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우리 아빠가 아니니까
우리 아빠는 성실함의 대명사다.
내가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일을 한 번도 쉰 적이 없다. 나는 우리 집이 티브이에 나오는 것처럼 사업의 큰 위기를 겪은 것도 찢어지게 가난하게 자라온 기억도 없기에 그저 평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평범함에 대한 감사보다는 더 여유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었다.
성인이 되고 가정을 꾸려보니 우리 부모님이 준 그 평범함과 안정감이 얼마나 크고 소중한지 알게 됐다. 우연한 기회에 아빠의 지난날을 이야기하게 되면서 비로소 아빠의 무게를 알게 되었다.
아빠가 지금의 내 나이와 비슷했을 때 아빠에게 우울증이 찾아왔다. 제법 큰 농기계 회사에서 모범사원으로 일했던 아빠는 직장에서도 지인들에게도 사람 좋기로 소문이 나있었다. 초등학생이었던 내게도 아빠의 지인들이 아빠를 칭찬하며 건넨 말들이 어렴풋 기억이 난다. 그렇기에 어쩌면 아빠 내면 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던 고뇌의 덩어리들이 쉽게 꺼내어 보일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 누구보다 평판 좋고 성실한 아빠가 십여 년 다닌 회사를 갑자기 그만둔다고 했을 때 어린 나는 크게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기계를 만져서 팔이 너무 아프다는 말에 아빠의 건강이 우선이라며 더 이상 묻지도 않았다.
돌이켜보니 그때쯤 엄마가 일을 시작한 것 같다. 말로는 우리 자매가 점점 커가니 엄마도 가정경제에 보탬이 되고자 우연찮게 시작한 거라고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아빠의 힘들었던 시기와 겹친 것이다. 그때도 역시 그러려니 했을 뿐 엄마의 회사 그리고 일에 대해 크게 관심이 없었다.
아빠는 그 오랜 회사생활을 뒤로하고 여러 번 회사를 옮겼다. 김치공장을 다니시다가 어느 날 대형면허를 취득하고는 휴게소에서 관광차들을 정비하고 관리하셨다. 이후에도 학원차, 주유소 등 집 근처 할 수 있는 여러 일들을 계속해서 찾아 헤매며 성실히 일했다. 아빠가 어떤 마음이었을지 얼마나 힘들었을지 그때는 몰랐다. 엄마는 그런 아빠 옆에서 묵묵히 26년을 정년퇴직을 넘긴 지금까지 한 곳에서 일을 하고 계신다. 26년을 넘게 해도 이제야 최저임금 수준의 월급을 주는 열악한 환경의 공장에서 여름에는 선풍기 하나로 겨울에는 세 겹의 양말로 그 오랜 세월을 그야말로 견뎌내셨다.
그렇게 밖으로 새지 않았던 부모님의 고뇌와 슬픔 덕분에 지금 내가 이렇게 무탈하지 않았음을 너무나 뒤늦게 온 마음으로 깨달았다. 언뜻 평범해 보이지만 그걸 지키기 위해 부모라는 이름으로 그 많은 것들을 오랜 시간을 감내해 왔다는 것을 내가 부모가 되고 보니 너무나 잘 알겠다.
그런 아빠의 성실함이 늘 익숙하고 당연했기에 지금 내 옆에 있는 그의 행동이 더욱 용납되지 않았던 거다. 내가 본 가장은 돈의 많고 적음을 떠나 어떤 일이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는데 그는 오히려 다른 길을 걸었다. 말로는 가장이라고 하면서도 그 책임이 두려워 회피만 하고 있는 그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보고 자라온 환경에 투영해 그를 바라보니 이 관계는 더 나아지기는커녕 골만 더욱 깊어지는 것 같았다. 그때 문득 그의 자라온 환경이 궁금해 물었다.
그는 삼 남매 중 막내로 자랐지만 막내로서의 귀여움을 받고 자라지 못했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늘 큰아들과 큰 손주가 위주였던 시할머님 밑에서 늘 외로움과 고군분투하셨던 어머님. 그리고 남다른 예술적 재주로 꿈 많던 아버님이지만 사업 수완은 부족해 가정에 경제적으로 기여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방황하셨다. 삯바느질로 세 자식 모두 대학까지 보낸 어머님의 인내와 책임으로 그 역시 넉넉지 못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렇게 가까이에서 어머님의 무게를 그 누구보다 느꼈지만 아버님에게서 가장의 책임이란 것을 제대로 경험하지 못했다.
그렇게 그도 가장이 되고 아빠가 되었지만 책임에서 늘 떨어져 있었다. 말로는 가장이지만 어떻게 가장노릇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아빠가 될 수 있는지 계속해서 삐그덕 댔다. 다 큰 성인에게 누가 이를 알려주겠는가. 다들 처음엔 서투르고 어색하지만 그렇게 넘어지며 일어나며 살아내는 것을.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게 변하고 무르익어야 하는데 그만 계속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음을 그 자신조차 몰랐다. 아니 애써 잊고 싶었을 것이다. 좋은 아빠란 가정 경제에 이바지하는 아빠라고 느낀 그는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렇지 못한 현실이 두려워 도망쳤다.
내가 본 우리 아빠와 그가 본 당신의 아빠의 모습 속에서 우린 서로 다른 가장을 간접적으로 학습했다. 그리고는 보고 들은 대로 내 가정에 투영시켰다.
우리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그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 해결하지 않는다면 남은 세월도 계속 같은 굴레 속에 갇힐 것만 같았다. 그래서 계속 이야기하며 지나온 시간들을 찬찬히 되짚어봤다. 그리고 계속해서 꺼내면서 비로소 드러나는 우리의 다름을 마주했다. 또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했다.
나는 그에게 힘주어 말했다.
" 당신, 가장이 되려 하지 말고 아빠가 되어줘. 좋은 아빠 능력 있는 아빠가 되려고 하지 말고 지금은 그냥 아빠가 되어줘. 내가 가장이 되면 뭐 어때. 오히려 나라도 가정 경제에 보탬이 되는 게 다행인 거고.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경제적 가장보다는 그냥 식구인 것 같아. 크게 뭘 하지 않아도 같이 밥 먹고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그런 식구 말이야..."
그제야 그도 알 수 없는 갑옷을 풀어헤친 듯 홀가분한 얼굴로 나를 가만히 응시했다. 미안하다 힘들다는 그 한마디를 하지 못해 지나온 수많은 후회들이 주마등처럼 스친 듯 눈은 울고 입은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