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삶은 질문

남자의 미용실

낯선 위로가 필요한 순간

by 메이쩡


벌써 머리를 자르러 간다고???

불과 얼마 전 머리를 자른 것 같은데 벌써 머리 자를 때가 되다니.


아직 갚아야 할 돈도 많은 주머니 사정 때문인지 그의 커트 요청은 부담스럽기만 하다. 오랫동안 일을 하지 않았고, 지금의 직장도 아직 들어간 지 한 달이 채 안되었다. 그 말인즉슨 아직 월급을 받지 않았다는 것. 누군가는 평소에 술담배를 하는 것도 아니고, 소비를 많이 하는 것도 아니고 그 정도는 괜찮지 않냐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결혼하고 일을 한 날보다 안 한 날이 더 많았기에 늘 돈으로 속 썩은 일이 많았던 우리의 속사정을 안다면 나를 단순히 짠순이로만 보지는 않을 것이다.


예전에 누군가 강의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남자들도 요즘은 이발소를 가지 않고 미용실을 간다고. 그러면서 예전에 이발소를 갔던 이유가 뭔고 하니, 그것은 이발소 전체 시스템의 느림, 여유로움 때문이라고 했다. 머리를 자르고 집에 일찍 들어가 부인의 잔소리를 듣기 싫은 남편들로선 장인 정신을 뽐내며 느림의 미학을 몸소 실천 중인 이발사를 선호했다는 것이다. 머리도 수염도 한 올 한 올 심혈을 기울이는, 스타일보다는 본연의 기능에 충실한 이발사들의 느리고 여유 있는 손동작이 그들에게 합법적인 자유를 선사했던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남자들도 자연스럽게 미용실을 찾기 시작했다. 실제로 집 근처에 이발소를 찾기가 힘들다. 내가 사는 동네 특성상 어르신들이 많은 동네임에도 불구하고 엘리베이터도 없는 2층 미용실을 어르신들은 동네 마실 장소처럼 드나드신다. 부모의 손길이 필요한 어린아이부터 팔십이 훌쩍 뛰어넘은 어르신들까지 그야말로 남녀노소가 같은 곳을 드나들며 이야기 꽃을 피운다.


남편도 어느새부턴가 미용실을 주기적으로 방문했다. 내가 보기엔 크게 지저분해 보이지도 않는데 이미 많이 자라나 무겁다며 미용실에 가겠다는 것이다. 나는 벌써 자를 때가 됐냐며 볼멘소리로 대꾸한다.


가족 모두 같은 미용실을 다니기에 오랜만에 간 미용실에선 늘 남편 이야기를 한다.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집안사람인데도 남의 입을 통하니 새삼스러우면서도 어떤 이야기를 했을까 새삼 궁금했다. 같은 집안의 고객을 둔 미용실 원장의 입장에서 안 좋은 말을 전할 리도 없지만. 그럼에도 미용실 원장은 남편이 어쩜 그렇게 내 칭찬을 많이 하는지 연신 부럽다고 말한다.


(제가 마음고생을 많이 했지요... 그래도 알아주니까 그나마 다행이네요...)


느릿느릿 시간 때우듯 머리를 자르고 오는 것도 아니고, 와이프 욕을 하면서 공감을 얻는 것도 아니고... 그가 그렇게 미용실을 자주 찾는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늘 생각했다. 하지만 몇 번 혼자 방문한 미용실에서 원장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비로소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조심스레 추측해 보건대 그 역시 낯선 누군가에게 공감받고 위로받고 싶었던 것 같다. 설령 그게 좋은 이야기이든 고민이든 가족이 아닌 낯선 누군가에게 아무렇지 않게 툭 던져 보고 가벼운 위로라도 받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적어도 그곳에서는 진실에 대한 부담보다는 공감에 대한 위로가 더 크게 느껴졌을 테니까. 그렇게 낯선 이에게 받은 가벼운 공감을 위로 삼아 조금씩 자신을 회복해 나가는 중이었을지도 모른다.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게 가족이라고 하지만 때로는 이 거리가 무섭게 다가올 때가 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니 그 어떤 것도 감추지 말고 솔직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이 솔직함의 끝이 그 가족을 잃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과 만나면 그 수단과 목적이 뒤바뀌기도 한다. 그리고는 잘못된 수단을 정당화하기까지 한다. 너무나 사랑해서 이 가정을 잃을까 봐 두려워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했다던지 하는...


언제부턴가 미용실에 간다는 그를 흔쾌히 웃으며 보낸 적이 없던 것 같다. 나에게 그의 미용실은 자주 돈이 나가는 곳, 굳이 왜 가는지 이해할 수 없는 곳이었으니까. 돈이라는 단순한 잣대로는 그 행동의 숨은 의도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사실 그 자신도 잘 모를 것이다. 본인이 왜 그렇게 미용실을 가고 싶어 했는지...


미용실만 다녀오면 가벼워진 머리칼만큼이나 그 얼굴의 근심도 조금은 사라진 듯 보였다. 애꿎은 현실만 탓하기 이전에 숨 쉴 구멍 하나는 만들어 주자. 다음부터는 흔쾌히 웃으며 보내주자 하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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