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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리메이쩡 Nov 05. 2023

짜장면을 시키고 짜장라면을 끓였다.


요즈음 외식비 좀 아껴보자고 열심히 집밥을 해 먹었다.

줄어드는 외식비만큼 쌓일 줄 알았던 돈은 신기하게도 생각지도 못한 지출이 생기며 고만고만하게 맞추어졌다.


일주일을 부지런히 해 먹었건만 하루종일 주말 독박 육아로 고단한 몸을 이끌고 오늘은 도저히 밥을 차릴 엄두가 나지 않았다.마음 한편에 귀차니즘이 발동하기도 한 탓이겠지만.


아이에게 먹고 싶은 걸 물어보니 짜장면이라고 했다.

그래, 배달로 오랜만에 짜장면 좀 시켜볼까?

오랜만에 시키는 거니 탕수육도 세트로 시켜봐야지~

쌈짓돈을 풀어놓는 것처럼 오랜만에 돈을 써 외식을 하니 새삼 기분도 좋았다. 역시 사람은 쓰면서 살아야 돼!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처럼 아이도 들떴는지 짜슐라~ 짜슐라~ 하면서 연신 기분이 업 되어 있었다. 그런 아이를 보니 나까지 기분이 업되면서 초인종이 울리기만을 기다렸다.


띵동.


그 누구보다 빠르게 뛰쳐나가 노란 비닐봉지를 들고 들어왔다. 그런데 그때부터였다. 생각지도 못한 아이의 울음소리가 투정과 함께 새어 나왔다.


"왜 그래? 짜장면 왔잖아! 네가 먹고 싶대서 시켰는데?"

"엄마, 이거 말고 내가 짜슐라 짜슐라 라고 했는데,

  이게 아니잖아요 으앙~~"


요즘 들어 말대꾸와 투정이 늘긴 했지만 이 상황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짜장면 먹고 싶대서 오랜만에 맘먹고 시켰더니 이게 무슨 일이지?


처음엔 진정하라며 무슨 까닭인지를 묻고 이해하려 했지만 명확한 설명도 없이 계속해서 칭얼거리고 울고 있는 아이. 네가 먹고 싶을 때 먹으라며 으름장을 놓고는 혼자 먹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계속 생각했다. 도대체 짜슐라는 뭐지? 분명 짜장면이라고 했는데...


그런데 순간 머릿속을 스치는 상표하나.

수납장 라면 보관함에 우두커니 하나 놓여있는 검은색 라면봉지. 그 이름 짜슐랭이 번뜩 떠올랐다.


하... 그 짜슐라가 짜장 라면...이었다니...


예전에 아빠가 끓여준 게 그렇게 맛이 있었다나.. 곧 죽어도 짜장면은 안 먹겠단다. 버릇도 고칠겸 계속 버텨볼까 하다가 탄식 한번 내뱉고 마지막 하나 남은 짜장라면을 끓였다.


"엄마, 이거야 이거. 맛있어요~ 호호 불어 먹어야지~!"


엄마의 설렘과 그렇지 못한 지출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그 누구보다 행복해하며 짜장라면을 싹싹 비운다. 하하...


그래, 나라도 맛있게 먹었으면 됐지.

오랜만에 나를 위해 거하게 외식했네~


이래서 소통은 중요하구나.

다시 한번 깨닫는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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