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보다 마음의 구멍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해?
구멍이 났으면 새로 좀 사 입지.
별 걸 다 아끼고 그래."
빨래를 접다 문득 구멍 난 내 속옷을 본 당신은 꼭 그렇게 말했어. 그런 당신의 말속에는 나에 대한 걱정보단 자신에 대한 죄책감이 더 크게 작용하는 듯 보였어. 나에게 한 잔소리였지만 마치 본인을 탓하는 것처럼 말이야.
사실 난 궁상을 떨고 싶은 생각은 없어. 솔직히 말하면 크게 필요성을 못 느꼈을 뿐이야. 겉으로 보이는 것만 치중해 왔던 삶에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부터는 내 안을 더 다듬고 돌보려고 노력했거든. 그렇게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내 겉모습보다는 내 안을 채우는데 더 욕심을 냈던 것 같아.
당신이 방황하고 그 방황을 거짓말로 메우면서 그 거짓의 끝엔 늘 허무한 빚만이 남았지. 상황이 그렇게 되면서 나는 더 내 안을 파고들었던 거 같아. 어차피 겉으로 메울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나마 가끔 부린 사치조차 내려놓게 되었으니까. 아껴야 한다는 강박은 당신도 우리 아이도 아닌 내가 제일 쉽게 통제할 수 있는 내 자신에게서 찾았어. 아무것도 통제할 수 없다면 나라도 해보자 하는 마음이었던 것 같기도 해.
굳이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아끼기 위해 나름 많이 노력했어. 하지만 아이를 키우기에 내 아이가 입고 먹는 것만은 너무 통제하고 싶지 않았어.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 스스로가 그 통제의 대상이 된 것 같아.
하지만 이로 인해 나 스스로를 동정한다거나 비참하게 느끼지는 않았어. 시간이 지나고 많은 일들을 겪으면서 내 생각보다 내 내면이 단단했음을 느꼈거든. 눈에 보이는 화려함보다 조금씩 차오르는 내면의 지혜를 나만이 오롯이 느낄 수 있었어. 결혼기념일, 생일이 되어도 꼭 값비싼 선물, 특별한 계획이 없어도 그저 평범하게 축하할 수 있는 하루가 있다는 그 사실이 소중했어.
나의 이런 마음들을 모르는 그저 당신의 방황과 잘못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고 자책했을지도 모르겠어. 하지만 아예 무관하지는 않았기에 굳이 이야기하지 않았어. 그 미안함이 당신에게 새로 시작할 명분이 된다면 기꺼이 내 감정을 이야기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으니까.
구멍 난 속옷은 나에게 있어 큰 의미가 있지 않아. 그저 내가 맘만 먹으면 버리고 바꿀 수 있는 아주 작고 사소한 거야.
지금 외부 상담을 받으면서 당신 스스로의 마음과 책임을 정비하느라 여력이 없겠지만 앞으로 조금의 여유라도 생긴다면 그래서 그 주변에 서있는 나를 발견한다면 말이야 지금 겉으로 보이는 속옷에 난 구멍보다 내 마음에 뚫린 구멍을 좀 들여다봐줬으면 좋겠어.
재촉하지는 않을게.
하지만 그날이 부디 빨리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