각에 속으로도 많은 보람을 느끼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는 점차 버거워짐을 느낀다.
거절보다는 승낙하는 법에 특화되어 있는 내게 일도 사람도 그저 웃고 헛기침 한번 하다 보면 물밀듯이 밀려와 있었다.
인정의 삶에 취해있던 과거와 달리 요즈음은 적당한 거절의 삶을 동경한다.
요즈음 인문학 베스트셀러인 <세이노의 가르침>을 읽고 있는데 책 제목부터 거세게 끌렸다. 세이노, 아니라고 말하는 건 그저 무턱대고 거절하는 게 아니라 몸소 체득한 이유 있는 거절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의 당당함과 뼈를 때리는 꾸지람에 절로 시원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거절을 못하고 다 끌어오는 성격의 나였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결혼 전에는 오히려 그게 내 에너지의 기폭제가 되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어찌 그걸 다 해냈을까 싶다.
낮엔 회사 밤에는 대학원.
매일 6시에 퇴근하고 7시부터 10시까지 그렇게 2년을 결석 한번 없이 수료했다. 집에 들어오면 11시 반을 훌쩍 넘기는데도 그 하루를 의미 있게 보냈다는 뿌듯함에 취해 잠들곤 했다.
평소 노래를 즐겨 불렀기에 직장인밴드에 가입해서 주기적으로 만나 연습하고 가끔 공연도 참여했다. 그래도 지치기는커녕 공연이 다가오면 그 꿈틀거리는 긴장과 열정 사이에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나니 챙겨야 할 가족과 행사들이 늘어났다. 아이도 태어나 주변의 도움 없이 일과 육아를 온전히 책임져야 했다. 그렇게 또 다른 행복의 퍼즐 조각을 끼워 맞추면서 언젠가부터 나를 우선하기보다 가족을 우선하는 삶에 길들여졌다.
친정 부모님은 지방에 계시고 시댁 어른들은 일흔이 훌쩍 넘으신 나이에 건강도 좋지 않으셔서 급할 때 아이를 부탁드릴 상황이 쉽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하는 엄마, 능력 있는 엄마로 인정받고자 사방팔방 뛰어다니며 부단히 애를 썼다.
그런 나에게도 슬럼프가 찾아온 것일까.
계속해서 일은 늘어나고 아이의 말대꾸도 늘어갈 즈음
문득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먹고 싶은 것, 내가 입고 싶은 것.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가고 싶은 곳.
그저 선택하면 그만인데 그마저도 어색하고, 내 선택이 미칠 영향을 미리 생각해 포기하게 되는 그 순간 문득 결혼 전의 내가 그리워졌다.
새롭게 채워진 현실을 인정하고 계속해서 채워나가겠지만 가끔 본연의 내가 그리워질 때 한 번씩 나를 찾을 여유가 필요할 것 같다.
누군가 기가 막힌 방법을 안다면 알려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