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수업시간

by 메이쩡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아프리카 옛 속담이다. 전에는 그저 머리로 이해한 끄덕임이었다면 오늘은 온몸과 마음으로 이해한 끄덕임이 되었다. 오늘처럼 저 속담이 꼭 들어맞는 때가 또 있었을까.


아이가 초등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예상보다 잘 적응하는 아이에게 무척 고마웠다.

학교-학원-돌봄의 일상이 반복되었지만 아이는 반복의 지루함보다 매일의 새로움을 이야기했다.

한 달 전에는 분명 이 아이가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쉬는 시간까지 잘 기다릴 수 있을까 걱정뿐이었는데 이가 무색할 정도로 아이는 그 누구보다 잘 적응했다.


" 학교 생활 잘 적응해 줘서 기특해. 너무 고마워."

엄마의 감동을 뒤로한 채 아이는 연신 오늘 급식을 칭찬하며 손을 치켜세웠다. 그런 아이였는데, 그렇게 걱정이 없을 줄 알았는데 소리도 없이 첫 번째 시련이 들이닥쳤다.


바로, 부모참여수업.


처음 날짜가 정해진 순간부터 오묘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책상에 앉아있는 너의 모습, 선생님이 이야기할 때 경청하는 너의 모습, 질문하고 대답하는 너의 모습. 상상은 되지만 현실의 캔버스에 담길 모습이 그려지지 않았기에 기분 좋은 긴장감이 있었다. 그저 그곳에 잘 자리하고 있는 것만으로 너무 대견하고 예쁘겠지 하면서 포슬포슬 솟아오르는 긴장을 누그러뜨렸다. 그래도 기다려졌다. 빨리 그날이 오기를.


그렇게 부모참여수업 아침이 밝았다. 여느 때처럼 밥을 먹고 서둘러 학교 갈 채비를 했다.

오늘은 아빠가 아닌 엄마 손을 꼭 잡고 등교하기로 했다. 등굣길에 마주한 꽃과 나무도 바라보면서 아이의 발걸음에 맞춰 신나게 걸었다. 오후 참여수업에 대한 기대감인지 출근할 때와는 다르게 아침 공기가 더욱 상쾌했다.


그때 아이가 걸음을 멈춘 채 불쑥 야기한다.

" 엄마 나 학교 안 갈래. 안 가고 싶어."

" 응? 왜? 오늘 오후에 엄마도 보고 좋잖아."

" 싫어. 오늘만 학교 안 갈래."


순간 당황스러움이 몰려왔지만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 우리 아들이 갑자기 왜 그럴까?

원래 학교도 잘 가고 그러면서 무슨 일 있어?"

" 그냥 싫어. 오늘만 안 갈래. "

" 여긴 어린이집이 아니야. 어린이집은 가끔 네가 안 가고 싶다고 하면 안 가기도 했지만 넌 이제 초등학생이잖아. 어디가 아프거나 하지도 않는데 학교에 안 가는 건 안돼. 학교는 꼭 가야 하는 거야."

" 싫어. 오늘 부모님들 많이 온댔어. "

" 아, 혹시 오늘 사람들이 많이 와서 그런 거야?"

" 응, 어제 선생님이 부모님 앞에서 발표해야 한다고 연습했는데 내가 이야기했더니 친구들이 막 웃었어.

싫어, 나 안 갈 거야."


그때부터였다. 끝을 알 수 없는 실랑이가 시작된 것이.

학교를 가는 게 당연한 나와 오늘만은 가지 않겠다는 아이 두 사람의 팽팽한 줄다리기가 시작됐다. 아이의 눈과 행동은 꽤나 결연했다. 평소 같지 않은 행동을 하는 아이의 말에 흠칫 놀랐지만 여느 때처럼 공감해 주고 잘 다독여주면 괜찮겠지 했다. 교실 문을 50미터쯤 남겨둔 채 복도 한가운데에서 아이 손을 꼭 잡고 물었다.


" 네가 친구들 앞에서 이야기했는데 친구들이 웃었구나. 그래서 부끄럽고 속상했구나. 근데 엄마가 보기엔 네가 무엇을 잘못 말해서 그런 게 아니라 친구들이 너에 대한 관심의 표현인 것 같은데... 그래도 사람들 많은데 이야기하는 게 싫으면 엄마가 선생님한테 이야기해 볼게.

