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함 뒤 숨겨진 마음의 균열
그는 매일 저녁 집에 들어오면 신발부터 가지런히 정리한다. 그리고는 내일 입을 옷, 양말 심지어 모자까지 미리 준비해 둔다. 본인의 준비를 마치면 곧 아이가 내일 입을 옷, 책가방 그리고 물병까지 야무지게 챙긴다. 혹시나 바쁜 아침에 정신없이 준비하다 놓칠까 싶어 문 바로 옆에 보이는 곳에 모든 준비물을 정렬해 둔다.
출근을 하면서는 잘 다녀오겠다, 오늘 하루도 힘내자, 사랑한다는 희망의 말을 건네고, 퇴근을 하면서는 오늘 하루 고생했다, 저녁에 아이를 케어하느라 고생했다, 곧 가서 만나자 라는 위로의 말을 건넸다. 매일 같은 듯 조금씩 다른 투박한 말이었지만 그래도 나에겐 잔잔한 안정감을 주었다. 이 모습은 평일 주말이 다르지 않았고, 그는 그렇게 늘 한결같았다.
하지만 그가 일을 쉬게 되면서 이 반복되는 일상에도 균열이 생겼다. 그 균열은 나에게는 철저히 노출되지 않았고, 그 자신만 알고 있었다. 나에게는 보이지 않았기에 알 생각조차 할 수 없었고, 그저 우리는 여전히 평범하고 화목하다고 여겼다. 그 혼자만 아는 균열이기에 평소와 다름없는 성실함으로 그는 철저히 그 균열을 가렸다.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되는 아침에도 부지런히 일어나 일터에 나가는 것처럼 정돈을 했다. 그에게는 전혀 바쁘지 않은 아침이었지만 그는 바빴다. 아니 여전히 바쁘게 보여야만 했다. 늦지 않게 아이를 등원시켜야 했고, 늦지 않게 출퇴근 버스에 몸을 실어야 했다. 그 목적지 역시 그 자신만 알고 있었다.
늘 한결같았던 성실함에 거짓이라는 프레임이 씌워지자 그 속도는 본인조차 감당할 수 없었다. 잠깐 눈 감고 나면 눈덩이처럼 커져 있는 거짓의 무게에 더 이상 일어날 용기조차 생기지 않았으리라.
성실함이 무기인 그는 거짓말조차 그렇게 성실했다. 그 성실함이 좋은 쪽으로 발현되었다면 좋았겠지만 방향이 틀어지자 무섭게 커지고 변해만 갔다. 간신히 막다른 골목을 만나 잠시 멈추었을 때 더 이상은 안된다며 서로 울며 불며 매달리고 다시 방향을 틀었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내리막길이었음을 직감하지 못했듯이 끌어올리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뒤로 계속해서 밀리고 있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 불안감, 예측할 수 없는 거짓의 눈덩이는 우리 모두의 시간을 멈추게 했다. 함께 하면서 행복한 미래로 함께 나아가자고 한 약속이 무색하게 우리는 오도 가도 못한 채 커다란 거짓의 눈덩이를 함께 붙잡고 울고만 있었다. 뒤돌아 보기가 무서워 과거 이야기를 서로 꺼렸고, 미래에 대한 이야기는 더더욱 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우린 과거도 미래도 바라보지 못한 채 멈춰서서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답답한 마음에 우연히 GPT에 털어놓은 내 마음은 감정적이었지만 GPT는 나를 감정적으로 위로하는 한편 이성적인 해답까지 함께 내놓았다. 정신을 차리고 긴 글을 읽어 내려가면서부터 왠지 모를 용기가 생겨났다. 과거를 마주하기 싫어 외면하니 현재도 괴롭고, 다가올 미래는 더더욱 보이지 않았던 내게 용기 내어 과거와 마주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 역시 본인의 잘못이 되풀이될까 봐 두려워한 나머지 이를 다시 언급하고 이야기할 용기조차 낼 수 없었다. 우리는 그렇게 GPT가 내어준 감정적이고 이성적인 답변을 앞에 두고 뒤늦게나마 용기를 내보았다. 과거와 마주할 용기를.
그는 그렇게 거짓의 감정들, 잇따른 거짓의 행동들을 꺼냈다. 그리고 우리는 그 거짓의 밧줄을 하나하나 더듬어가며 그 패턴을 그 시작을 찾아나가기 시작했다.
도대체 언제부터, 왜 시작되었을까?
본인조차 의식하지 않고 나온 행동들이 어떤 감정에서 나온 것인지, 매번 그러했는지 아니면 시간이 지나고 조금은 변했는지, 분명 다른 상황이었음에도 왜 같은 마음이 들었는지 왜 도망쳤는지 등등... 머리를 거치지 못하고 행동으로 반복된 거짓의 패턴을 상기해 보고 그 감정을 쪼개보고 이성적으로 마주하려고 노력했다.
" 당신 그 누구보다 성실한 사람이라는 거 알아. 근데 그거 알아? 당신의 거짓말도 그토록 성실했다는 거. 좋은 쪽으로 발현되었으면 아주 좋았을 당신의 성실함이 엉뚱한 곳으로 가니 상황이 더 심각해진 거 같아. "
나의 말에 그는 탄식했다. 기억하지 싫은 불편함에서 오는 탄식이 아닌 인정과 아쉬움에서 나오는 탄식 같았다. 되돌릴 수 없는 시간에 대한 아쉬움과 후회 그리고 지금이라도 깨달아 다행이라는 안심이라는 마음이 오묘하게 한 얼굴에 드리워졌다.
그의 성실함이 부디 좋은 쪽으로 발현되어 그 속도가 빠르다 못해 날아갈 수 있기를 부디 스스로에게 자유를 줄 수 있기를 그 누구보다 바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