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티브이를 보다가 한눈에 봐도 어린아이가 간드러지게 트로트를 부르는 장면이 나왔다.
동요가 아닌 트로트를 부르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생경해 한참을 넋 놓고 바라봤다.
아 정말 시대가 바뀌었구나.
이제 트롯은 으른들만의 노래가 아니구나.
자연스럽게 나의 과거를 소환했다.
칼단발을 한 중학생의 내가 교실 한가운데 서있었다.
그리고 친구들 앞에서 트로트를 부르고 있었다.
학창 시절~(꺾고)에~ 함(힘주고)께 추었뜬~~
우와~~ 잘한다 잘한다. 한번 더 해줘~
그 당시 내가 부른 노래는 바로 사랑의 트위스트다.
정확한 시점은 기억나지 않지만 주변에 모여든 친구들
그리고 웃음소리로 가득 찼던 그 교실의 온도는 이상하리만큼 여전히 생생하다.
그날 이후 내 공식 특기(?)는 트로트가 되었다.
학교에서 하는 장기자랑이나 행사가 있으면 무조건 명단에 올랐다. 남 앞에서 자신 있게 말하고 노래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만은 적어도 나는 아니었다. 그런 내가 한두 명도 아닌 수백 명의 사람 앞에 서서 노래까지 한다는 건 그전까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누군가에게 주목을 받는다는 것도, 누군가에게 잘 보이고 싶어 욕심이 나는 것도 그리고 많은 관심에 행복하다는 감정을 느낀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다.
트로트와의 인연은 대체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부모님은 내가 어렸을 때부터 두 분 모두 일을 하셨고, 매일 아침 아빠는 나와 동생의 등교를 책임지셨다. 그때 당시는 아직 차가 없었기에 아빠의 오토바이는 우리의 세 사람의 발이 돼주었다. 여름이면 따뜻한 바람도 시원했지만 겨울이면 사각사각 얼어 버리는 머리카락에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매일 아침 온몸으로 사계절을 느끼던 어느 날 아빠가 드디어 차를 사셨다. 가만히 생각해 보건대 아마 그때부터인 것 같다. 트로트와의 인연이 시작된 것이.
아빠는 지금도 휴대폰에 트로트 메들리를 저장해 두고 다니시지만 그때도 역시 트로트를 좋아하셨다.
아빠는 차를 사서 좋으셨는지 매일을 스피커가 터져 나가도록 크게 음악을 틀었다. 그전까지 오토바이를 타면서 늘 바람소리를 벗 삼아 내달렸던 우리는 어느새 갇힌 공간에서 아빠의 음악을 향유했다. 같은 노래를 매일 들으니 지겨웠지만 시간이 조금 흐르자 어느덧 지나는 바람소리처럼 익숙해졌다. 그 익숙함이 나도 모르게 능숙함으로 발전했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되자 이젠 별다른 연습 없이도 아빠의 메들리를 간드러지게 소화했다.
이전까지 나는 내 목소리가 좋다거나 노래를 잘한다고 생각해 본 적이 전혀 없었다. 정확히 그날 이후 나는 학교에서 비공식적으로 트로트를 잘하는 친구, 노래를 잘하는 친구가 되었다. 마치 아무런 복선 없이 전개되는 드라마처럼 모든 것이 갑작스러웠고 또 새삼스러웠다.
어느 날은 학교에서 과학놀이경진대회가 열렸는데 선생님이 나에게 참여를 권하셨다. 과학놀이경진대회는 그 이름에 걸맞게 과학을 주제로 자유롭게 활동을 펼치는 것이고 나는 참가할만한 것이 없는데 왜 그러실까 선생님께 그 이유를 여쭸다.
선생님, 저 나가서 뭐 하나요?
뭐 하긴, 너는 트로트 부르면 되지.
네?!?!
참가자도 납득할 수 없는 참가였지만 신청자의 강력한 추진에 떠밀리듯 대회에 참가했다.
누군가는 에디슨의 전구 발명을 연극으로 시연하고 몇몇은 색다른 마술 등도 보였다. 하지만 나처럼 정말 생뚱맞게 트로트를 부른다거나 하는 참가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불행 중 다행인지 이 생뚱맞은 참가에 떨리지도 않았다.
학창 시절~(꺾고)에~ 함(힘주고)께 추었뜬~~
그래 귀 막고 눈 막고 나는 내 갈길을 열심히 가리라.
그래, 뭐가 부끄러워, 열심히 했으면 됐지.
최선을 다했으면 된 거야!
처음엔 당황스러워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고스란히 보였다.
그럼 그렇지 내가 생각해도 이상한데 하물며 참가자들과 그 지인들은 더욱 어이가 없겠지.
하지만 시간이 조금 흐르자 사람들이 조금씩 박수를 치며 박자를 맞추더니 나를 응원하고 있었다. 내 작아지는 목소리에 힘을 보태고 있었다.
그렇게 뜻밖에도 나에게 은상이 주어졌다.
상까지 받으니 마치 비공식 가수에서 공식 가수가 된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천하에 부끄럼쟁이가 장난스럽게 부른 노래 한 소절로 이렇게 가수의 꿈도 꾸는구나 감개무량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대학을 가면서부터 트로트를 잘 부른다는 건 더 이상 자랑할만한 표식이 되지 못했다.
아무리 구슬픈 발라드를 불러도 소위 뽕삘이 난다는 친구들의 말이 왜 그리 서운하게 들리는지.
그날 이후 나는 그 뽕삘이라는 녀석을 걷어내기 위해 철저히 의식하고 노래해야만 했다. 사회에 나와서는 열심히 직장인 밴드 활동도 하면서 나름 트로트를 멀리했다.
그렇게 한참을 잊고 지냈는데 어느 날 미스트롯이라는 프로그램이 등장하면서 대한민국에 트롯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전국에 트로트를 잘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았던가 새삼스럽기도 하면서 그 다양한 연령대에 또 한 번 놀랐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내 특기를 열심히 살려볼걸...
살짝 후회가 밀려왔다. 세상에 늦은 것은 없다며 주변에서는 나에게 농담반 진담반으로 도전을 권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전처럼 내게 뭔가 끓어오름이 남아있지 않았고, 과거는 과거의 영광으로 남겨두고픈 마음도 있었다.
세상을 열심히 노래하다 보면
인생의 시름도 덜고 기쁨은 더하면서
우연처럼 또 다른 기회가 찾아오겠지
읊조리며 난 오늘도 코인노래방을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