너 오늘 발표는 시키지 말아 달라고. 알겠지?그럼 이제 들어가자."


' 그래 공감도 해줬고 이해도 시켜줬고 해결책도 제시해 줬으니 이제 들어가겠지? '

속으로 생각했다.


" 그래도 안 갈 거야. 내일부터는 잘 갈게 엄마. "


눈물로 읍소하며 버티는 아이의 힘이 어느새 묵직해졌다. 내 의지로 끌고 가기엔 버거운데 어쩌지 하고 생각할 때쯤 저 멀리 교감 선생님이 걸어오신다.


' 하... 이렇게 교감선생님을 뵙다니...'


이미 상황은 벌어졌고 체면치례는 이미 물 건너간 듯 보였다. 교감 선생님께 대략의 상황을 설명드리니 당황해하시며 아이를 달래셨다. 하지만 이미 가지 않아야겠다는 고집으로 똘똘 뭉친 아이의 벽을 깨긴 어려웠다. 곧이어 담임선생님을 불러주시겠다고 하더니 입학식날 먼발치서 뵌 담임선생님이 잰걸음으로 걸어오셨다. 그렇게 두 번째 설득이 시작됐다.


담임선생님은 나이가 꽤 있으셨지만 1학년 담임 경험은 많지 않다고 하셨다. 그래서인지 아이를 달래는 게 쉽지가 않았고 그저 발표 안 시킬게 같이 들어가 보자 하는 말만 반복하셨다. 선생님께 맡기면 모든 게 해결되리라 생각했던 내 기대와 달리 어른 둘이 아이 하나를 잡고 한 마디씩 번갈아가면서 설득에 애를 먹었다. 결국 수업을 해야 하는 선생님을 보내고 혼자 계속해서 아이를 설득했다.


차가운 복도에 무릎 꿇은 채 계속해서 사정하는 엄마는 안중에도 없는지 아이는 계속 고집을 부린다. 나도 서둘러 일해야 하는데 속절없이 지나는 시간에 아이를 더 세게 다그쳤다. 밀어 넣으려는 나와 따라 나오려는 아이의 신경전이 몸으로까지 번지면서 화가 더욱 치밀어 올랐다.


' 무엇보다 결석은 안 되는 거잖아...

혹시 학교에서 다른 일이 있었나...?

사람들 앞에 서는 게 저렇게 두려울까...?

친구들하고 어울리는데 문제가 있지는 않을까...?

웅변학원이라도 보내야 하나...? '


아이와 실랑이를 하는 내내 이성보단 감정이 앞섰다.

서로 각자의 위치에서 보내야 할 시간이 있는데 계속해서 고집만 부리는 아이가 미웠다. 교실에서 시작된 실랑이가 교문까지 이어지는 와중에 나이가 지긋하신 학교지킴이 어른이 다가오셨다. 아이들의 등하원을 도와주시는 시니어 지킴이 어르신이었다.


이미 이성을 잃은 엄마를 뒤로한 채 어르신은 따뜻한 눈으로 아이의 등을 어루만지셨다. 엄마한테 그러면 안 되지 학교가 얼마나 재미있는데 하시며 온화한 얼굴로 아이의 열을 식혀주려 애쓰셨다. 쉬는 시간을 오가던 형 누나들 역시 이 상황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큰소리로 이야기한다.


" 동생아 학교가 얼마나 재밌는데 친구들하고 노는 것도 재밌고 밥도 맛있어! "


전보다는 많이 진정됐지만 그래도 아이는 교실에 들어가지 않았다. 결국 집까지 다시 와서 난 회사 컴퓨터를 켜고 급한 업무만 먼저 보기로 했다. 아이는 오랜 실랑이에 허기가 졌는지 그리고 엄마가 진짜 바쁘다는 걸 알았는지 힘없이 낮은 어조로 허기가 진다고 했다. 기죽은 아이를 보니 이내 마음이 쓰여 초코파이 하나를 건넸다. 아이 역시 정말 허기가 졌는지 우적우적 초코파이를 먹는다. 그리고는 이것만 먹고 학교에 가겠단다.


이 얼마나 기다렸던 순간인가. 오늘 끝내 듣지 못할 것만 같은 말이었는데 정말 다행이었다. 모든 진이 다 빠졌지만 어려운 수수께끼라도 푼 것처럼 안도의 한숨과 함께 아이를 와락 끌어안았다.


