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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쩡 Mar 03. 2022

<아몬드>

고요하게 붙잡아 두었던 감정의 끈이 마지막 장에 접어든 순간 스르르 풀려버렸습니다.


주인공 윤재의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기도 전 펼쳐진 너무도 아찔한 사건 앞에서 이게 현실이 아님을 알면서도 그저 할 말을 잃었습니다.


아무런 원한도 없는...

아니 있다면 사회에 불만이 있었던 한 남자의 칼부림.

그 희생양이 된 가엾은 할머니와 엄마.

눈앞에서 그 끔찍한 사건을 목격한 어린 윤재.


아몬드처럼 생긴 편도체가 고장 나 선천적으로 감정을 느끼지 못해 늘 걱정이었던 아이.

남들로부터 튀어 보이지 않게 그저 평범하게 살아가기를 바랐던 아이.

할머니의 죽음과 깨어나지 못하는 엄마를 보면서 그 어떤 원망의 감정도, 슬픔의 감정도 가슴이 아닌 그저 머리로 계산하듯 그려봐야만 했던 아이.

그 감정이 감히 짐작조차 어려워 슬픔이라는 말로 표현하기엔 그저 부족하다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아이에게 다가온 곱지 않은 시선.

그의 잠든 감정을 일부러 시험이라도 하는 듯한 수많은 이들의 자극. 그 속에서 그 작은 아몬드는 점점 제 기능을 하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아몬드를 움직인 여러 감정들 중 우정과 사랑도 단연 빼놓을 수 없겠지요.


사람의 감정이란 게 출발선이 모두 일치하지 않듯이 윤재의 우정은 차갑게 시작했습니다.

바로 '곤이'라는 친구와 함께 말이죠. 시종일관 입이 거칠고 행동도 거친 곤이. 윤재에게 오히려 남들과 같은 감정이 있었다면 곤이에게 아예 다가갈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자신을 남과 똑같이 바라보는 윤재의 시선이 곤이에게만큼은 그 어떤 시선보다 따뜻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고요. 그렇게 티격태격하면서 서서히 그들만의 언어와 속도로 스며드는 감정들을 어쩌면 그 두 친구 모두 일찍이 느끼고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곤이는 윤재에겐 없는 감정을 가지고 있지만 늘 감추려 했습니다. 어렸을 때 잃어버린 부모에 대한 그리움이 세상의 모진 풍파를 만나 거칠다 못해 바싹 날이 서버렸죠. 아무도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고 그저 스스로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서기만을 바랄 뿐 섣불리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그때 아무 말 없이 그저 따뜻하게 안아주었던 누군가가 있었다면 그의 삐뚤어진 언행들이 조금은 달라졌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의 언행들을 남들의 언어로 해석하면 그저 거칠고 난폭하다였지만, 곤이 자신도 모르는 내면 속 언어로 해석하면 "나를 좀 사랑해주세요"가 아니었을까요. 사랑까지는 아니어도 아무런 편견 없이 자신을 바라보는 평범한 눈빛을 원했는지도 모르죠. 바로 윤재처럼요.


누군가는 윤재를 향해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운이 없게도 그런 병에 걸렸을까?"

"감정을 못 느끼다니 얼마나 불행할까?"


하지만 그의 곁에는 늘 사람이 있었습니다.

걱정하는 사람도, 욕하는 사람도, 도와주는 사람도...

그리고 끝내 기적처럼 병상에서 일어나 뜨거운 눈물로 자신을 안아준 엄마도...


자신은 아무리 감정이 없을지라도 주변의 수많은 감정들이 그를 에워싸고 있으니 없던 감정도 그 온기로 인해 자연스레 되돌아오지 않을까요. 엄마를 보며 자신도 모르게 흘린 뜨거운 눈물처럼요.


이 책에 나오는 다양한 사건 사고들 역시 지극히 현실과 맞닿아 있어 그런지 더욱 공감이 되었습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윤재와는 반대로 다양한 감정을 가지고 있지만, 오히려 자신의 감정을 속이는 일들을 많이 하고 있지는 않는지, 그럼에도 남 탓만 하면서 세상을 비관하고 있지는 않은지 한번 되돌아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배경 이미지 출처] Pixabay로부터 입수된 ElisaRiva님의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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