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초보운전 입니다.

by 메이쩡


뒤늦게 운전을 시작한 남편이지만 그마저도 가까운 거리만 운전하곤 했다. 그래서 여전히 뒷유리에는 초보운전 스티커가 붙어있다. 오 이제 운전도 곧잘 하는데 초보딱지는 떼야하나? 하고 고민하는 순간이 오면 이상하게도 불안한 상황이 연출되곤 했다.


어머님 생신을 마치고 다시 집으로 오는 길이었다.

요 근래 이렇게 더운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더웠는데 어라? 에어컨이 작동하지 않는다. 운전에 서투른 남편이 조작을 잘 못했나 싶어 살짝 짜증이 올라왔다. 하지만 혹시 운전에 부담이 될까 싶어 얼른 창문을 열었다. 뜨거운 바람마저도 시원하게 느껴질 만큼 차 안은 지독하게도 뜨거웠다.


더위에 비교적 강하다고 자부하는 나야 그렇다고 쳐도 옆에서 볼이 빨개진 아이가 연신 덥다고 야기한다. 하지만 우리에겐 더위보다 더 중요한 건 안전한 도착이었다.


한 시간여를 달리자 곧 익숙한 곳들이 나타났다. 그리고는 이내 마음이 안정되었다. 아 행복이란 이런 것인가. 그 순간 내 마음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부르르릉 부르르릉 굉음을 내며 깜빡 거리는 계기판이 보였다. 액셀을 밟을 때마다 둔탁한 굉음들이 반복되면서 너무나 무서워졌고 순간 어제 본 한블리라는 프로그램이 떠올랐다. 급발진 때문에 벌어진 안타까운 사고에 연신 눈물을 흘렸던 어제의 그 화면 속 영상들이 떠올랐다. 10여 년이 넘게 장롱면허인 내게 원인 모를 굉음과 금방이라도 꺼질 것만 같은 계기판은 공포 그 자체였다. 이러다 자동차라도 멈추면 어쩌지? 그럼 뒤에서 차가 박으면 어쩌지? 그 짧은 순간에 온갖 부정적인 상상으로 가득 찼다.


어찌어찌 아파트 지하주차장까지 들어왔다. 제발 주차만 하자 멈추지 말자 주문 아닌 주문을 외웠다. 금방이라도 꺼질 것만 같은 차는 그렇게 제자리를 가서 후진을 하다 말고 이내 멈춰버렸다. 주차 좀 서둘러하지 왜 이렇게 느려! 나도 모르게 남편에게 짜증을 냈다. 급발진을 상상하면서부터 나는 이미 예민해질 데로 예민해져 있었다. 자동차보험에 서둘러 연락하여 상황을 설명하니 발전기가 고정 난 것 같다고 했다. 아 그래서 에어컨도 작동이 안 된 거구나... 또 큰돈 깨지게 생겼구나... 하고 순간 짜증이 났다.


상황발생부터 주차까지 5분. 나에겐 5분이 아닌 50분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일단 상황이 종료되고 나니 온갖 나쁜 상상이 자아낸 화면들은 점점 뿌옇게 흩어지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자 조금씩 안정되기 시하면서 이내 긍정적인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정말 천만다행이라고. 우리는 정말 운이 좋은 거라고. 혹시나 고속도로에서 멈췄다고 생각하니 정말이지 끔찍했다. 돈은 좀 들겠지만 어찌하겠는가 사람 목숨이 제일 중한 것을...


이 짧은 경험을 통해 다시 한번 깨달았다. 목숨보다 소중한 건 없다는 아주 당연한 사실을. 그리고 좋은 운에 빚진 만큼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당분간 초보딱지는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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