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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리메이쩡 Oct 23. 2023

결혼기념일, 남편이 가출했다


딱 일 년 만이다. 그 일이 있은지...

일 년 전 결혼기념일.


특별할 것 없는 일상 속에서도 크게 의미 부여하면서 들썩들썩하는 여러 날 중 하나가 아닐까.


아이가 태어나고 그 특별한 날은 또 다른 특별함으로 다가왔다. 둘이 아닌 셋이라는 비로소 가정이 이루어진 것 같은 특별함은 평범한 하루 그 어떤 이의 하루보다 값지고 소중하게 느끼도록 해주었다. 


오늘 저녁은 어떤 케이크를 사야 하나 행복한 고민을 하며 밀린 오후 업무에도 들떠있는 내게 순간 '카톡'하고 소리가 울렸다. 


바로 남편에게 온 장문의 문자였다. 

그동안 밤낮으로 열심히 일하고 있는 줄 굳게 믿고 있었던 아니 믿고 싶었던 그의 뒤늦은 고백이 이어졌다.


그간 여러 일이 있었지만 꾸준히 일을 하고 있는 줄만 알았는데, 여러 가지 사정으로 입사했다 그만두다를 반복하면서 방황을 했고, 나에겐 차마 말하지 못하고 시간이 흘렀다고 했다... 늘 면접만 봤다 하면 성공률 90 이상으로 그 성실함과 능력을 인정받던 그였던 터라 더욱 충격이었다.


누구보다 성실한 그에게 그간 어떤 일이 있었는지 이 문자 하나로 알아야 하는 내가 정말 비참하게 느껴졌다.

매일 아침저녁 짧지만 눈을 맞추고 하루의 노고를 서로를 다독이며 이겨내고 있다고 생각한 건 혼자만의 착각이었구나. 가슴이 철렁한다는 게 이런 거구나.

손발은 차갑고 머리는 어지럽고 가슴은 쿵쾅대고 신체의 모든 장기가 따로 노는 느낌이었다.


그간 직장은 여럿 바뀌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실하고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보냈다는 걸 그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한 나였기에 그 하루하루가 거짓 같은 신기루였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전적이 있기에 내가 믿을 수 있도록 출근하면 인증사진을 매일아침 보내주던 사람이었는데 나를 안심시키고자 거짓으로 찍은 사진이었다.

매일 저녁 그의 작업 셔츠를 다려주었던 내 존재마저 부정당하는 느낌이었다.


여러 해 동안 마음을 다친 나와 우리 가정을 지키고자 나는 더 믿게 해달라고 외치고 있었는데 그럴수록 더 열심히 더 성실하게 거짓말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장이라는 무게를 어떻게 짊어져야 할지 버거운 그에게 녹록지 않은 현실의 벽이 나타나니 이를 깨부수기보다는 잠시 피해 가고 싶었던 것일까. 하루 이틀 하루가 지나고 반복되면서 자신조차 그 거짓의 무게가 두려운 나머지 그 역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자신을 계속 자책하며 갉아먹고 있었고 아무렇지 않은 일상을 연명하기 위해 빚까지 내어 평범한 월급인 양 나를 안심시켰던 것이다.


여섯 번째 결혼기념일.

그는 그렇게 철부지 아들이 자신의 잘못을 회고하듯 장문의 문자하나만 남긴 채 가출을 했다.


'이거 설마 반전 이벤트인가?'


너무도 어이없는 나머지 서프라이즈를 위한 서막인가. 나중에 반전으로 꽃다발과 함께 짜잔 하고 나타나는 거 아닐까? 별별생각이 다 들었다

 

하지만 그건 현실이었다.

결혼기념일에 폭탄을 안겨주고 가출한 남편이라니

그 즐겨보던 막장 드라마에서도 만난 적 없던 리얼리티 앞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나는 그저 멍하니 앉아 눈앞에 쌓여만 가는 업무메일을 보며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희미해진 노트북 화면조차 이제 보이지 않을 정도로 서럽게 울음을 토해낸 나는 겨우 정신을 찾아 아이를 하원시키기 위해 외투를 걸치고 나섰다.


