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메이쩡 Feb 23. 2022

<프리즘>


고등학교 때 한창 연애소설에 빠져 한동안 헤어 나오기 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하필이면 제일 중요한 시기인 고등학교 2학년, 학업의 스트레스를 잠시나마 해소하고자 집어 든 책 한 권에 홀린 듯 도취되어 그 작가의 작품이란 작품은 모조리 찾아 읽었습니다. 소설 속의 한 문장 한 문장이 마치 제 눈앞에 살아 움직이는 것만 같았고, 제가 마치 주인공이 된 듯한 물아일체의 감정까지 느꼈으니까요.


그렇게 책으로 처음 접한 사랑이라는 몽글몽글한 감정은 그때까지만 해도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까르르 웃음이 터져 나오는 순수한 여고생의 감정처럼 그저 풋풋하고 생기 있는 그 무언가였습니다.


20대가 되면서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지고 또다시 누군가를 만나고 하는 과정들이 반복되면서 이별의 끝에서 다잡는 감정은 늘 아프기만 했습니다. 진짜 사랑을 찾아나가는 여정이라며 스스로의 감정을 좋게 포장해 보려 하지만 한편으로는 힘들게 쌓은 모래성이 한순간의 파도로 휩쓸려가는 허무함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현실에서 경험한 사랑은 과거처럼 몽글몽글하고 설레는 핑크빛만으로 채색된 감정이 아니라 하얗기도 빨갛기도 그리고 거무스레 하기도 한 다양한 색깔이 씨줄과 날줄처럼 엮어버린 복잡한 감정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 다양한 색깔들에 현혹되어 또다시 사랑이란 감정선에 휘말리고 마는... 사랑이란 참 복잡하고 미묘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다' 딱 그 정도의 시선으로 사랑이란 감정에 늘 열려있었습니다.


요 근래 손원평 작가님의 작품들을 읽으면서 공통적으로 느끼는 감정은 '낯설지 않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소설임에도 소설 같지 않은, 오히려 더 현실 같은 감정 묘사에 빠져들어 한창 그 감정에 동화될 때쯤이면 아쉽게도 책의 마지막 장에 이르고는 했는데요, 이 책 <프리즘>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서로 다른 남녀들이 각자의 시공간을 넘나들며 사랑이란 감정을 삼키고 뱉는 과정을 제삼자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랑의 방향은 늘 같을 수 없다는 것은 알지만, 알면서도 모른 체하는 감정도 계속 엇나가기만 하는 감정도 모두 누군가는 사랑을 시작했기에 그 결과를 막론하고 씁쓸하기만 합니다.


수많은 감정들 속에서 사랑이라는 감정을 알아채는 것도, 이를 받아들일 용기를 가지는 것도, 당당하게 사랑하는 것도 이렇게 쉽지 않을진대 나는 결혼까지 하다니... 잠시 저 스스로가 대견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고등학교 때 읽었던 백만장자 남주인공, 찢어지게 가난한 여주인공이 아니라 우리 현실에서 당연한 듯 평범하게 살아가는 일반인들의 평범한 사랑 이야기를 이토록 자세하고 세밀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 놀라웠고, 이 작품을 읽으면서 학생 때와는 다른 감정으로 빨려 들어가는 저 자신에게도 놀라웠습니다.


피라미드 모양의 삼각 프리즘.

어둠 속에선 그저 딱딱한 삼각형의 물건, 날카로운 모서리를 조심해야 하는 물건으로 보이지만

밝은 빛을 만나면 찬란한 무지개 빛깔을 만들어내는 영롱한 물건


어렵고, 힘들고, 아프고 슬프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사랑을 해야 하는 이유도 어쩌면 이 프리즘과 닮아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사진 출처 : 픽사 베이_pixabay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사랑한 화가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