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메리메이쩡 Jun 28. 2024

내 옷을 빼고 아이옷을 담았다


옷을 자주 사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생각해 보면 한 달에 한 번은 쇼핑을 했던 것 같다. 그마저도 기억이 가물가물 한 것을 보니 정말 오래되었구나.


'사람은 외적인 것보다도 내실이 더 있어야 돼.'


라고 말은 하면서도 예쁜 옷을 사고 손에 받을 날만 세고 있는 나를 보면서 여자의 욕망은 어쩔 수 없구나 싶었다. 아이가 없을 때까지만 해도 쇼핑에 실패해도 그렇게 짜증 나지 않았고 성공하면 어서 빨리 입고 싶어 일찍 잠들기도 했었다.


그렇다고 옷을 자주살 여유는 없었다.

그러니 한 달에 한번 통장에 돈이 척 꽂히는 월급날만 되면 열심히 일한 보상이란 명분으로 당당하게 쇼핑을 했다.

비싼 게 아니라도 이미 장바구니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었거나 그즈음 확 꽂힌 옷이 있으면 적당한 가격을 비교해 보고 최종 선택했다. 옷을 고를 때는 설레고. 맘에 드는 것을 발견하면 즐겁고, 결제까지 끝나면 비로소 행복했다.


그러다가 오랜 재택근무로  옷을 살 필요가 없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옷을 사지 않게 되었다. 그래도 돈도 아끼고 옷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 좋았다.

하지만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 거의 매일을 출근을 해야 하다 보니 옷장에 비상이 생겼다. 늘 같은 것만 입을 수 없기에 나름의 전략으로 비슷하지만 조금은 다른 매칭 전략으로 요리조리 바꾸어가며 반년을 보냈다.


계절이 바뀌고 닳고 해진 옷, 안 입는 옷을 정리하니 옷장이 더 휑해졌다. '그래 아끼는 것도 좋지만 필요하니 하나 사자!' 하고 실로 오랜만에 쇼핑몰앱에 접속했다.

고르고 고르다가 적당한 가격의 블라우스를 장바구니에 담았다. 그렇게 하루 이틀 더 들어가 보고 다른 것으로 바꾸어도 보고, 이미 가지고 있는 옷과 이리저리 매치도 해보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예전처럼 결정이 쉽지 않았다.


'그렇다면 내가 진정으로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닌 거야.

그래 충동적으로 행동하지 말고 시간이 조금 더 지나고 그래도 사고 싶으면 사자.'


나 자신을 안심시키듯 그렇게 체류하던 공간을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그러다가 우연찮게 아이 여름옷 광고를 보았다.


'그래, 요즘 가뜩이나 땀도 많은데 옷이 많을수록 좋지.

세탁기를 못 돌리는 날도 있으니 바지는 1개 더 있어야지.

옷이 좀 작아진 것 같으니까 필요할 것 같은데.'


순식간에 이런저런 생각들이 스치더니

나도 모르게 결제를 누르고 있었다.

결제 완료의 절차가 끝나는 찰나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몇 날 며칠을 고민한 내 옷은 결국 포기하고

방금 반짝하고 뜬 아이 옷은 큰 고민 없이 결제하다니...'


내가 엄마는 엄마구나! 하고 시큰한 웃음을 지으면서도

여자로서 조금 더 내지 못한 용기에 씁쓸하기도 했다.


그래도 아이가 좋아할까 어울릴까 설레며 기다리는 내 모습을 보니 꼭 내 것을 사지 않아도 이 또한 행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미지출처:픽사베이>

매거진의 이전글 맥모닝보다 모닝산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