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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쩡 Feb 28. 2022

<일생 일문>

단 한 번의 삶, 단 하나의 질문


삼일절을 하루 앞둔 오늘,

제가 이 책을 읽게 된 것도 어쩌면 운명이 아니었을까요?


글을 읽는 내내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저 막연히 흘려보낼 수 있었던 시간을 잠시 붙잡아 두고,

그 시간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닫게 해 주신 아주 고마운 분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역사 강의로 방송에서 종종 뵈었던 최태성 강사님을 책 속에서 뵈니 더욱 반가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과거 학생 운동 당시 '우리'가 아닌 '나'의 미래만을 쫓기 바빴던 자신을 반성한다 하시면서 남은 인생을

'우리'를 위한 어떤 사명감으로 무료 역사 강의를 하고자 하는 그의 뜻이 충분히 와닿았기도 하고요.

역사책이지만 철학책 같기도 하면서 과거 '우리' 민족의 미래를 위해 끊임없이 '문(물음)'을 던졌던 그들을 통해 끊임없이 '나'에게 질문하고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과거 우리 민족의 아픔을 등지고 자신의 살길만을 도모했던 반역자, 친일파들...

온몸이 떨리면서 참을 수 없는 분노로 육두문자를 날리면서도 한편에 이런 생각들이 들기도 했습니다.


"과연 나라면 어땠을까?"

"과연 나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과연 나라면 죽음 앞에 의로움을 택할 수 있었을까?"

부끄러움과 고마움의 감정이 동시에 아련한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릅니다.



과거 민족 영웅들의 이야기를 단순히 시계열로 인물과 사건을 정리한 것이 아니라 '문'이라 명명한 다양한 소주제로 의미 있고 알차게 담았습니다. 모두 '문'이라고 읽지만 그 뜻은 듣고(聞), 묻고(問), 변화의 문(門)을 열며, 흔적의 무늬(紋)를 남긴 잊을 수 없는 역사 그 자체였습니다.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당시의 다양한 작품과 사진을 통해 마치 그들이 직접 이야기해주는 듯한 생동감을 느낄 수 있어 더욱 좋았습니다. 우리의 오랜 역사임에도 외국 어딘가에 여전히 발견되지 못하고 잠들어 있을 역사의 증거들이 아직 많다는 사실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그럼에도 그 임무의 완수는 '내'가 아닌 '누군가'가 해내겠지...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하는 저의 무언의 떠넘기기가 더욱 부끄럽게 느껴졌습니다.


일제 강점기의 잔혹한 수탈을 겪어야 했던 선조들, 독재 정권에 맞서 민주주의를 목놓아 부르짖으며 죽음과 맞바꾸었던 학생들 및 일반 시민들, 그리고 그들의 눈물과 희생 그리고 용기가 있었기에 존재할 수 있었던 지금의 '우리'들...


요즈음 TV를 통해 과거를 마주할 기회가 더 많아졌습니다. 이전에 글로 머리로만 배웠던 역사가 아니라 누군가의 생생한 인터뷰로, 사진으로, 영상으로 만나는 역사 앞에 그저 부끄럽고 감사하기만 합니다.

그전까지는 고마워해야 할 실체가 실루엣처럼 흐릿했다면 이제 우리 앞의 역사는 점점 선명해지고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한 착각까지 불러일으키니까요. 그저 막연한 감사함이 아니라 '그들이 없었다면 나의 오늘이 없을 수도 있었겠다'라는 서늘함에 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눈물과 땀과 피로 이어진 역사의 오늘은 그 어느 때보다 평화롭게 느껴집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부당함을 바로 잡으려 누군가는 계속해서 싸우고 있습니다. 그들이 내는 목소리가 '나'만을 위해서가 아닌 '우리'를 위해서라면 우리 역시 그 목소리를 외면하면 안 되겠지요.


오늘의 정적이 먼 훗날 되돌아보았을 때 외면과 무시로 낳은 부끄러운 역사로 남지 않도록 지금 오늘 여기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 하지 않을까 않을까요? 적어도 우리 자식들에게만큼은 그런 세상을 물려주지 않다는 생각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동력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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