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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쩡 Nov 29. 2021

<게으름에 대한 찬양>

게으른척 하는 것도 어렵다

일찍이 멍 때리기 대회에 대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실제로 멍 때리기 대회가 있다는 사실에 대한 신기함과 호기심 다음에 이어진 생각은 다름아닌

왜? 굳이? 쓸데없이? 였다.


그야말로 정보의 거대한 홍수 속에서 나만 모르지 않을까, 나만 뒤쳐 지지 않을까 하는 조급함에 

하나라도 더 알고자 부단히도 애쓴다. 무언가를 얻고 나서는 만족의 상태도 잠시 또다른 조급함으로 새로운 정보를 쫓게 된다.


과연 끝이 있을까? 그래서... 행복할까?

이 물음에는 어느 누구도 쉽게 답해주지 않는다.


끝은 보이지 않고, 무한 달리기를 반복하는데 주변에는 나를 초월해 가는 사람들만 보이는...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무한반복되는 경쟁의 그늘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의 삶의 모습같다.

부지런하지만 행복하지 않고, 일은 많이 하지만 여유는 없는...


'게으름'이라는 단어를 떠올려보면 부정적인 느낌과 이미지가 먼저떠오른다. 

그래서 일부러 '게으름'을 쫓는 사람들을 찾아보기가 더욱 힘든 것인지도 모르겠다.




저자가 이 글을 쓴 시대는 1930년대인데 2021년인 현재에도 여전히 공감할 수 있는 걸 보면

인간이라는 존재의 유한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으며, 저자의 통찰력에 역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산업 사회가 낳은 인간의 노동으로부터의 소회를 통렬하게 비판하며, 그저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사회적 통념과 달리 인간의 진정한 자유와 주체성 확립을 위해서는 오히려 여가가 필요하다고 주장함으로써 논리적 쟁점을 제시한다.


우리는 하루 8시간의 노동에서 4시간의 노동으로도 충분히 우리의 삶에 필요한 물질들을 만들 수 있다고 

말하며, 나머지 시간에 일부러라도 여가와 문화 활동을 충분히 즐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술의 발전으로 충분히 기존 생산량을 초과 달성 할 수 있음에도 우리는 여전히 8시간의 노동을 하고 있고,

이는 초과 생산으로 인한 낭비, 손실과 더불어 행복하지 않고 기계화된 인간을 만들어 낸다고.


2021년 현재, 그 어느때보다 발달된 문명의 혜택 아래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그 어느때보다 분주하게 효율화를 주장하지만, 오히려 과거의 8시간보다 더 많은 업무 시간의 그늘 아래 많은 이들이 일과 삶의 균형 잡기에 실패한다. 한 시간도 허투루 쓰지 않으려는 '유용한 지식'에만 집중한 나머지 게으름의 여유에서 오는 '무용한 지식'의 유레카를 경험할 기회도 없이 말이다.


일찌기 여성의 권리를 위한 사회적 환경의 조성과 아이들의 놀이를 통한 주체적 사고의 필요성을 언급하며 교육의 필요성을 거듭 주장하는 그의 글을 보면서 가히 시대를 앞서 나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적 견지에서 볼 때 교육은 단순한 성장의 기회가 아니라 보다 적극적인 것이어야 한다. 
물론 교육이 그러한 기회도 제공해야겠지만 동시에 아이들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획득할 수 없는 정신적 도덕적 소양을 키워주어야 한다         

<본문 중에서...>




처음 책에 흥미를 가지고 읽기 시작했을 때가 생각 났다.

무언가를 새로 알게 되었다는 포만감에 매우 흥분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시간이 점차 지나면서는 점점 사색의 여유를 주는 책에 매료되었다.


소화가 되지 않아도 일부로라도 구겨 넣었던 독서는 나에게 여유보다는 속도였다.

하지만, 습관적 사색을 할 수 있는 책들로 인한 독서는 나에게 속도 보다는 여유를 선물했다.

습관적 사색을 하기에 러셀의 책만한 게 없다.


오랜만에 아무 생각 없이 누가보아도 게을러 보이게 누워서 한동안 아무 생각 없이 먼 곳을 응시했다. 

하지만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지 수많은 생각들이 나를 끊임없이 방해한다. 


의식적 게으름도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서 왠지 모를 웃음이 새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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