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태권도 학원을 다닌 지도 벌써 햇수로 3년 차에 접어든다.
남자아이는 활동성 있는 운동이 좋으니 태권도를 배우면 좋겠다는 주변의 권유를 듣고 유치원을 올라갈 나이부터 태권도를 보냈다. 우리 학창 시절과는 달리 지금의 태권도 학원은 비단 태권도만 가르치지 않는다. 학교 생활, 예절, 줄넘기, 안전, 체험 학습 등등 마치 예체능 종합학교처럼 아이들의 정서부터 신체까지 총 망라한 교육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수업과 별개로 아이들은 칭찬 포인트를 받는다. 인사를 잘하거나 수업을 잘 받거나 등등 어떤 칭찬의 기회가 있을 때 태권도 선생님들이 주는 소중한 인정이다. 처음 태권도를 시작했을 때는 하루에 한 장씩 토큰처럼 얻어오는 포인트에 큰 관심이 없더니 아이가 성장할수록 조금씩 포인트에 연연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무엇을 해서 이만큼 받았고, 오늘은 저만큼 해서 받았다며 칭찬의 이유와 그 결과물을 자랑했다.
작은 성취에도 즐거워하는 아이의 얼굴을 보며 나 역시 보람을 느꼈다. 역시 태권도를 보내길 잘했어!
쓰임 없는 보상은 없는 법. 연말이면 태권도에서 포인트 시장이 열린다. 아이가 일 년 동안 소중히 모은 포인트들을 가져가면 포인트 금액별로 살 수 있는 선물 백화점이 열린다.
태권도에서 보내온 사진만 봐도 나 역시 설렐 정도인데 하물며 아이는 얼마나 설레고 행복할까.
그렇게 아이는 연말이면 가방 가득 선물을 채워오곤 했다. 그리고 늘 엄마의 선물도 빼놓지 않았다. 작년에는 엄마에게 주고 싶다며 비누로 만든 꽃 한 송이를 가져왔다. 아이의 조막만 한 손에 들린 꽃을 보면서 무척 행복했다.
그런 아이가 작년 연말에는 마음에 드는 물건이 별로 없다며 포인트를 많이 남겨 왔다. 올해 아껴서 마음에 드는 물건을 사겠다고 한다. 이젠 마냥 써버리는 게 아니라 무언가를 아끼고 소중히 쓸 줄 안다고 생각하니 더 컸다 싶기도 하고 대견했다.
그렇게 감동의 순간이 지속되던 어느 날, 아이와 평소 친하게 지내곤 했던 여자 아이의 엄마에게 연락이 왔다.
그저 안부문자 이겠거니 하고 나 역시 안부를 물으려 하는 순간 내용을 보고 살짝 놀랐다. 그리고 어떻게 답장을 해야 할지 몰라 살짝 당황스러웠다.
" 잘 지내시죠? 사실은 우리 아이가 어느 날 태권도 포인트를 잔뜩 가져왔더라고요. 학원에서 이렇게 많이 줬을 리가 없을 것 같아서 물어보니 친구가 다 줬다고 하더라고요. 혹시 알고 계시나 해서 여쭤봐요. "
문득 생각하니 요즘 아이의 태권도 포인트를 본 기억이 없다. 아이가 늘 하루에 하나씩 가져오면 혹여나 잊어버릴까 대신 복주머니에 챙겨 주곤 했는데 그러고 보니 어느 날부터 포인트가 안 보였던 것 같다. 나 역시 요즘 정신없이 바쁜 탓에 아이가 어느 한쪽 구석에라도 잘 모셔두었겠거니 했는데... 맙소사, 그렇게 좋아했던 포인트를 여자 친구에게 한 순간에 모두 다 주었다고....?
순간 당황해서 그 엄마에게 무어라 말할 내용이 떠오르지 않았다. 잠시 숨을 고르고 이 처음 느낀 감정을 표현할 말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 아, 그랬나요? 저는 들은 게 없는데 집에 가면 아이에게 한번 물어볼게요~ "
카톡으로는 별거 아닌 듯 장난처럼 그저 웃어넘겼다.
친구에게 돈을 준 것도 아니고 뭐가 어때하면서도 그렇게 소중하게 모은 자신의 보물을 한순간에 내주었다는 게 내심 서운했다.
이 녀석, 벌써부터...
퇴근하고 아이에게 지나가는 말로 물었지만 아이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듯 얼버무렸다. 그냥 줬다며 자세하게 이야기조차 하지 않는 아이를 보니 왠지 모르게 더 서운했다.
이게 말로만 듣던 엄마의 짝사랑 인가...
난 아직 많이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다른 이들에겐 그저 귀여운 행동이겠지만, 나한테만은 묵직한 한방처럼 느껴졌다. 어머님의 아들을 데리고 사는 내가 할 말은 아니겠으나 아직은 느끼고 싶지 않은 감정이다.
당황스럽지만 실로 오랜만에 질투의 감정이란 걸 느꼈다.
" 아들아, 이해해줘. 엄마도 이런 감정이 처음이라 시간이 필요하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