" 엄마가 아까 너를 세게 다그치고 끌어서 아팠지?

근데 엄마도 너무 속상했어. "

" 응, 알겠어 엄마. 근데 나 발표는 안 할 거야. "

" 알겠어 아까 선생님이 약속하셨잖아. "


이미 발표에 대한 기대감은 저 멀리 던져두었다. 그저 학교만 잘 갔으면 했다. 나는 그렇게 아이 손을 다시 잡고 두 번째 등교를 했다. 처음 등교했을 때의 상쾌한 공기 푸르른 나무와 꽃은 이제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았다.


그렇게 가까스로 아이를 보내고 쓸쓸히 돌아왔다.

오늘 발표 안 하니까 오지 말라는 아이의 말이 계속해서 귓가를 맴돈다. 아이의 초등학교 첫 참여수업인데 꼭 가고 싶었는데. 혹시 아이가 나를 보면 더 긴장될까 걱정이 되며 갈지 말지 고민했다.


' 내가 우리 아이라면 그래도 엄마가 왔으면 할 거야. 그래 일단 가보자 '


오후 1시 드디어 교실문이 활짝 열렸다.

빽빽한 아이들의 책상 뒤로 부모님들이 일렬로 서있었다.

혹시나 아이에게 들키지 않으려 키가 큰 부모님 뒤로 슬쩍 숨어 있었다. 그때 맨 뒷자리에 앉아있던 내 아이가 고개를 쏙 뺀 채 이리저리 엄마를 찾기 시작한다.


' 요 녀석 언제는 오지 말라더니...'


아이는 기어코 숨어 있는 엄마를 발견하고는 세상을 다 얻은 듯 행복하게 웃어 보인다.


" 엄마 엄마 왔어? 엄마 나 여기 있어! "


아이는 크게 손짓하며 제집 안방인 양 의자에 편히 걸터앉아 있었다.


' 정녕 좀 전까지 울고불고한 그 아이가 맞단 말인가! '

' 아주 사랑방 손님을 맞이하듯 편안하게 자리한 저 아이가 내 아이가 맞단 말인가! '

내심 서운하기도 했지만 이내 안심이 되었다.

그렇게 수업은 시작되었고 친구들은 조별로 나와한 명씩 발표를 했다. 결국 선생님의 약속대로 아이는 앞에 나가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 아이 외에도 부모가 안 와서 의자 뒤에 웅크린 채 울고 있는 아이, 갑자기 발표가 무서워 제자리에서 울고 있는 아이가 보였다. 아 맞다! 여기 1학년 교실이지 하고 실감 나는 순간이었다. 그러면서 한 가지 감정이 또렷해졌다.


' 우리 아이만 그런 게 아니구나. 아직 아이들이 직접 경험하지 못해 두려운 세상이 있구나 '


결석만은 안된다는 내 기준으로 아이의 행동을 판단하니 공감보다는 질책이 앞섰다. 세상에 처음부터 잘하는 건 없다는 걸 알면서도 다른 아이들처럼 평범하게 세상에 맞서지 않는다는 불안감에 아이를 더 다그쳤다.


왜 너만 교실에 들어가지 않냐고. 다른 애들도 부끄럽고 두렵지만 그래도 잘만 앉아있는데 너는 왜 그러질 못하냐고 원망하듯 아이를 바라봤다. 내가 바라보는 세상으로 아이에게 요구했다. 사실 아이가 마주한 세상은 아직 낯설고 두려운 게 많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힘겨운 오전을 보내는 동안 머릿속이 실타래처럼 꼬여 있었다. 오후가 되자 그 실타래가 풀리면서 점차 평정심을 되찾았다. 오늘 하루 내 아이의 등원을 위해 힘써준 많은 이들의 얼굴이 필름처럼 스쳐갔다. 안도와 고마움이 번지며 나도 모르게 웃었다.


이튿날 아침이 되자 전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냐는 듯 아이는 평소처럼 웃으면서 책가방을 멘다. 그리고 잘 다녀오겠다며 엄마에게 뽀뽀해 주며 문을 나선다.


' 그래, 이렇게 우리 모두 성장하는 거겠지. 엄마도 엄마긴 처음이라 배우는 중이야. 우리 서로 조금은 서툴더라도 잘해보자. 엄마가 아주 많이 사랑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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