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삶은 질문

차는 못 사드려도 약은 사 드릴게

그게 평생이면 좋겠어

by 메이쩡


" 딸~ 엄마 약 다 떨어져 가~ 한 3일 치 남았나?"

" 응~ 엄마 알겠어~ 잊어버리기 전에 바로 주문할게~!"


엄마의 전화다.

언제부터인가 부모님의 약 담당은 내가 되었다.


건강에 철두철미한 아빠는 한눈에 많아 보이는 약을 종류별로 잘 챙겨 드신다. 오메가나 비타민은 기본이고 관절, 탈모 등 그 종류도 다양하다. 이런 아빠 덕분에 엄마 역시 약은 잊지 않고 잘 챙겨 드시곤 한다.


요즘 좋은 약들이 많이 쏟아져 나오지만 나이가 있는 우리 부모님에겐 인터넷 주문은 그리 쉽지 않았다.

어느 날 보니 아빠가 홈쇼핑 VIP가 되어 있었다.

몸에 좋다는 약이 대량으로 그것도 싸게 전화 한 통이면 해결되니 부모님에겐 그 많은 양보다 싸고 편리한 장점이 더 눈에 띄었을 것이다. (난 사실 싼 것도 잘 모르겠지만)


과거 네 식구가 살아도 충분했던 집은 두 명이 나갔어도 각종 짐들 때문에 전혀 넓어 보이지 않았다.

얼마 전 출산한 동생은 결혼 전까지 비교적 부모님과 오래 살았는데 몸과 마음은 독립했을지언정 자신의 짐은 맡겨놓기라도 한 듯 두고 나갔다. 제발 짐 좀 가져가라는 부모님도 이젠 지치셨는지 그러려니 하셨고 언니인 나의 핀잔에도 꿈적 않는 동생이 괜스레 얄미웠다.


그렇게 좁아진 방에 밀려든 홈쇼핑 상자들까지 더해지니 집은 그야말로 발 디딜 곳이 없어졌고 오랜만에 찾은 친정은 나에게 쉼이 있는 곳이 아닌 일거리가 있는 곳이 되었다.

하지만 맏이인 나는 몸이 내 숙명을 기억하는지 자연스럽게 쌓인 짐을 풀고 정리하고 치운다.

몸은 힘들지언정 깨끗하고 정리된 방을 보면 부모님을 위해 무언가를 한 것 같아서 보람되고 기분이 좋다.


부모님께 홈쇼핑으로 이렇게 많이 사시지 말고 필요한 약이 있으면 인터넷으로 찾아보고 비교해 보고 주문해 드리겠다고 했다. 부모님 역시 점차 비좁아진 방을 의식하셨는지 알았다고 하셨고 그때부터 자연스레 부모님의 약 담당이 된 것이다.


그 이후로 부모님은 필요한 약이 있으실 때마다 내게 전화를 하셨다. 텔레비전을 보다가 의사가 좋다고 하거나 주변 지인에게 강력 추천을 받거나 하면 어김없이 내게 말씀하셨다.

사실 주문해 달라는 말이셨지만 부모님도 머쓱하셨는지 어느 날은 약이 왜 좋은지 그 효능까지 자세하게도 이야기하셨다.


육아에 바쁘고 정신없는 때는 귀 기울여 듣지 않을 때도 있고 주머니 잔고가 여의치 않으면 부담이 되기도 했다.

왜 약은 내가 책임지겠다며 호언장담을 했을까 살짝 후회하기도 했으니까.


그 누구보다 성실한 부모님은 두 분 모두 정년퇴임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일을 하신다. 거기다 아빠는 연금까지 받으시니 직접 여쭤보지는 않았지만 어쩜 우리보다 가정경제가 더 나으실지도 모른다.

솔직한 심정으로 내가 이렇게 나서면 우리 가정에도 조금은 부담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때 띵동 하고 문자가 울린다.

아빠 이름으로 내게 약값을 부쳐주신 거다.


" 아빠가 집접 약을 사보려고 했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어떻게 주문해야 하는지 모르겠네. 딸 대신 좀 주문해 줘. "


그 순간 잠시나마 그런 생각을 했던 나 자신에 대한 자괴감과 자식에게 부담주기 싫었던 아빠의 마음이 느껴져 울컥했다.

속으로는 앞으로 돈 부쳐주지 마 이런 건 딸이 책임질 수 있어하고 싶었지만 실제로 입 밖으로 쉬이 나오지 않는 알 수 없는 감정과 행동에 사로잡혔다. 부모님 약 값을 잠시나마 부담으로 느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때 마음먹었다. 이건 어쩌면 기회 수 있다고.

자식에게 부담이 갈까 자식이 걱정할까 싫은 소리 불편한 내색조차 꺼리는 부모님이 저 어디가 불편한지 자식에게 이야기해 주시는 건 어쩌면 부모님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기회라고 말이다.


멀리 있어 곁에서 잘 챙겨드릴 수도 없으니 이렇게 평소에 운동과 약을 잘 챙기시는 부모님을 보면 늘 감사한 마음이 든다. 거기다 부모님이 불편한 곳 필요한 곳을 먼저 이야기해 주시니 물론 염려는 되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놓인다.


' 그래, 약 그래봤자 얼마나 한다고.

내가 조금 더 아껴 생활하면 되지.

부모님 부담 안 가지시게 자연스럽게 하자!'


어렸을 때 크면 아빠 새 차 사드리겠다 호언장담 하곤 했는데 비록 그 약속은 못 지켰지만 부모님 살아 계실 때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부모님 가려운 곳 아픈 곳은 살피고 긁어드려야겠노라고 다짐해 본다.


아직 늦지 않았음에 감사하며

내가 해드릴 수 있는 게 있음에 더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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