벌건 눈으로 걷는 길가는 매일을 마주한 곳이었지만 처음 가는 길처럼 느껴졌다. 발은 마치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내가 이곳을 걷고 있는지 바람이 나를 떠밀고 있는지 모든 감각이 무뎌진 것 같았다. 아이를 만나 손을 꼭 잡고는 집에 돌아와 아이를 안고 한참을 울었다.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엄마의 눈물이 싫었는지 아이는 평소보다 더 밝게 웃고 장난치고 있었다. 욕하면서 본 드라마의 주인공이라도 된 것처럼 가상과 현실 그 어디쯤에서 마음 둘 곳 없이 나는 그렇게 철저히 외롭고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는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도 소식이 없었다. 보통 사고를 쳐도 하루 뒤면 들어오고 했던 사람인데 3일이 지나자 미움은 슬슬 걱정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혹시, 설마 아닐 거야... 그것도 큰 용기가 필요한데

그런 용기는 없을 거야 내가 아는 그러면 분명히,..'


현실이 무서워 도망쳤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누구보다 가족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은 알기에 그런 극단적인 마음은 먹지 않았을 거야.라고 생각하면서 종일을 베란다에 서서 보이지도 않는 그의 그림자를 쫓고 있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 나타난 그의 몰골은 정말 말이 아니었다. 나라면 그저 솔직하게 힘든 상황을 이야기했을 텐데. 가족이 없는 것도 아니고 터놓고 이야기하고 서로 다독이며 방법을 찾으려 노력할 수 있었을 텐데. 그는 실망하는 내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어서 괜찮은 일자리를 찾으면 금방 괜찮아지겠지 하고 생각했다고 한다. 맘처럼 안되자 하루이틀 시간이 지나고 자신도 그 거짓의 결과에 책임지기 두려워 하루하루를 거짓으로 회피하던 것이 결국 눈덩이가 되어 굴러온 것이다.


나를 안심시키려고 매일을 같은 시간에 출근 인증사진을 찍어오고, 점심시간이라며 체하지 않게 밥 먹으라고 세심하게 안부문자를 건네오고 밤늦게까지 일하며 퇴근 문자를 늘 알람처럼 보내오던 사람. 그렇게 다정하고 세심하고 성실한 사람이 그 누구보다 성실하게 거짓말을 하고 있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렇게 꼭 일 년이 지났다.


겉으로 괜찮은 척 보내온 시간들이지만 사람의 기억이란 왜 그리 잔혹한지 잊고 싶어도 가끔 찌릿하다. 머리로는 아무리 잊으려 노력해도 내 몸이 그 불안을 기억한다.


지금은 그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고 있는 그의 땀을 보면서 저게 진짜 땀일까 아니면 물일까 어이없는 의심을 하는 나를 보면서 안쓰럽기도 하다. 이래서 부부간의 신뢰란 이토록 중요하구나 라는 당연한 사실을 꼭 경험하고 나서야 뼈저리게 알게 되는 이 기가 막힌 현실 앞에 난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이후 우리 집의 가훈은 '거짓말을 하지 말자'가 되었다.

아이가 한번 장난으로 거짓말을 쳤다가 나에게 된통 혼이 났다. 거짓말로 가족을 잃을뻔한 우리였기에 돈보다 더 중요한 게 신뢰임을 그 누구보다 뼈저리게 경험했다고 생각한다.


내 마음속 미움의 크기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크지만, 가족의 크기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크다는 것을 알았다. 누군가는 행복해지려고 포기를 선택하지만 나는 행복해지려고 용서를 선택했다.


아직 남은 인생이 너무나 길기에 그 성실한 거짓말이 성실한 책임감으로 여물어가는 길을 아이와 함께 응원해주려고 한다. 무언가 하지 않아도 그 존재만으로 소중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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